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자의 교단일기(2)] 방학중 학급소집일에 생긴 일
겨울방학이 시작된 지 딱 일주일이 지났다.
방학의 달콤함을 제일 먼저 알아채는 것은 언제나 몸이다.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자명종 소리, 다시 10분 후에 이어지는 모닝콜까지 모두 들으면서도 날마다 두어 번은 더 꿈속을 헤매게 된다.
여느 아침과 달리 오늘은 신기하리만치 자율적으로 몸이 작동되었다. 부러 다짐하지 않았건만, 몸은 언제나 정직하고 실리적으로 스스로 조절하고 관리한다.
싸한 기운을 뚫고 한 시간여 운전해서 학교에 도착한 시간은 8시 30분. 난로를 켜고, 커피를 한 잔 타고, 아이들이 오기 전에 해 두어야 할 것들을 챙긴다.
열 시가 되자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모두 스물두 명이었다. 며칠 안 본 새에도 부쩍부쩍 크는 아이들이 부럽기만 하여, 나는 슬쩍 얼굴도 만져보고, 꼬집어도 보았다.
그런데 남학생들은 복도에서 계속 어정거리고 있다. 팔을 잡아끌며 들어오라고 해도 얼굴을 돌리거나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게 본격적으로 사춘기에 접어든 모양이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들이, 거침없고 다소 드세기까지 한 수다쟁이 소녀들 틈에 끼여 말을 섞는다는 건 얼마나 큰 곤욕인가. 요즘 세상은 어릴 때부터 남자들이 내외(內外) 한다.
두 명씩 짝지어 특별실 공사로 뽀얗게 먼지가 내려앉은 계단이며, 복도, 교실 등을 쓸고 닦고, 소각장 주변을 말끔히 치우기 시작했다. 봉사활동 시간이 모자라는 아이들만 나올 줄 알았는데, 여덟 명만 빼고 모두 나와 학급소집일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게 되었다. 점심때가 되어 삼삼오오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이 대견스럽기만 하다.
열두 시가 되면서 신문반 동아리 아이들이 도착했다. 2007학년도 동아리 역할분담과 활동계획을 미리 짜보기 위해 워크숍이 약속되어 있었다. 동아리 회원은 모두 8명인데, 주영이가 교회 수련회에 참가한 까닭에 불참하면서 모두 일곱 명이 모였다.
아이들과 점심을 먹은 후, 미리 만들어 두었던 글자를 칠판에 붙이고, 팀장에게는 오늘 해야 할 일과 진행순서를 적어보게 하였다. 도서실이 워크숍 장소로 바뀌면서 제법 그럴듯해 보이는 것이, 요즘 애들 쓰는 말로 '뽀대'가 났다.
나라가 능숙한 솜씨로 워크숍을 진행했다. 신문제작을 위한 동영상을 관람할 예정이었으나 DVD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어 할 수 없이 학기 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활동소감 발표를 마치고나서 2007학년도 동아리 활동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스스로 편집부장, 취재기자, 사진기자를 정하고, 신문 메뉴에 대한 의견도 내놓는 등 진지한 토의가 이어졌다. 아이들은 선생님과의 일일 데이트를 통한 밀착 취재, 동네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인터뷰하여 제주말을 찾아내는 기행 등 학교 밖의 활동으로까지 동아리 활동을 확대하자는 의견도 내놓았다.
나는 접근방향을 제시해주고 방법론적인 것을 도와주면서, 모든 진행상황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한두 마디 조언만 던져주었다. 주변에서 보고 들은 게 많은 아이들은 자신들이 진짜 기자라도 된 양 진지하게 의견을 내놓는 등 적극적이었다. 활달하고 영리한 것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데 충분한 미덕이라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학급소집일에 선생님과 친구들의 얼굴을 볼 시간이 있는 아이들,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줄 귤을 가져올 시간이 있는 아이들, 선생님과 같이 어설픈 워크숍을 하며 보낼 시간이 있는 아이들, 선생님과 보내는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싶어 하는 아이들...
이 아이들과 함께여서 행복한 하루였다.
[ 고산중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