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집 창문 너머로 별을 보다②]북두칠성을 그리다

오영덕님은 한림읍 인근에서 들꽃농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생태적 가치의 실현을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여기고 이를 구현하며 사는게 꿈이랍니다. 스스로 흙집을 지어 사는것도 그 여정의 일부입니다. 현재 흙집은 거의 완성되었지만 시간을 거슬러가서 흙집을 짓는 과정을 재구성하여 연재할 계획입니다. 자연과 집과 사람간의 소통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생태적 삶의 넉넉함을 함께 누리시기 바랍니다.(편집자주)---------------------------------------------------------------

▲ 노트에 그려놓은 최초의 설계
북두칠성을 노트 위에 올려놓으니 별은 동그라미가 되었다. 땅위에 올려놓으면 별은 따뜻한 방으로 변할 것이다. 동그라미 일곱 개. 형상화한다는 거창한 말을 썼지만 동그라미 일곱 개를 붙여 놓는 것 이상의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건 우리 마음이니. 아이방은 북두칠성의 막내별 방이고 부엌은 셋째별이고 놀이방은 여섯째별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그리도 쉬운 일이지만 집을 다 지어놓은 지금도 방들을 몇 번째 별로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 처음에 구상한 흙집 정면 그림
▲ 건축사무소에서 만든 설계도
며칠 끙끙대며 그려놓은 그림을 가지고 건축사무소에 부탁했다. 집터 근처에 오름이 있어서 건축사무소를 통하지 않고는 허가를 낼 수 없었다. 볼펜으로 끼적거려 놓은 그림이 건축사의 컴퓨터를 거치니 평수까지 정확하게 계산된 그럴듯한 설계도가 된다. 이제 북두칠성 흙집 설계도에 온기만 불어넣으면 별은 반짝반짝 빛날 것 같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공간이 필요했다. 돈이 가장 적게 들어가는 공간이 무얼까 고민했으나 현실적으로 비닐하우스보다 싼 공간이 없었다. 비닐하우스를 세워야겠는데 아무리 임시건물이지만 흙집 옆에 시작부터 철재파이프를 박고 하우스를 치는 게 아쉬웠다. 머리를 쥐어짰다.

"오호라~"

서까래로 쓰려고 제재소에서 구입해놓은 나무들이 보인다. 그걸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떠오른다.

단순하게 시작한다. 단순하게. 최대한 간단하게 움막이든 무엇이든 지어보고 싶었다. 집을 짓자고 나선 때부터 같이 일해 나가기로 한 오랜 친구인 대협아빠와 막내처남인 드로에게 계획을 설명했다.

두 사람은 모든 공구들을 능숙하게 다루는 만능 일꾼들이었다. 된다 안된다 몇 차례 큰소리가 오가고 결국 합의했다. 쇠붙이를 쓰지 않고 나무로 골격을 잡기로 했다. 통나무를 껍질채 삼각으로 세워 꺽쇠를 박아 고정했다. 뚝딱뚝딱 거리니 나무로 틀을 세운 움막(비닐하우스)이 만들어졌다.

▲ 햇살과 어우러진 아이들
▲ 햇살과 어우러진 아이들
나무는 서까래용으로도 적합하지 않은 놈들로 골라 썼고 비닐값과 꺽쇠 등의 비용으로 십만원이 조금 넘게 들었다. 단순한 집이었지만 만들고 나니 생각보다 더 아름답다. 흙집만 아름다운게 아니다. 자연에서 얻어온 그 어떤 재료들도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준다. 비닐과 나무도 썩 잘 어울렸다. 움막안에 건초더미를 놓으니 따뜻한 의자까지 갖추어졌다. 집을 짓는 동안 눈,비를 피하고 밥을 먹고 차 한잔 마시는 휴식공간이 생긴 것이다.

흙집에 들어가는 기본 재료중 미리 준비 해놓아야 할 첫 번째가 서까래로 쓸 통나무다. 보통의 옛집들에서 사용했던 대들보 대신 찰주라는 원형나무로 서까래를 고정시키는 구조였기에 서까래가 상당량 필요했다. 방4개와 거실, 부엌, 현관에 쓸 서까래를 어림잡아 계산해보니 200여본은 족히 쓰일 것 같았다.

임협 가공공장을 포함해 제주도내의 거의 모든 제재소를 다니며 적당한 나무가 있는지 가격은 어떤지 알아보았다. 도내 제재소에서 생산되는 나무는 대부분 삼나무였다. 삼나무는 습기조절 능력이 탁월해서 다습한 제주의 기후에 적합한 나무다. 방충성분이 있어서 어지간하면 곰팡이도 피지 않는다. 향도 좋고 무늬도 아름답다. 무엇보다도 가격이 저렴했다.

▲ 껍질을 다 벗겨 세워놓은 서까래와 통나무로 틀을 세운 움막(비닐하우스)
▲ 서까래껍질을 벗기면서 한쪽에 쌓아놓았다. 하루목표량의 서까래껍질을 다 벗기면 그렇게 기분좋을수가 없었다.
하지만 서까래는 지붕의 하중을 버티는 버팀목이다. 나무의 강도가 중요했다. 결국 서까래는 편백나무로 하고 서까래와 지붕 흙 사이를 막는 판재는 삼나무로 하기로 했다. 이곳저곳 수소문한끝에 도내에서 생산된 편백 300여본을 가까스로 구했다.

편백은 '히노끼'라는 일본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편백나무는 못을 한 번 박으면 빼내기가 매우 어려운 아주 단단하면서도 향이 뛰어난 나무다. 서까래용 통나무를 잔뜩 실어다 쌓아놓으니 왠지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나무가 도착하는 순간 고생길 시작인걸 그때는 몰랐다.

눈보라가 치는 와중에 서까래 껍질을 벗겼다.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날 흥얼거리며 나무를 깎았다. 오일장에서 나무깎이용으로 제작된 굵은 낫은 묵직하면서도 날카롭지 않아 좋았다. 통나무 300여본의 껍질을 벗기는 건 쉽지 않았다.

바싹 마르지도 아주 젖지도 않은 어중간한 상태여서 더욱 탈피가 힘들었다. 하루 종일 작업해도 10여본  벗기는 게 고작이었다. 혼자서 며칠 끙끙대는데 젊어서 바쁘디 바쁜 드로와 친구들이 합세했다. 그래도 작업은 겨울내내 이어졌다.

▲ 껍질벗기기에 나선 사람들
나무껍질을 다 벗겨내고 맞이한 봄은 화사했다. 맘이 풀리니 봄빛은 더욱 화사해지고 날씨가 풀려가니 사람들이 놀러오기 시작한다.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염치불구하고 일을 부탁했다. 부탁했다기보다 스스로 도와주었다고 표현해야하나.

서까래를 깎았지만 흙벽과 같이 쌓아 올릴 통나무의 껍질 벗기는 일이 남아있다. 모두가 흥겹게 도와주었다. 아이들은 따사로운 봄 햇살 아래서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앉아서 나무껍질 벗긴다. 집을 짓는 거창한 일은 어느 순간부터 축제가 되어 봄 햇살을 더욱 빛나게 하니 하늘의 별은 벌써 집터에 내려와 앉았나보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