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분·분노 뒤섞인 '故 김선일씨 추모·파병철회' 제주도민 촛불집회

"그래도 살아있을 것"이란 실낱같은 희망은 결국 물거품이 됐다. "죽고싶지 않다"며 애타게 호소했던 김선일씨가 끝내 숨을 거뒀다. 국민 안전을 책임진 우리 정부도, 세계적인 여론도 그를 지킬 수 없었다. 서른세살의 젊은 영혼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그가 떠난 자리엔 "파병방침엔 변함없다"는 정부의 되뇌임만 공허한 메아리로 남았다. 그리고 이제 생환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울분과 분노로 변했다.

▲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은 어린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23일 저녁 7시30분 제주시청 어울림마당. 대통령 탄핵 반대와 이라크 추가파병 반대 집회때 촛불이 켜졌던 이곳에 다시 촛불이 밝혀졌다.

그러나 촛불의 의미는 크게 달라졌다. 예전 한 나라의 수반을 지키거나, 정부의 대외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촛불을 켰다면 이날 촛불은 온 국민의 절박한 생존의 몸부림이었다. 누구나 김씨처럼 희생될수 있다는, 그래서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간절한 외침이었다.

절박감 앞에선 너와 네가 따로 있을 수 없었다.

제주통일청년회(회장 양희선)가 '급조'한 '고 김선일씨 추모대회 및 이라크 파병철회 촉구 제주도민대회'에는 많은 시민이 모여들어 김씨의 넋을 기렸다. 어린 학생에서부터 나이 지긋한 이웃집 아저씨까지, 주부와 회사원들도 한마음 한뜻으로 김씨를 추모하고 파병반대를 외쳤다. 유모차에 갓난아이를 태우고 온 주부도 눈에 띄었다.

학생 주부 회사원 아저씨까지 "파병 반대" 한목소리

그리고 참석자들의 손엔 명분없는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촛불이 들려졌다. 행사장에 '아침이슬'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노래가 울려퍼지는 순간 참석자들의 눈엔 이슬방울이 맺혔다.

자유발언에 나선 시민들은 북받치는 설움에 목이 매어 말을 잇지 못했다.

통일청년회 양희선 회장은 "오늘 이 자리가 가슴아픈 이유는 오래전부터 파병 철회를 요구했는데도 정부가 들어주지 않는 바람에 소중한 목숨을 빼앗겼기 때문"이라며 "이게 어디 무장세력의 문제냐"고 반문했다.

양씨는 "그들은 파병을 철회했다면 김씨를 살려줬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최선을 다하겠다던 정부는 그 최선인 파병을 철회하지 않았다"고 정부를 성토했다.

▲ 촛불집회 참석자가 자유발언 도중 울먹이고 있다.
아들을 데리고 온 교사 양혜숙씨(40)는 울먹이느라 말을 잇지 못하다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내가 이 나라 선생님이란 사실이 너무 부끄러웠다"고 고백했다.

"이제는 학생들에게 나라가 옳다는 일 하라고 말할수 없게 됐다"

양씨는 이어 "학생들에게 나라가 옳다고 하는 일이라면 감히 해야된다고 말해왔는데 이제는 할수 없게 됐다"며 "한 생명도 구하지 못하면서 다시 어떤 젊은이들을 구할 수 있단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잔인하게도, 숨지기 직전 고인의 목소리를 분석한 방송사에 대한 분노도 표출했다.

그는 "죽음을 눈앞에 둔 젊은이를 놓고 어떻게 그럴수 있느냐"고 강력히 비난한 뒤 "이 세상에 아름다운 전쟁이란 있을 수 없다"고 반전을 외쳤다.

무고한 젊은이의 죽음에 아무것도 할수 없었던 무기력함에 대한 자성도 쏟아졌다.

   
오근수씨(42)는 "이라크에서 죄없는 젊은이가 죽을 때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면서 "김씨를 죽게한 장본인은 바로 우리 자신인지도 모른다"고 자책했다.

"김씨를 죽게한 장본인은 우리 자신일수도…" 무기력함 자성

그러면서 파병 방침을 고집하는 정부를 강하게 비난했다.

오씨는 "이 정부는 국민생명을 존중하는 정부가 아니라, 경제적 이익과 미국의 입장만 생각하는 정부"라며 "이런 아픔은 얼마든지 계속될 수 있다"고 앞날을 걱정했다.

최근 학내 문제로 정신없는 제주산업정보대 학생들도 촛불집회 소식에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왔다.

이 대학 노래패 '새벽을 여는 사람들' 회원인 김관진씨는 "공연을 앞두고 연습중이었지만 가만있을 수 없었다"며 "우리 학생들도 여러분들과 똑같은 마음"이라고 파병반대 뜻을 피력했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은 즉석에서 '미국반대'란 노래를 통해 전쟁과 파병 반대를 외쳤다.

"다시는 어처구니 없는 죽음 없게하자" 정치권 각성 촉구

   

'소시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문성연씨(46·제주시 이도2동)는 상기된 목소리로 "우리 국민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느냐"며 "오늘은 김씨가 죽은게 아니라, 제 자신과 우리 국민이 죽은 대한민국의 국장일"이라고 분개했다.

문씨는 "너무 억울한 죽음에 비통한 마음 금할 길 없다"며 "정치인들은 각성해야 한다"고 무기력한 정치권을 나무란 뒤 "다시는 어처구니 없는 죽음을 없게 하자"고 호소했다.

시민들의 분노와 절규, 애도의 목소리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날 주최측은 행사장 한켠에 미군의 야만적인 민간인 학살과 포로 학대를 고발한 사진을 전시해 시민들에게 미군 만행과 이라크 전쟁의 참상을 알렸다.

▲ 시민들이 미군의 민간인학살과 포로학대 사진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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