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침공에 추가파병을 감행하려는 참여정부에 드리는 고언

지난 일주일간(6월 25일~7월 2일) 프랑스와 스위스를 다녀왔습니다.

처음 가보는 곳은 아니어서 그런지 별로 소득을 기대하지 않고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같이 간 일행들은 그 호사스런 옛 궁궐들을 바라보면서 입을 쩍쩍 벌렸습니다만, 나의 속은 타들어가기만 했습니다.

저들이 기득권을 이용하여 얼마만큼 '인민'을 착취했으면 밑바닥부터 뒤집어졌을까하는 고민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게 바로 프랑스 시민 대혁명(1792)이었더군요.

스위스의 루체른(Lucerne)이란 마을을 갔습니다. 그곳도 겉으로는 호화스러 보였습니다. 그러나 아주 슬프고도 가슴아픈 '용병'역사를 간직하고 기념하고 있었습니다.

루체른 지방은 원래 농촌지역이라 가난하기 짝이 없었나 봅니다. 주로 여자들이 농사를 짓고 나머지 남자들은 이웃나라 프랑스로 용병으로 자원해서 품팔이를 나갔었나 봅니다. 루이 16세의 궁궐에 약 300명이 가서 호위병 생활을 맡고 있었답니다. 스위스 군은 사자처럼 아주 용맹스럽고 충성스러웠답니다.

그런데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 시민군들이 궁궐을 처들어 왔을 때 그 절반이 목숨을 잃어야 했답니다. 그후 또 절반이...

마침 그 용병가운데 휴가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왔던 단 한 군인만이 살아남을 수가 있었답니다. 잃어버린 동료들을 기념해 주어야 할 오직 한 사람이었다는 책임감 때문에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다가 그 지방 출신으로 유명한 조각가인 베르텔 토르발드센(1770~1844, 당시 로마에서 활동)에게 부탁하여 기념비를 세우고자 했답니다.

그는 딱한 사정을 듣고 쾌히 조각 디자인을 해 주었답니다. 그러나 그 조각을 위한 석고뎃상을 보내 주질 않아서 수년간을 조각하지 못하고 있었답니다. 간청을 수없이 해서 얻어내어 만들어낸 기념상이 바로 '통곡하는 사자상'이었습니다.

이 사자상 앞에 다가서는 순간 바로 우리나라의 '파병'(=용병) 현실을 절감하게 하는 교훈을 받았습니다.

'용병'(mercenery)이란 단어의 뜻을 정확히 몰라 사전을 찾다보니 이렇게 해설해 놓았더군요: "돈이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

창녀나 청부살인자와 같은 의미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나의 중고등학교 동기들 중에는 전사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나는 그 친구보다 3년정도 늦게 입대했지요. 나는 그 당시 베트남으로 파병되는 것이 두려워 '빽'을 써서 최후방 부대로 숨었습니다. 베트남 가는 것 보다 거기 가기 위한 준비훈련인 '유격훈련'이 지긋지긋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내 목숨을 개같이 버릴 수는 없다'는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요즘 대한민국 군인들은 이라크로 파병되길 자원하는 자가 많아 경쟁률이 대단하다 하더군요. 서울에 사는 내 동창 중 한 친구와의 전화통화에서도 여실히 들어나더군요. 막내 아들이 군에 가 있는데 이라크 파병을 지원한다면서 부모의 동의서를 받아 오라고 해서 병무청에 함께 가서 사인해주고 왔는데, 집에 혼자 돌아와서 곰곰히 생각하니 분해서 뒷 날 가서 취소하고 왔노라고 하더군요. "애들은 엄마 맘을 몰라..."하면서 울음보를 터트리더군요.

'명분이 없는 전쟁'일 뿐만 아니라 '더러운 전쟁'에 왜 대한민국 '국군'이 끌려가야 합니까? 박도 선생님은 "고위층 자녀부터 파병하라"고 주장했더군요. 맞습니다. 가진자의 자녀부터 보내야 합니다. 앳궂은 못가진 자들의 자녀가 '돈벌이'나 진급의 호기로 착각해서 자원하는 현실이라면 그것은 해도 너무한 것입니다.

그 책임은 몽땅 '참여정부'가 져야할 몫입니다. 바로 입법부와 행정부의 수반들이 져야할 막중한 대사인 것입니다.

'과거 미국의 은혜에 대한 보답을 지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또 다른 한편에서는 높다고 들립니다. 미국의 한반도 '점령'이 은혜라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의 역사만 봐서도 안됩니다. 세계사를 좀더 살펴 봐야 합니다.

저들의 지구촌 '패권전략'과 그 '더러운 역사'을 면밀히 살펴 봐야 합니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지 않겠습니다. 1905년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은 테프트(Taft) 미 외무장관과 가츠라(Katsura) 외무상 간의 평화조약을 미국의 뉴 헴프셔 주에서 체결케 만듭니다. 간략하게 '테프트-가츠라동의서'라고 불려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식민지 지배를 묵인하는 한편 미국은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 점령을 묵인하는 내용이 담겨진 조약입니다.

그 조약 이후 미국은 필리핀을 초토화하고 반항하는 주민들을 대량학살해 버렸습니다. 역사학자들은 1920년까지 벌어진 침공에서 1백만인이 죽어갔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편에서 일본제국은 한반도를 점령하여 같은 짓거리를 서슴없이 저질렀습니다. 만주와 중국본토를 침공하여 소위 난징대학살과 강간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서구 국제사회는 아무런 소리도 내질 않았습니다.

지금 부시 행정부가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일본을 재무장 시키는 이유를 면밀하게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들은 1백년 전 이전부터 '친분'이 두터운 나라들입니다. 모두 제국주의 근성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주변 사소한 작은 나라들은 저들의 입맛(=국익)에 따라 요리되고 맙니다.

미국과 일본의 '주적'은 북한이 아닙니다. 중국과 구소련인 러시아입니다. 지금 러시아는 국내 경제사정으로 두 번째 서열에 있지만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사자'인 중국을 엄청나게 경계하고 있습니다.

이란, 이라크, 조선인민공화국, 시리아...등 작은 나라들을 '악의 축'에 넣으면서 왜 중국과 러시아를 거기에 포함시키지 못했을까요? 참으로 궁금합니다. 50여년 전 한반도 전쟁에서 피튀기면서 싸운 '주적'(=악의 축) 아닙니까?

문제는 국력과 국익입니다. 스위스란 조그만 산골짝 나라(경상남북도 크기)가 어떻게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먹히지 않고 살아 남았는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한반도를 스위스처럼 '영세 중립화' 선언을 하는 일이 우리의 숙제이기도 합니다.

산골짜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저들은 산으로 올라가는 기술뿐만 아니라 산을 관통하는 기술, 그리고 금융과 공업을 동시에 중심지로 만들었더군요.

시계 하나에 몇 만불씩하기도 하고...

저들의 지혜를 많이 배우고 익혀서 실천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 간절했습니다.

이제 제발 저들에게서 또 하나의 교훈을 받아들여야 할 때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용맹과충성'만이 최고의 선은 아니라는 것도.

'통곡하는 사자의 상'의 윗벽에는 그렇게 새겨져 있었지만, 왜 울어야 하는 지는 몸짓으로 보여주고 있더군요. 창과 방패를 배게삼아 울어야 하는 그런 용맹과 충성임을.

우리가 용맹과 충성으로 인해서 베트남 사람들에게 저지른 만행을 자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더 이상 용병이 아니되겠다고도.

국익보다 앞서는 것은 바로 인간의 생존권이고 인간의 존엄성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목숨과 존엄성을 버리고 얻는 국익은 쓸 데가 없습니다.

국익이 최우선이라고 부르짖는다면 바로 파쇼가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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