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제주도에 바란다(6)] 김수열 제주민예총 지회장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특별’한 몇 가지 제안

2007년 새해를 맞아 제주도에 바라는 각계 인사의 바람을 연재한다. 여섯번째로 제주민예총 김수열 지회장의 글을 싣는다. 옥고를 보내주신 님께 감사드리며, 새해에는 모든 이들이 소망이 이뤄지고 명실상부한 특별자치의 기틀이 완성되는 한해가 되길 제주의소리는 희망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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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을 맞이하여 우리가 준비하고 추진해야 할 문화적 화두를 끄집어내면서  문화정책을 담당하는 논객들은, ‘정책은 질주하고 예술인은 아우성이다’, ‘문화관광부는 깜짝 이벤트회사’, ‘실속 없는 현란한 수사와 비전의 나열’ 등을 거론하면서 나름대로 문화에 대한 애증을 드러내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또한 연착륙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현란한 수사와 현실적인 과제’ 사이의 거리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문화관광부가 작년 말에 발표한 ‘예술 현장을 위한 역점 추진 과제’식의 또 다른 미사여구를 늘어놓는다고 해소될 문제는 아닌 듯싶다. 문제는 문화마인드이며 이를 통한 구체적인 접근이다.

흔히 지자체의 문화정책은 단체장의 문화적 수준, 또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방향이 달라진다고 이야기한다.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대동소이하며, 제주지역 또한 예외는 아니다. 지역문화활성화를 위한 정책 집행의 우선 순위를 정할 때 지역문화가 추구해야 될 가치에 대한 이해를 우선하기 보다는 표심과 연결되는 사업이 무엇인지, 치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인지 등 문화외적인 정치논리가 앞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제주지역 문화예술이 안고 있는 수많은 난제들, 문화활성화를 위한 요소들 중에는 인적자원과 재원의 확보, 문화기반시설,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 등이 감나무에 홍시 열리듯 주렁주렁 달려있지만 올해 이것만은 꼭 풀어냈으면 하는 몇 개의 고민을  던져본다.

# 문화예술 전략을 위한 로드맵과 행정시스템이 필요하다

먼저 특별자치도가 추진되면서 행정계층 구조가 달라지고 중앙정부의 권한이 이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섬 전체를 아우르고 동아시아와 함께 나아가기 위한 문화예술종합전략의 로드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권한을 정부로부터 위임 받았다면 당연히 새로운 시대에 대응할 문화예술 전략이 수립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황논리에 급급한 문화예술행정, 중앙정부의 예산 편성에 국한된 이벤트성 사업만이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문화예술 행정시스템으로는 역부족이다. 문화예술만을 전담할 수 있는 행정시스템을 구축하고 문화예술행정을 비롯하여 정책 개발, 문화시설, 문화재, 문화산업, 축제 개발 등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할 수 있는 독자적인 행정시스템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긴 호흡으로 멀리 내다보면서 누구나 예측 가능한 구체적인 설계도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설계도가 없으니 이를 달성하기 위한 시스템 작동에 대한 구상도 보이지 않는다. 나침반을 잃고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동아시아를 누비던 탐라의 혼이 지금의 아시아 바다의 험난한 파고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현실에 바탕을 둔 안목과 계획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미 흘러간 물로는 결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

문화구동시스템의 재정비와 정착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행정의 전문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에 대한 검토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측면에서 특별자치도가 추구하는 개방에 따른 문화적 수용, 문화예술 내부적으로는 다원적 경향의 예술활동과 문화예술교육 등의 변화된 지형을 총체적으로 검토하고 기획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행정 운영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 민관의 문화협력시스템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예산의 집행권 등 행정의 고유권한을 인정하면서 시민사회영역과 경쟁이 아니라 상보적 측면에서 역할을 나누는 수평적 관계 맺기가 있어야 한다. 즉, 기존의 문화정책을 생산하고 집행하는 단위가 행정 중심에서 탈각하여, 행정으로 집적되는 정보의 공개와 공유에 따른 문화NGO와 시민사회 영역의 목소리가 반영된 실현가능한 정책으로 나타나는 시스템이 정착되어야 한다.

제주도내에는 공공문화시설이 다양하게 산재해 있다. 박물관 등의 전시기능 공간, 도서관 등의 학습기능 공간, 문예회관처럼 공연장으로 활용되는 공간, 문화의 집 등 생활밀착형 문화시설 공간 등 각각의 시설은 독자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는 듯하지만 한 껍질만 벗기면 기능의 독자성에 대해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규모가 작은 기능성 박물관들은 기능의 독자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공간은 그 기능과 역할에 대해 분명한 자기독자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기능과 유형에 따른 네트워크를 통해 전문성을 높이고 관리의 효율성을 증대시켜야 한다. 또한 전체적으로는 유사한 프로그램의 중복을 회피하여 시설의 기능에 알맞은 사업이 배치되도록 조정 할 수 있는 통합적 문화기반시설 관리 시스템이 절실하다.

# 문화예술의 생태계적 순화구조 정착시켜야

문화예술정책의 궁극적 지향점은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의 소외와 갈등은 문화의 영역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현재 사회적 취약계층은 경제적 측면은 물론 문화환경에 접근하는데도 매우 불평등한 조건에 놓여 있으며 더욱 악화될 것이다. 더군다나 특별자치도의 추진과정에서 세계의 지방화에 따른 다양한 문화교류가 예측되고 그 결과 문화적 갈등이 발생할 요소 또한 잠복하고 있다. 언제 지층을 뚫고 사회적 긴장과 갈등국면으로 튀어 오를지 모르는 상황에서 문화위기 관리시스템이 준비되어야한다. 문화복지 사업은 수혜 대상이 아닌, 문화는 국민 모두가 누려야 될 당연한 권리로서, 세계의 모든 문화는 부의 집적과 문화배급망을 소유한 특정한 국가나 지역의 문화만이 우월한 것이 아니라 모든 문화는 고유의 역사성과 지역 주민의 삶의 정수를 담고 있기에 문화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존중되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전통문화의 보존과 창조적 계승, 마을공동체와 소수자의 욕구와 희망을 담아내는 프로그램을 주체적인 시각에서 고민하고 프로그램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문화예술의 생태계적 순환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문화예술계는 비판적 대항문화의 과정을 지나 대안적 예술활동을 추구해왔다. 문화예술은 그 내적 운동방식에 따라 움직이며 동시에 정치·사회·경제의 제영역과 서로 경계를 넘나들면서 문화적 표현(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 지향적인)으로 세계와 만날 수밖에 없다. 다시 한번 변화되는 생활양식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틀과 방식을 고민하고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민과 관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높은 파고로 밀려오는 외래문화에 대한 대응전략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단체간의 소통이 필요하다. 전통적 장르구분이 해체되고 문화의 개념이 확장되며 다원적 문화활동과 생활문화활동이 대두되는 경향성에 대한 수용과 교류가 필요할 것이다. 그에 따라 대중과의 만남의 방식 또한 수동적으로 전달하는 대상화를 경계하고 소수자의 문제를 문화예술의 문제로 인식하는 자세와 방식이 형성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말하는 ‘失我化彼’는 지난 시대의 담론이 아니라 지금 우리들에게 가장 절실한 담론임을 깨달아야 한다.

#제주역사 진정성 담는 문화원형 발굴이 제주의 문화 컨텐츠

그런 의미에서 제주의 생존전략으로서 문화원형에 대한 탐색이 필요하다. 정책론자들은 제주의 성장 동력으로 문화관광산업을 주창하기도 한다. 이를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활성화 시킬 것인가. 문화관광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제주만의 특화된 컨텐츠를 발굴하고 원형성에 대한 다양한 재해석과 가공의 과정을 거쳐서 세계와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단순히 수익창출을 위해 주민의 삶을 대상화시키고 피폐화시키는 문화산업 발전전략을 지향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제주의 역사 문화 속에서 생성된 삶의 진정성을 담아내는 문화원형을 발굴하고 문화경제적 가치로 전환시키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그것이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고히 하며, 동시에 경제적 부가가치를 생산해내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예술계의 인적 자원의 문제가 심각한 상황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 문화예술의 예비자원은 이미 오래전에 고갈되어 피로가 누적될 대로 누적되어 언제 파열될지 모르는 극한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로 인해 현재의 활동의 질과 양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시도를 위한 인적자원의 적절한 배치와 현장과의 교류· 교감의 폭이 협소화 되고, 연대의 끈이 점점 희미해지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대안으로서 제도교육에 문화교육학부의 설치가 핵심적 대안일 수는 없다. 부차적 요소일 뿐이다. 오히려 주변의 생활문화활동을 전개하는 인적자원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것이 문화의 자생적 변화양상에 알맞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계 내부적으로는 여럿이 함께 방식을 찾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정책적으로는 예술계의 피로감을 희생과 열정만으로 살아남기를 강요하기보다 문화의 공공성에 맞는 예술인 복지정책이 시급하게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 행정책임자의 관심이 문화예술 꽃피워

문화예술인들이 자신의 활동에 대해 자긍심을 갖지 않을 때 양질의 문화예술이 생산될 수 없음은 당연한 이치다. 존경을 받지 못할지언정 후회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보장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문화예술을 꽃피운 나라의 공통점은 행정책임자가 문화예술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수시로 크고 작은 문화현장을 직접 찾아가 함께 즐겼다는 점, 그로 인해 문화예술인들은 비록 춥고 배고팠지만 남다른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 그 결과 문화와 예술을 최고의 수준으로 꽃피울 수 있었다는 점이다.

▲ 김수열 제주민예총 지회장
관광산업의 패턴이 ‘보는 관광에서 즐기는 관광’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은 모름지기 문화가 관광의 중심으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특별자치도에서 관광산업의 발전을 진정으로 도모한다면 지금부터라도 문화와 예술에 시선을 돌려야 한다. 그리고 문화예술인들과 만나야 한다. 머리를 맞대고 함께 제주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적당한 때임을 명심해야 한다.
김수열(제주민예총 지회장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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