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철의 제주해안 따라가기 ②] 제주시 해안도로

한라산 산신에게서 여의주를 훔쳐 달아나다가 한라산신의 화산에 맞아 돌로 굳어졌다는 좌절의 전설을 가진 용두암 옆으로 제주시 해안도로가 이어진다.

까페와 펜션, 횟집으로 이어지는 이 길을 짚는 이유는 이런 화려한 것들 속에 묻혀서 희미해지는 것들을 보듬기 위해서다.

▲ 까페와 횟집이 줄지어 늘어선 해안도로, 낮은 오히려 적막하다. 제주공항에 내려앉는 비행기는 5분마다 줄을 잇는다.

해안도로에 가면 일단 차에서 내려야한다. 해안도로는 대부분 썰물과 밀물이 드나드는 조간대와 그 주위의 공유수면이라고 부르는 임자없는(?) 땅에 만들어졌다.

사실 이 곳의 주인은 너무 많다. 조간대에 서식하던 무수한 생물들과 그 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사람들, 그들이 해안도로에 밀려 바다 쪽으로 물러섰기에 그들을 만나려면 차에서 내려 해안도로를 벗어나 다가서야 한다.

그리고 뭇 생명들이 깃들어 있던 그 자리를 거리낌 없이 메워버린 철없음을 뉘우치면서 아프게 걸어야 하는 곳이다.

▲ 해안도로의 정겨운 친구들, 해안식물인 갯메꽃과 거북등 같은 빌레, 그리고 '탈'이라고 불렀던 멍석딸기를 만났다.

용두암에서 해안도로를 따라서 서쪽으로 가다보면 용담레포츠공원과 만나는 곳에 작은 포구가 있다.

이 곳의 이름이 다끈내포구이다. 이 다끈내마을에는 170가구 700여 주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1980년대 제주국제공항이 확장되면서 항공기소음으로 인해서 정든 삶의 거처를 옮겨야 했다.

다끈내마을은 지금으로부터 400여년전에 설촌되었고, 마을사람들은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였다.

어업을 위해 ‘인근의 갯가를 정으로 일일이 손질해 포구를 만들었다’고 해서 “닦은개”에서 다끈내로 불리기도 하였다.

이 포구에 가면 정든 마을을 떠나야만 했던 이곳 사람들의 슬픈이야기와 이 마을을 떠나지만, 마음속에서 지우지 않겠다는 다짐이 비석으로 새겨져 있다.

하지만, 다끈내포구에는 아직도 바다를 지키는 고기잡이배 몇 척과 늙은 잠녀, 그리고 불꺼진 도대불이 적막함을 달래고 있다.

▲ 다끈내포구에는 도대불 2기가 있다.

어촌에 전기가 보급되기 전 바다에 나간 고기잡이배들의 등대역할을 했던 것이 도대불이다.

이곳의 도대불은 포구의 입구에 돌로 쌓아 만든 것으로 높이는 어른키 보다 조금 크고, 맨 꼭대기에 나무나 생선기름 또는 석유를 놓고 태워서 그 불빛으로 포구를 알리는 구실을 하였다.

지금이야 해안도로의 휘황한 불빛으로 이런 불을 피워 놓아도 보이지도 않겠지만, 30년 전만 해도, 마을 대부분 호롱불로 밤을 밝혔던 때라, 바다에 나간 배들은 멀리서도 이 불이 이정표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불빛을 잃어 포구를 지키는 수문장처럼 서 있을 뿐이지만, 예전 이 포구를 집 삼았던 배들이 바라보았던 도대불은 제주바다위에 떠있던 별빛처럼 떠있을 것이다.

   

다끈내포구에서 서쪽으로 가다보면 해안도로 오른쪽에 돌로 쌓은 구조물을 볼 수 있다.

제주도에는 해안선을 따라 이런 연대를 볼 수 있는데, 고려말기와 조선시대초기에 왜적의 침략이 심하여 이를 방어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연대는 왜적이 침입시 주변연대에 연기를 피워 침입을 알리고, 주위의 수군과 협력하여 왜적을 무찌르는 역할을 하였다.

제주 해안가오름에는 봉수대가 있는데, 이 곳은 높은 지형상의 이점을 이용하여 왜적의 침입사실을 목관아지 또는 현성에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이 곳 연대의 위에는 가운데를 50cm쯤 낮춰서 방호벽의 구실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 연대는 원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고, 10년 전에 복원한 것으로 제주의 척박한 환경과 더불어 왜적의 침입과도 싸워야만 했던 제주인의 힘들었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수근연대를 나와 다시 서쪽으로 가면 바닷가에 돌담으로 둘러쳐진 용천수를 볼 수 있다.

제주의 해안에는 이와 같은 용천수를 많이 볼 수 있는데, 내리는 비가 대부분 지하로 스미어 바닷가 부근에서 솟아나는 제주도에서는 용천수는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삶의 요건이었다.

이 곳에서 솟아나오는 용천수는 대부분 구역을 나누어서 사용하였는데, 맨 위쪽의 물은 식수로 그 다음 물은 음식물 등을 씻는 물로, 마지막 물을 목욕과 빨래를 하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수도가 보급된 후 이런 구분이 없어지고, 더위를 식히는데 이용하는 목욕탕이 되어 버렸다.

물이 소중했던 제주사람들은 이런 용천수를 중심으로 마을을 만들고, 이 물을 같이 먹으면서, 마을 공동체로서의 끈을 엮어나갔다.

이 용천수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이 ‘몰래물마을’이다. 지금은 마을입구에 세워진 비석이 예전 이곳에 마을이 있었다는 것을 소리 없이 전할뿐이다.

이 마을도 다끈내마을과 함께 1970년경에 제주국제공항 활주로 확장공사 때, 항공기 소음으로 인해서 주민들이 이주한 마을이다.

▲ 잠녀할머니의 숨비소리와 긴 세월동안 잠녀의 염원을 담았음직한 촛불들, 그리고 그위로 쓰레기들이 덮히고 있다.

제주국제공항의 건설과 해안도로의 건설은 고즈넉한 마을들과 다양한 생물의 삶터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개발의 바람 앞에 하찮게 보였을지도 모르는 것들이 이제 자세히 보면 큰 빈자리로 남았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아직도 개발의 여파가 멈추지 않은 이곳 해안도로에서 지키고 보듬어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 홍영철님은 제주의 새로운 관광, 자연과 생태문화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대안관광을 만들어 나가는 (주)제주생태관광(www.ecojeju.net )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제주의 벗 에코가이드칼럼’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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