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집 창문 너머로 별을 보다①]"흙은 꿈이고 현실이란다~"

오영덕님은 한림읍 인근에서 들꽃농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생태적 가치의 실현을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여기고 이를 구현하며 사는게 꿈이랍니다. 스스로 흙집을 지어 사는것도 그 여정의 일부입니다. 현재 흙집은 거의 완성되었지만 시간을 거슬러가서 흙집을 짓는 과정을 재구성하여 연재할 계획입니다. 자연과 집과 사람간의 소통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생태적 삶의 넉넉함을 함께 누리시기 바랍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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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전 눈이 내릴때 찍은 흙집 전경.  ⓒ오영덕
날씨가 오락가락이다. 창가에 앉아 바람부는 겨울들판을  바라본다. 세찬바람에 영아리오름이 바짝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아들이 다가와 뜽금없이 묻는다.
 
“아빠, 우리집 흙으로 만들었지?”
“그럼. 당연하지.”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흙으로 만들었다. 오로지 흙과 나무와 돌만으로 집을 세웠다. 생각만해도 가슴이 뛰는 일이다. 꿈같은 일이 1년여만에 현실이 된 것이다.

“아빠, 그런데 흙이 뭐야?”
“뭐? 흙이 뭐냐고?”

이런 황당한 질문이라니. 그런데 흙이 뭐지? 설마 이광수의 소설을 읽고 물어보는 건 아닐테고. 뭐라고 해야 되나. 무기물과 유기물이 섞인 물질?  움터 오르는 새싹 앞에서 어미 같은 존재라고 고상하게 대답할까 아니면 인류의 식량자원을 책임지는 어쩌고. 머리를 쥐어짜는 순간에 아들이 태연히 답한다.

“흙은 꿈이지”
“꿈? 흙이 꿈이라고?”

자슥이 만화책 구절을 가져다 붙이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럴듯하다.
사실 흙은 나의 꿈이다. 우리 모두의 꿈이다. 흙으로 농사짓는 농사꾼의 꿈 덩어리다. 흙에서 자라나 커가는 모든 생명체들의 꿈이다. 아~ 이제 그럴듯한 답변이 정리된다.

“아들아, 흙은 꿈이고 현실이다. 너의 꿈도 이 흙집에서 자라겠지? 이게 현실이다.”

아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당연하다. 횡설수설했으니 못 알아들을 수밖에.

흙집이 거의 완성되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흙 묻은 작업복에 묻혀 살다가 이제는 아들 녀석 데려다놓고 동문서답 하고 있다. 그만큼 여유가 생겼다. 비바람 피할 수 있고 눈보라쳐도 느긋하게 감상할 정도가 되었으니 타워팰리스가 부럽지 않다.

▲ 집이 다 되어가니 가마솥에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었다.ⓒ오영덕
흙집을 꿈 꾼지는 수년 전일이었다.
강원도 평창인가에서 구들관련 세미나가 있다고 해서 무작정 찾아갔었다. 취미도 별났다. 구들이라니... 하지만 궁극적인 내 관심은 자립적인 삶이다. 문명의 도움을 최소화하고도 살아갈 수 있는 기반. 내 관심의 초점이었다. 원시적으로 돌아가고픈 건 아니다. 다만 물질에 의존하다 못해 노예가 되어가는 세상이 안스러울 뿐이었다.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어도 할 수 있는 건 해보고 싶었다.

전기가 들어오는 멀쩡한 작업장에 풍력발전기를 설치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고무통으로 하면 간단하고 효율적인 것을 그것과 비교하면 잘 깨지고 무겁기만 한 비효율의 극치인 제주항아리에 작물을 키운다고 설친 것도 다르지 않았다. 남들이 살지 않는 목장지대에 터를 잡고 사는 것도 그렇다. 나도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아파트공동체 같은 것도 하면서 살고 싶다. 재미있을 것이다. 때로는 이웃집에 아이를 맡기고 좋아하는 영화도 보러갈 수 있으니 환상이다. 하지만 도시의 편리함을 누리기에 내 입장에서는 버려야할게 너무 많다. 문단속을 위해 최신의 잠금장치를 해야 되고 창가에 쇠창살을 박아놓아야 한다. 마당에서 아이들과 별을 보며 노래 부를 수도 없다. 무엇보다도 창문너머 들판의 산들바람을 포기해야했다. 사람은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걸 얻기 위해, 지키기 위해 시간을 바친다. 모두다 얻지 못할 조건이면 덜 소중하다고 느끼는 걸 포기할 수밖에. 이야기가 잠시 곶자왈에 빠져버렸다.

구들놓는 원리를 알아보려고 찾아갔던 강원도 현장은 흙집이었다. 일과 끝낸 밤이면 막걸리를 마시며 새벽까지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잠깐 눈을 붙이는 둥 마는 둥 하다 다시 일어났다. 그런데 몸이 이상했다. 막걸리에 취하고 노동에 피로한 몸을 누이고 첫날밤을 잠깐 잤는데 그 상쾌한 기분이라니. 하긴 장작을 넣어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부터 뭔가 이상했다. 연기냄새를 맡자마자 난 이미 수십년의 시간을 거슬러 어릴적 흙집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냄새가 가지는 위력은 대단했다. 수십년의 시간이동은 그렇게 간단했다. 막걸리에 취해 몽롱한 정신에도 아궁이에 앉아 불을 지피는 일이 그리도 행복하게 느껴질 줄 몰랐다. 장작개비에서 불꽃이 타 오르듯 오래된 기억이 하나둘 반짝거리며 올라왔고 사람들이 표현하듯 겨우 구들 때문에 강원도까지 찾아갔던 내 무모한 결행은 충분히 보상되었다.

▲ 내친김에 마당 구석에 김장김치독까지 묻었다. 너머로 흙집이 보인다.ⓒ오영덕
강원도에서 흙집을 만난이후 흙집은 내 마음속의 꿈이 되었다. 언젠가는 흙집을 지어 아궁이에서 불을 때며 아랫목에 누워보리라. 하지만 시골로 이사를 하고 농사를 지으며 자립적인 삶을 향한 계획을 하나 둘 풀어내면서도 흙집은 끄트머리에 서서 희미한 웃음만 흘릴뿐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다.

벌써 재작년의 일이 되어버렸다. 서점에서 우연히 흙집관련 책을 만났고 신기루 같았던 흙집이 선명하게 앞으로 다가왔다. 오래된 꿈을 실현시킬 구체적인 방법을 찾은 것이다. 주저할것 없었다. 몸이 부실해 일을 못하는데다가 게으르기까지 한 내 자신을 잠시 잊었다. 무모하게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넘쳐났다. 제재소를 찾아다니며 서까래로 쓸 나무들을 알아보던 게 재작년 10월. 그 해 여름 난 지리산 자락에서 흙건축을 내우며 땀을 쏟았고 새로운 해에는 집을 지어보리라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수년동안 품었던 흙집에의 열망에 본격적인 불을 지피는 순간이었다.

흙집을 짓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사전준비가 필요했다. 흙집 중에서도 어떤 방식의 흙집을 지어야할지 먼저 결정해야 한다. 흙벽돌로 지을 것인지, 기본벽체에 대나무나 철망을 엮고 흙을 바르는 심벽집을 할 것인지 흙을 이겨 통나무와 쌓아올리는 통나무흙담집인지 마른흙을 기계로 단단하게 다지며 올리는 담틀집으로 할지 고민이 필요했다. 모두 장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여유자금이 별로 없이 생태적으로 지을 생각을 하는 나에게는 통나무흙담집이 적격이었다. 목천흙집이라고도 불리는 통나무흙담집에 외벽으로 다시 돌담을 쌓아올리기로 했다. 제주바람과 비에 흙벽을 외부에 그대로 노출시키는 건 아무래도 불안하다는 판단때문이었다.

통나무흙담집으로 기본 틀을 잡고 나니 머리를 싸매며 설계에 들어갔다. 공책에 이리 그리고 저리 그리고 하루에도 수십장의 종이가 뜯겨져나갔다. 그래도 자기집을 설계하는 재미는 식을 줄 몰랐다. 아내와 투닥거리길 며칠째. 드디어 기본 골격을 만들어냈다. 기왕에 집을 짓는 김에 무언가 의미를 가져야한다고 합의했고 그 상징을 북두칠성에 맞추어냈다. 북두칠성을 형상화 한 집을 지어보자. 가슴이 벌렁벌렁 뛰고 있었다. 과연 할 수 있을까?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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