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1년 허송 세월로 보내는 것은 아닌지…

포르투갈 마데이라 주지사와 김태환 지사가 자매결연 협약서를 교환하고 있다.
포루투칼 마데이라에 다녀왔습니다. 가고 오며 8번 비행기 갈아타고 34시간이나 비행기 타며 무척이나 힘들었던 일정을 정신력으로 소화하며 다녀왔습니다. 다녀온 사연은 다름 아니라 제주특별자치도와 마데이라 간 자매결연 체결하러 자매결연단과 같이 갔다 온 것입니다. 지금 아니면 언제 내 주제에 머나 먼 포루투칼이라는 곳을 언제 가 보나 싶어 기꺼이 따라 나섰습니다. 막상 포루투칼에 가기 전 우선 포루투칼에 관해 내가 아는 모든 지식을 총 점검하였더니 다행스럽게도 포루투칼어 중 몇 단어 아는 게 있었습니다. 피구(축구선수), 빵, 다바꼬(담배), 고뿌(컵, 사실 우리는 꼬뿌가 컵이라는 영어의 일본식 발음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고뿌는 ‘잔’을 나타내는 포루투칼어입니다.) 등등.

마데이라는 포루투칼에서 1,000키로 떨어진 대서양 가운데 있는 섬으로 인구는 25만 정도이고 면적은 제주도 1/3만 합니다. 마치 울릉도 같데요. 이용 가능한 토지가 부족해서 그런지 산 정상에도 집들이 빼곡히 들어 차 있고 심지어 70~80도의 급경사에서도 바나나를 재배하고 있었습니다. 도로는 좁고 경사가 심한데다 서부와 북부지역에는 제주도 못지않게 센 바람이 자주 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데이라는 지금이 겨울인데도 서안해양성 기후라 그런지 낮 기온이 섭씨 15정도를 맴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기도 바람이 불면 정신없데요.

마데이라 역시 우리처럼 관광이 주산업입니다. 다만 우리와 다른 점은 마데이라는 장기 체류형, 휴양형 관광지라는 것입니다. 그들 말로는 관광에 대해서는 이미 200년 된 노하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시스템을 계속 유지, 운영만 하면 관광에 관한한 별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물론 매년 새해맞이 행사로 무려 500만 불을 쏟아 부으며 엄청난 불꽃놀이를 합니다. CNN에서도 이를 중계방송 할 정도로. 그래서 그런 지, 마데이라는 유럽인들의 가장 선호하는 휴양지 중 한곳이라고 합니다.

마데이라의 선택과 집중, 관광-IT·에너지개발·국제무역만 집중 지원

200년의 관광노하우를 갖고 급하지 않게 확실한 시스템으로 관광산업을 이끌고 있는 마데이라.
가고 오며, 혹은 가서 보고 느끼고 깨달은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선택과 집중입니다. 마데이라에서는 관광문제에 관한한 그리 조급해 하고 있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어차피 그들은 이미 200년 된 관광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운영만 잘하면 된다 그거죠.
수출자유무역단지에도 제조업 즉 고용창출과 부가가치가 높은 제조업 기업 우선으로 IT, 에너지개발, 국제무역 부분에만 집중적인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 지원 대상기업에게는 확실히 주정부가 토탈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다음은 제도입니다. 제도가 경제성장의 중요한 요소라는 것은 경제학에서는 이미 상식입니다. 이 관점에서 마데이라의 경제성장을 설명하자면 그것은 고도의 자치와 법인세 3%라고 여겨집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그리 먼 곳까지 가서 자매결연하고 마데이라를 벤치마킹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대목입니다. 즉 고도의 자치권을 중앙정부와 EU로부터 승인받고 법인세율 인하와 같은 제도를 도입하여 30년 만에 상대적으로나 절대적으로 급속한 국민소득을 향상시켰다는 것입니다. 중앙정부의 비협조와 여러 가지 난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제주특별자치도가 특별자치도 완성을 위한 제도개선 2단계 역점사업으로 ‘BIG-3’ 관철에 총력을 다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제도만 있다고 되는 건 아닙니다. 마데이라처럼 고도의 자치를 승인받았던 포루투칼의 소레이즈 같은 경우 이 제도를 가지고도 경제성장에 실패하였습니다. 즉 운영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발휘하지 못한 거지요. 즉 제도는 단순한 제도도입으로 모든 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제도의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운영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제도의 투명성과 운영의 안정성입니다. 마데이라가 포루투칼 정부를 설득하고 EU의 승인을 얻게 되었던 것은 고도의 자치와 법인세율 인하로 인해 발생될 수 있는 역기능, 예를 들면 조세탈피처, 페이퍼컴퍼니 등의 확실한 방지를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현재 제주특별자치도가 정부를 설득시킬 수 있는 논리개발이 필수적 과제가 와 닿습니다. 마데이라는 이 부분에서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포루투칼 정부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얻고 EU의 지속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지속적 성장이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포루투칼 정부는 마데이라의 지형학적 한계에 대한 보상적 성격으로 지원을 약속한 측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마데이라가 믿음과 확신을 주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여전히 타시도와의 형평성 문제만을 거론하며 이 문제에 대해 무관심한 우리 처지로서는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 이를 학습하여 반드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대목이라고 느꼈습니다.

믿음과 확신을 중앙정부·EU에 주고 고도의 자치권·법인세율 인하 등 확보

마데이라는 중앙정부와 EU를 설득해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고도의 자치권과 법인세율 인하 등을 확보했다.
이와 함께 정치체제의 안정입니다. 마데이라의 현 주지사는 현재 29년간 마데이라를 독재통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정치·사회적 문제가 있을 법도 한데, 표면적으로는 주정부 정책의 결정과 시행에 대하여 의회, 사회단체, 주민가 모두 적극적인 지지와 자발적인 참여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바로 이점이 시장 경제주체나 투자하려는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불확실성 즉 미래의 불확실성과 시장의 비효율성을 해소하고 안정적 투자와 시장경제활동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요소인 것 입니다. 개발을 포함한 모든 사업이나 정책에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반대를 위한 반대, 억지논리, NIMBY, 집단이기주의 등으로 가득 찬 지금 우리로서는 부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갖가지 난관과 무한 경쟁 속에서 제주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제주경제의 시장주체들이 합심해서 제주경제 활력회복과 성장잠재력 확충에 총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제주사회 내 각종 이해집단의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하여 사회적 통합을 제고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외에도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그 모두를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꼭 짚고 넘어 가야 하는 사실은, 분명 제주특별자치도와 마데이라는 엄청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식이고 엄연한 사실입니다. 단적인 예로 마데이라는 사민당이 집권하고 있습니다. 즉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가지고 있어 민주주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와 같은 정치·경제체제를 가진 우리와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아울러 역사·문화적 배경도 다르고 현 사회·정치체제도 다릅니다. 그런데 혹시 다르다는 상식에만 집착하여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 바, 나아가 배워서 우리 삶의 자양분으로 삼아야 하는 궁극을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고 있을까요? 바로 이 때문에 그 멀리 마데이라까지 제주특별자치도 자매결연단 일행이 어려운 걸음을 한 것입니다.

특별자치도 출범 후 의미없는 1년을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자매결연 협약을 체결한 후 기념사진을 찍은 제주도-마데이라 주정부 인사들.
돌아오는 비행기 내내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평상심의 리더쉽'이었습니다.
8번 비행기 갈아타고 34시간이나 비행기 타면서 살인적인 일정을 수행하고 돌아와서,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막 바로 정부부처 순회하고, 저녁에는 지역행사 참석하고 늦은 밤까지 밀린 업무 보고 받고. 그런 제주특별자치도 도지사를 보며 기자들이 그러더군요.

“타고 났다”, “초인적이다.” 

토요일 오후 돌아와서 일요일 오후 2시까지 죽은 듯 자고 나서도 여태까지 피로회복은 커녕 시차적응도 못해 계속 빌빌대고 있는 젊은 나로서는 ‘죽었다 깨도 못할 일’입니다.

돌아와 보니 1심 판결이 나 있었고 아마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공방을 계속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린 의식 못하는 사이, 일년을 그것도 아주 중요한 일년을 이렇듯 의미 없이 보내고 있다는 우려 혹시 안 드십니까? 아주 중요하고 심각한 일을 걱정하는 듯이 그럴듯한 표정 지으면서. 이러 저런 것에 다 즉시적 반응하고 나중엔 레임덕 다 챙기면서 어느 누가 도정 운영 잘 하고 당장 도민들 먹고 살 고민할 수 있을 런지.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현 제주특별자치도 지사는 평상심의 리더십을 가지고 특별자치도 완성에 죽기 살기로 정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돈쓰고 고생하며 마데이라 공식일정을 다녀와 제가 느낀 엄연한 사실입니다.

원래 어떤 사회 혹은 조직의 리더는 본질적으로 늘 불안한 상황에서 활동합니다. 또한 항상 새로운 도전을 접하게 되죠. 도민들에게 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아무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세상으로 도민들을 선도해야 합니다. 더욱이 리더 자신도 가보지 못했던 새로운 영역으로 도민들을 이끌고 가는 일은 본질적으로 불안한 상황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리더에게 있어 정서적 안정이 특히 중요합니다. 가령 모든 사람들이 들떠있을 때에도 리더 홀로 평상심을 잃지 않아야 하며 반대로 모든 사람들이 긴장하고 두려워하고 있을 때에도 변함없는 항상심을 가지고 올바른 길을 찾아 가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좁은 시야를 벗어나지 못할 때 넓은 것을 보고, 멀리 보지 못할 때 지평 너머를 볼 수 있고, 사람들이 눈앞의 현상에 매여 있을 때 앞날의 결과를 바라 볼 수 선견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평상심을 잃지 않게 하는 정서적 안정은 극복해야 할 것을 극복하며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고 불가능한 일을 자신 있게 이루어 나갈 수 있게 합니다.

새로운 변화·치열한 도전…'뉴제주 운동'이 대안은 아닐까?

저는 이번에 그러려고 애쓰는, 치열하게 도전하는 모습을 똑똑히 확인 하였습니다.
 
‘밖에서 보면 안이 보인다’고 했나요.
제한적인 조건과 우리 보다 훨씬 못한 자원, 일천한 역사·문화를 가지고도 자신 있게 차고 내 달리는 마데이라 사람들을 보며 비생산적인 소모전으로 피같이 귀한 시간을 흘러 보내고 있는 지금이 안타까웠습니다.
이웃 일본에서는 이미 잃어버린 10년을 딛고, 갈등과 비난, 분열과 충돌의 차원을 벗어나 모든 국민들 스스로가 생활의 변화를 이끌어 내보자는 취지의 생활유신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최근 제기되고 있는 <뉴제주 운동>이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있지는 않을 까요?

진관훈(제주특별자치도 경제정책특보, 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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