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아픔 풀지 않은 '평화'는 역사에 대한 사기범죄다

제주를 일러 '평화의 섬'이라 한다. 제주를 특별히 개발하겠다는 법에도 이 '평화의 섬' 지정근거를 마련해 놓았다고 한다. 정책하는 사람들도 정부가 요구하는 이런저런 사항을 준비해서 평화의 섬으로 서둘러 지정을 받겠다고 야단이다. 그러면 평화의 섬이 되나보다.

구소련의 고르바쵸프가, 중국의 강택민이, 미국의 클린턴이 제주를 다녀가더니 평화의 섬 이야기가 나왔다. 북한의 김용순 노동당 서기가, 고위급 장관들이 제주에 오고 우리도 감귤북한보내기와 더불어 북한을 세차례 갔다오더니 평화의 섬이 더욱 구체화되는 것으로 보였다.

얼마후면 남북민족평화축전이 열리고 세계의 잘나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와서 평화를 포럼(토론)하게 되면 제주는 더욱 평화의 섬으로 다가갈 것으로 기대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러나 이런다고 평화의 섬이 되는가. 어딘지 모르게 공허하고 석연치 않다. 도대체 어디가 어디로 붙은, 무슨 평화의 섬인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제주는 오히려 저항의 땅, 항쟁의 섬이라 불리우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은가.

이 땅에서는 평화보다는 항쟁과 저항의 흔적을 더욱 숱하게 만날 수 있다. 징기스칸 대제국과의 인연(?)에서 목호의 난 대학살을 발견할 수 있다.

19세기 제국주의 외세의 침탈에 분연히 맞선 현장들을 숱한 민란과 삼의사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동아 공영권을 헛되이 꿈꿨던 일본제국과의 그 고단한 착취의 자취들도 도내에서 어렵지 않게 조우할 수 있다.

제주를 삼무의 섬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거지 도둑 대문의 없음이야말로 바로 평화의 본모습이라고 확장한다. 참으로 우라질. '모두 거지여서 거지가 없고 그렇게 간난해서 도둑질할 게 없으니 도둑이 없고, 그러니 생명을 부지하려면 싫든좋든 함께 살 수밖에 없어 대문이 없고 ---' 실제 사정이 이러하거늘 이것이 평화란 말인가. 이것은 인간의 영역에서 진실일수는 있어도 평화라 할 수는 없다.

거센 바다와 거친 땅을 무대로 때로는 절망으로 순응하고 때로는 진취로 응전하면서 한많은 세월을 살아온 이 땅 섬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는 투쟁과 고난이라면 모를까 평화와는 너무나 먼거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평화의 섬을 말하려면 이 저항과 항쟁, 질곡과 고단으로 점철된 평화의 역설들을 풀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역사와의 대화, 그 세월의 진실과 마주하지 않고 평화를 논한다면 그것은 우물안 개구리의 과대망상이요 역사에 대한 사기범죄에 가깝다.

제주의 하늘에 이고가야 하는 그 평화는 무력한 인간으로서 오늘 여기 그러면서 포기할 수 없는 삶에 대한, 하지만 내생(이어도)에 가서라도 피하고 싶은 차라리 경건한 평화에의 기원이요, 그래서 참으로 절박한 평화에의 소망인 것이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의 섬은 정치학적 수사나 경제학적 기교여서는 곤란하다. 아픈 우리의 경험을 딛고서서 정의와 인권과 복지를 갈망하고 소원하는, 폭력과 파괴와 유린을 증오하고 반대하는 그런 평화의 섬이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문제는 말이 아니라 실천이지만.
<송재호의 포커스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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