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막했던 관례' 깬 '뜻깊은 퇴임식'…제주시청 공무원노조 "인간적인 직장분위기 만들터"

옛말에 30년이면 강산이 세 번 바뀐다고 했다. 그만큼 긴 세월이란 뜻이다. 그래서 한 직장을 30년 다녔다고 하면 누구나가 그의 성실함을 칭송해 마지 않는다.

그러나 공직사회에서 수십년을 몸담았다 떠나는 이들의 뒷자리는 이런 평가가 무색하리 만치 쓸쓸하기 그지 없다. 아니 초라하다. 특히 하위직 공무원들은 서럽기까지 할 정도였다.

조촐한 퇴임식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려만 이들에겐 그저 '남의 얘기'다. 떠나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이나 남남과도 같이 무심하게 등을 돌린다.

제주시청도 그래왔다. 고작해야 시장실이나 회의실에서 시장 또는 고위 간부 몇몇이 의례적인 티-타임을 가진 뒤 기념패나 전달하면 그만이었다.

하위직 공무원에게 퇴임식은 '남의 얘기'...'티-타임' 정도가 고작

인지상정이다. 이렇게 떠난 공무원들에게 옛 직장을 좋은 감정으로 바라보길 기대한다면 과욕일 것이다. 언제 피와 땀을 쏟았을까 싶을 정도로 일반 주민들보다 더 행정에 비협조적으로 변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 시청 직원들이 선배들을 떠나보내면서 '석별의 정'을 부르고 있다.
안되겠다 싶었는지, 제주시 공무원노조가 이런 풍토를 깨기 위해 총대를 맸다. '너무나 수고하신 당신'들을 당당하게 후배들 앞에서 떠나보내자는 것이다. 얼마없어 선배 뒤를 따를 자신들을 뒤돌아보자는 취지도 있다. 사람사는 세상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공무원노조 제주시지부 김영철 지부장은 "30년동안 한 직장을 다닌 사람에게 달랑 기념패 하나 주고 보낸다면 이 사회가 너무 삭막하지 않느냐"면서 "조촐한 퇴임식이라도 베푸는게 후배로서 당연한 도리"라고 말했다.

부춘성 대외협력부장은 "초등학생도 6년이 지나면 선후배가 어울려 이별의 정을 나누는데 하물며 수십년을 공직에서 보낸 공무원을 그냥 보내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그렇게 해서 관두면 시정에 대한 불신이 싹트고 오히려 화합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과거를 반성했다.

"초등학생도 6년이 지나면 이별의 정 나누는데, 하물며..."

이런 의미에서 공무원노조가 28일 제주시내 모 식당에서 마련한 행사는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뜻깊은 자리였다.

환갑을 바라보는 조합원 2명의 퇴임식을 연 것이다. 노조 주최로는 처음있는 일이다.

주인공은 강은택씨(57·노형동사무소)와 강기천씨(57·일도2동사무소). 기능직인 이들은 각각 35년, 20년간 사무보조원으로, 청소차량 운전원으로 비가오나 눈이오나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켰다. 오는 30일이 정년퇴임일이다.

뜻밖의 환대를 예상치 못했는지 이들의 얼굴에선 희색이 떠나지 않았다.

▲ 수십년동안 몸담았던 공직에서 떠나는 강은택씨 부부(왼쪽)와 강기천씨 부부.
행사장에는 "선배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후배가 되겠습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내걸렸고, 후배들은 떠나는 선배들을 위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 자리에는 김영훈 제주시장도 참석, 진심어린 애정을 표시했다.

김영훈시장 "빛나는 업적 잊지 않을것"...참석 안한 시청 간부에겐 '쓴소리'

김 시장은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했지만 여러분의 빛나는 업적이야말로 후배들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면서 "강산이 두 번, 세 번 반 바뀌는 동안 헌신해온 여러분들의 앞날에 무한한 영광이 있었으면 한다"고 기원했다.

김 시장은 "제주시가 이만큼 발전한 것은 바로 여러분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두분의 이름은 후배들에게 영원토록 기억될 것"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김 시장은 또 "이처럼 성스런 자리를 마련해준 공무원노조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며 "그러나 시청 간부들이 한명도 참석하지 않은 것은 정말 아쉽다"고 쓴소리도 던졌다.

김영철 지부장은 송사에서 "수십년 동안 때론 힘들고 어려웠을 테지만 오로지 시정발전에 헌신해온 선배님들은 남아있는 후배들의 귀감이 될 것"이라고 존경을 표했다.

그는 김 시장에게 "이런 자리가 전 직원으로 확산돼서 서로 격려를 아끼지 않는 인간적인 직장 분위기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 이날 행사 '주인공' 부부가 김영훈 시장 및 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늘 이 자리 영원히 잊지 못할 것" "너무 고맙다" 감사 표시

강은택씨는 "오늘 이 자리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고마움을 표시한뒤 "여러분들의 건강을 빌겠다"고 기원했다.

강기천씨는 연신 "전혀 생각을 못했는데…" "너무 고맙다"며 감격스러워 했다.

퇴임식은 이들이 걸어온 발자취 소개와 기념패 및 꽃다발 증정, 김 시장의 격려사와 송사 순으로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석별의 정' 노래가 울려퍼졌다.

참석자들은 이어진 만찬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만나면 헤어지는게 인간사라지만, 떠나는 선배나 떠나보내는 후배가 격의없이 한데 어울린 이날 모임은 아스라히 사라진 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공무원노조는 앞으로 조합원 여부를 떠나 퇴임하는 모든 직원들을 상대로 퇴임식을 베풀 계획이다.

▲ 퇴임식 직후 가진 만찬에선 선.후배가 격의없이 어울려 소주잔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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