[하승수의 자치이야기(1)] 해군기지는 '국책사업'인가?

'특별자치도'가 출범한지 벌써 한해가 지나고 있으나 '달라진 것 없다'는 얘기를 이곳저곳에서 듣는다. 급기야는 지사가 나서 '뉴제주 운동'을 주창할 정도다. 그 해결대안으로 '자치역량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막상 어떻게 할 것인가 하면 막막한 표정이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부터 연재되는 '하승수변호사의 자치(自治)이야기'는, 그 동안 '특별(特別)'이라는 포장에 우선돼 간과돼 온 '자치(自治)'의 본연의 의미를 공유하고 도민들의 자치의식을 제고하는 의미있는 연재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옥고를 보내주시고 연재를 허락해 주신 하교수님께 감사드린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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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국책사업'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언론에서도 국책사업이라는 말이 흔히 사용되고 있다. 네이버에서 '국책사업'이라는 단어로 뉴스검색을 해 보니 14,466건의 기사가 뜰 정도이다.

지금 제주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해군기지도 국책사업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국책사업은 '법률적인 용어'도 '학문적인 용어'도 아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에 국책사업이라는 단어속에는 비민주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국책사업이라는 용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아래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개인적으로 2004년 2월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유치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던 전북 부안군에 있는 위도라는 섬에 가게 되었다. 정부는 강행하고 지역주민들은 반발하는 과정에서 구속자, 부상자들이 속출하고 지역공동체가 황폐화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민간차원의 주민투표'를 통해서라도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던 참이었다. 당시 위도에서 마을 이장을 맡고 있던 어느 분을 만났는데, 그 분이 내게 한 이야기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분은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유치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는데,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관련 국책연구원에 있는) 어느 박사가 우리 몸이 다 원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원자력이 뭐가 위험하냐고 하더라", "플루토늄을 먹어도 안전하다고 어느 교수님이 이야기했는데, 왜 교수도 아닌 사람들이 반대를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 분에게 그 이야기를 정말 믿느냐고 했더니, 장관, 교수들이 이야기하는 것이니까 믿는다고 했다.

정말 믿느냐고 다시 물어보았더니, "사실 자기는 보상금받고 떠나고 싶기 때문에 믿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찬성만 하면 보상금을 몇억씩 준다는데, 그리고 장관과 교수들이 안전하다고 하는데 뭐가 문제냐는 것이었다(물론 실제로는 보상금 지급도 불가능한 것이었는데, 이 분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 당시 위도에는 정부가 국책사업이라는 명분으로 지역주민들을 기만하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현실만이 존재했다.

이 일을 겪기 전에는, 국책사업이라는 단어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이 일을 겪고 난 후에는 '국책사업'이라는 단어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되었다. 국책사업이라는데 이렇게 일방적이고 왜곡된 정보를 흘리고 경제적인 보상만으로 주민들을 호도하는 행태를 보일 수 있는가?란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국책사업이 아니라 국민을 바보로 만들고자 하는 행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찬찬히 사정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당시에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사업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던 사람들은 산업자원부의 관료들, 전라북도지사ㆍ부안군수 등의 지역정치인들, 그리고 원자력발전 확대에 이해관계가 걸린 한국수력원자력(주)이었다. 말이 국책사업이지, 실제로는 일부 관료, 정치인, 이해관계집단이 사업추진의 주체였던 것이다. 이들이 깊숙이 개입해서 금권·관권을 동원하고 일방적이고 왜곡된 정보를 유포했다. 주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도 주지 않고 책임지지도 못할 장밋빛 환상을 유포했다. 막대한 홍보비를 뿌려가며 언론을 통해 일방적인 홍보를 했다.

이런 행태를 감시해야 할 국회는 무능하고 무기력했다. 이런 행태들을 견제하고 감시하지도 못했고, 입법과 예산심의를 통해 통제하지도 못했다. 결국 국책사업은 실체가 없었고, '산업자원부 관료들과 지역정치인들, 그리고 원자력계의 사업'만이 존재했다.

'국책사업'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찾기 어렵지만, 대략 "국가가 정책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란 의미로 사용되는 것 같다.

한국사회에서는 '국책사업'이라는 말이 대단한 위력을 가진다. 국책사업에 대해 지역주민이 반발하는 것은 지역이기주의로 몰아붙여지기 일쑤다.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국가'의 이익은 공공적인 것이고, 지역주민들의 주장은 자기 이익을 외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책사업의 결정과정이 실제로 '공공적'이고 투명하고 민주적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실 ‘국가’는 스스로의 의지를 가진 생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사업의 예를 들었지만, 사실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는 사업들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중앙정부의 관료집단이 이해관계집단의 의견에 영향을 받아 추진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 과정에서 사업의 필요성, 타당성 등에 대한 부실한 평가, 졸속적이고 정치적인 의사결정, 비민주적이고 불투명한 사업추진 등의 문제점들을 보여 왔다. 몇천억원의 예산을 들여서 죽은 호수를 만든 시화호 사업, 지금도 타당성ㆍ경제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새만금 사업이 대표적인 예들이다. 환경적 타당성은 고사하고 경제적 타당성조차 의심스러운 사업들이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마구잡이로 추진되었다.

사실 국책사업은 없다. '산업자원부'가 추진하는 사업, '국방부'가 추진하는 사업이 있을 뿐이다.

이런 중앙정부의 관료기구들은 자신들이 추진하는 사업을 국책사업이라 부르기 원하지만, 국책사업이냐 아니냐를 결정지을 수 있는 궁극적인 권력은 국민주권의 원칙에 따라 국민들에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지방자치를 하는 이상, 중앙정부의 관료기구들이 추진하는 사업이 지역의 미래와 지역주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때에는 지역주민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중앙정부의 관료기구들이 지역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할만한 민주적 정당성은 없다. 그리고 한국의 현실을 보면, 중앙정부의 관료기구들이야말로 불투명성·무책임성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명분을 얻고 정당화하려는 발상은 사라져야 한다.

   
 
 
지역주민들에게 충분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숨김없이 제공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시한에 쫓기지 않는 충분한 논의와 검증과정을 밟아야 한다. 충분한 정보제공없이 일방적인 정보만 제공하려는 태도, 신중한 논의와 검증과정없이 형식적인 의견수렴만 하려는 태도, 일단 예산을 투여해서 사업을 시작함으로써 사업을 기정사실화하려는 태도는 이제 없어져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이든 지방의회든 독단적으로 의사결정을 해서는 안된다. 사업에 의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주민들의 참여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일방적 홍보에 의해 주민들의 의사를 왜곡하려고 하는 시도는 용납될 수 없다. 그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고 풀뿌리 자치를 뿌리채 흔드는 것이다. 제주 해군기지 문제도 예외일 수는 없다.

[ 하승수ㆍ제주대 법학부 부교수,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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