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항소심에서 송두율 교수 징역 15년 구형

30일 오후 서울고법 형사 6부(김용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서울지검 공안1부(구본민 부장검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7년이 선고된 송두율(59.독일 뮌스터대) 교수에 대해 1심 구형과 동일하게 징역 15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날 송두율 교수가 "개전의 정이 전혀 없고 죄질이 무거워 징역 7년은 너무 가볍다"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최후진술에서 "학술토론회의 주제가 되었더라면 오히려 좋았을 내용이 국가보안법의 처벌대상으로서 법정에서 왈가왈부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에서는 민족분단으로 말미암아 일그러진 생활세계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송교수는 "지난 반세기 넘게 정말로 유치한 상호비방 방송이 휴전선에서 멈춘 것처럼 국가보안법도 이번 재판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송 교수는 또한 "역사는 저의 무죄와 함께 국가보안법의 마지막 시간을 반드시 그리고 분명하게 기록할 것이며, 내 영혼의 외로움을 달래줬던 제주도의 검푸른 바다와 광주의 대지와 재회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송교수의 변호인인 김형태 변호사는 "(송교수가) 지도적 임무에 종사했다며 중형을 구형했지만 이에 대한 판단기준이 없다"고 주장하며, "증거능력도 없는 황장엽의 진술과 김경필 파일만으로 '합리적 의심 없이' 피고인이 노동당 후보위원이었다고 판단할 수 없다"며 무죄 판결을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또한 "북한은 더이상 적(敵)이 아닌 화해와 협력의 대상이며 우리 사회 어느 누구도 피고인의 저술로 인해 국가안보가 위협당한다고 여기지 않는 현실을 감안해 피고인에 대한 판단은 학문의 장에 맡기자"고 말했다.

항소심 선고 공판은 7월 21일 오후 2시 열린다.


[송 교수 최후진술 전문]


존경하는 재판장님, 국내외의 커다란 관심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항소심을 맡아보신 재판부의 노고에 우선 경의를 표합니다. 이제 항소심의 선고를 앞두고 저의 진솔한 심경을 담은 마지막 진술을 역사 앞에 남기려고 합니다. 작년 9월22일, 3주일을 예견하고 가족과 함께 37년만에 서울 땅을 밟았던 그때로부터 만 9개월이 넘었습니다. 귀국 다음날부터 시작된 국정원과 이에 이은 검찰의 조사를 거쳐 10월22일 밤늦게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이미 가을, 겨울, 봄을 보내고 여름 장마철을 맞고 있습니다.

“조국은 구두밑창처럼 아무 곳이나 끌고 다닐 수 없다”는 프랑스 혁명의 비극적인 주인공 당통(Danton)의 말이 있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마음대로 끌고 다닐 수 없는 조국 땅을 37년 만에 찾았다가 지금까지 정말 기막힌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는 한 평의 공간에 갇혀있으면서 솟구치는 분노와 형용할 수 없는 슬픈 감정을 억누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학술토론회의 주제가 되었더라면 오히려 좋았을 내용이 국가보안법의 처벌대상으로서 법정에서 왈가왈부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에서는 민족분단으로 말미암아 일그러진 생활세계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 “악법도 법이다”라고 소크라테스를 인용하면서 저에게 국가보안법을 인정하라고 윽박지르는 이 나라의 이른바 중견 언론인의 주장도 저의 귀까지 들렸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것은 악법을 법으로서 인정한 패배자의 행위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동시대인에게 진정한 법이 어떤 것이어야만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성찰(phronesis)케한 분명한 승리자였습니다. 국가보안법의 존재이유(raison d'tre)에 대해서 조금만 고민한다면 국가보안법을 소크라테스의 행위동기에 견강부회(牽强附會)식으로 가져다 부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어떻든 저의 입국 이후로부터 시작된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을 지켜보면서 이 법이 이 사회에서 어떻게 자기최면제의 기능을 하고 있는지를 저는 직접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 법에 의해서 지켜질 수 있다고 믿는 자유민주주의가 바로 이 법에 의하여 무자비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모순조차 바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는 뜻에서 자기 최면제입니다.

그러나 이 법을 둘러 싼 건강한 시민사회의 올바른 담론형성은 머지않아 그러한 비정상적인 현실을 반드시 교정할 수 있으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와 동시에 반 유신투쟁, 광주민중항쟁, 87년 6월 항쟁에 뿌리를 둔 이러한 담론 형성에 외국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 참여할 수 없었던 제가 어렵사리 37년 만에 귀국, 이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사명을 직접 떠 맞게 된 역설에서도 많은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아울러 89년 가을,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현장에서 목격하면서 지구상 유일의 분단민족의 운명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없을까 하고 고뇌하면서 쓴 글들의 내용조차 문제 삼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아직까지도 철폐시키지 못하고 있는 이 사회의 개혁적 역량에 대해서도 가끔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역사의 의미에 대한 회의가 휩쓸고 있는 것이 오늘 날의 시대적 상황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민족의 화해와 통일은 우리 모두의 삶을 지금보다는 더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저는 외국 땅에서도 열심히 그러한 길을 모색해보고, 또 실천의 기회가 조금이라도 주어지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진정으로 고민해야할 문제는 날로 복잡해지는 국제환경 속에서 우리 민족이 어떻게 하나가 될 것이냐 라는 문제입니다. 이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분단 한반도가 오늘 안고 있는 중심의 괴로움을 동북아의 희망의 중심으로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동북아의 집'이니 '동북아 허브'와 같은 정치적 또는 경제적 구상도 나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회-문화적인 통합내용이 빠진 구상들은 많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이나 일본의 '과거청산문제'가 보여주는 것처럼 개별민족의 역사를 현재화하는 갈등이 특히 동북아에 있어서 뿌리가 깊기 때문입니다. 또 다시 강조하지만 복잡하게 얽힌 동북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바로 한반도 통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남북의 상생과 평화를 구현시키는 그러한 아름다운 통일은 동북아의 안정과 번영, 나아가 날로 좁아지는 지구촌의 미래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논어(論語)의 '술이편(述而扁)'에는 사각형의 한 모서리의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을 키우면 나머지 세모서리의 문제도 자연히 풀 수 있다는 뜻에서 계발(啓發)이라는 성어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번 재판의 결과가 남남갈등, 남북갈등 나아가 동북아 갈등이라는 다른 세 모서리의 문제를 깨우치는 '계발'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고 저는 바랍니다.

지난 반세기 넘게 정말로 유치한 상호비방 방송이 휴전선에서 멈춘 것처럼 저는 국가보안법도 이번 재판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리라 믿습니다.

이번 항소심의 결론에 국내외에서 특별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도 같은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저의 무죄와 함께 '국가보안법'의 마지막 시간을 반드시 그리고 분명하게 기록하리라고 믿습니다. 또 내 영혼의 외로움을 달랜 제주의 검푸른 바다와 광주의 뜨거운 대지를 재회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재판부가 보여주신 노고에 거듭 경의를 표시하면서 저의 마지막 진술을 이것으로 간단하게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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