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철의 제주해안 따라가기 ③] 도들오름과 도두마을

도들오름의 다른 이름은 '도두봉(道頭峰)'이다.

'도드라진 오름'이라는 뜻의 도들오름을 한자음을 빌어 쓴 이름이 도두봉이란 뜻이다.

신기하게도 우리말 이름과 한자명 모두 이곳의 특성을 잘 표현했다.

도들오름이라는 뜻으로 보면 이곳이 바다와 만나면서 앞으로 나가있어서 그럴 듯하고, 도두봉이라는 한자명을 놓고 보면 도두봉 바로 뒤로 제주공항이 있어, 제주의 맨처음의 머리부분이라는 설명도 맞아 떨어진다.

▲ 사진 왼쪽으로부터 서쪽 방파제에서 바라본 도들오름 전경과 도들오름에서 바라본 도두매립지, 도들오름에서 보이는 제주공항.

더욱이 신기한 것은 이곳 도들오름과 도두마을이 제주의 생태적 특성과 문화적인 모습, 그리고 현재 제주가 안고 있는 문제점도 골고루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도들오름에 올라보자.

도들오름을 바다쪽으로 들어가서 많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곳에서 바라본다.

파도와 바람에 침식된 도들오름의 북쪽면을 보면 수중화산에서 형성되는 응회암과 현무암 용암이 뒤엉켜있다.

황토색 응회암지층 사이에 검은 현무암지층이 뚜렷한 대비를 보이면서 '어떻게 이런 지질구조가 되었나'하는 궁금증을 유발한다.

도들오름이 탄생하는 시점으로 돌아가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 사진 왼쪽이 응회암과 현무암이 뚜렷한 대비를 보이는 지층, 가운데가 관입현무암, 오른쪽이 도들오름 정상의 붉은 스코리아(송이).

도들오름이 형성되는 초기에는 뜨거운 용암과 가스, 그리고 바다물이 만나면서 폭발력이 강해져 아주 작은 입자로 바다속에서 먼저 쌓이면서 육상화되어간다.

그 다음은 초기폭발에서 가스가 소진되고 난 다음은 폭발력이 없는 용암이 분화구에서 밀려나온다.

분화구 밑에서는 계속해서 용암을 밀어올리는 힘이 있기 때문에 분화구를 통해서도 용암류가 흘러나오고 또한 응회암 지층사이의 균열을 밀면서 검은 현무암용암이 황토색응회암 사이에 지층을 이룬다.

이때 검은색 지층을 이룬 현무암을 '관입현무암'이라고 부른다.

쉽게 풀이하자면 관에 들어간 현무암이라고 할까?

어떤 부분은 이런 관입현무암이 지층사이에만 머무르지 않고 지층을 뚫고 나오기도 한다.

도들오름의 정상부근에는 붉은 색의 스코리아(송이)로 이뤄져 있는데, 육상화산의 대표적인 지질이다.

이렇게 보면 도들오름은 수중폭발과 육상폭발의 단계를 거친 이중화산이다.

대표적인 이중화산이라고 하는 송악산이나, 말미오름처럼 선명한 이중화산의 구조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찬찬히 관찰해보면 이중화산의 특징외에도 관입현무암구조도 볼 수 있다.

▲ 도두마을 오래물의 현재 모습이다. 용천수에 더위를 잊었던 옛날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

도두마을은 또한 제주의 또 하나의 대표적 특징인 해안 용천수를 가지고 있다.

제주의 모든 해안마을에는 용천수가 있고, 삶의 필수조건인 용천수 주위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자연히 용천수가 있는 해안지역이 마을이 발달했다는 것은 이미 상식화된 이야기다.

도들오름을 끼고 바닷쪽에서 나오면 도들오름의 아랫자락에 오래물이라는 용천수가 있다.

언뜻보면 제주사람들이 예전에 식수와 땀을 식히던 그런 용천수는 없다.

콘크리트로 잘(?) 지어진 공중목욕탕같은 건물이 4개가 주차장 주위에 있다.

남탕 둘과 여탕 둘, 입구에는 남탕과 여탕을 알리는 표지판이 뚜렷하고, 마을청년회에서 500원씩 받는다는 문구도 적혀있다.

아직 본격적인 이용시기가 아니여서인지 돈은 받지 않고 있다.

잠시 기웃거려본다.

실망스럽다.

벽에는 거울이 붙여있고, 샤워꼭지까지 매달아 놓았다.

집에서 샤워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오히려 이곳에서 비누와 샴푸를 잔뜩 머금은 물이 바다로 바로 흘러가지 않을까 걱정된다.

여름밤 깜깜한 어둠을 틈타 더위를 식혔던 물통들이 이렇게 탈바꿈하고 있다.

예전 용천수의 소중한 가치도 따라서 퇴색하고 있다.

▲ 왼쪽이 민간신앙의 성소인 오름허릿당이고 오른쪽이 유교식 마을제를 지내는 포제단이다.

도들오름을 오르다보면 또 한가지 제주의 문화특징을 담은 '신당'을 만날 수 있다.

도들오름을 중턱쯤 오를무렵 체력단련을 위한 시설들이 있고, 이 시설의 옆으로 난 길을 들어서면 금방 '오름허릿당'이 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포제단이 있다.

제주의 신당에 대해서 아시는 분들에게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장면이다.

신당은 민간신앙을 상징하고, 포제단은 유교적 제사를 상징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유교사상이 성행했던 조선시대에 제주에 부임했던 이형상 목사가 유교적 이념과 대립되는 신당과 절을 모조리 불질렀다는 기록이 있다.

민간신앙에 대한 탄압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일제시대, 이른바 근현대화시기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제주에는 조선시대 때 불살랐다고 하는 500개의 당만큼의 숫자가 아직도 건재하다.

그 강한 생명력과 제주사람들의 관계에 대해서도 곰곰히 생각해 볼 문제다.

그런데 이곳에는 포제단과 신당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

포제단에 밀려 사라질 듯도 한데, 신당은 치성을 드리는 손길로 깨끗하고, 포제단은 풀로 덮혀있다.

현재의 모습으로 판단할 일을 아니지만, 이 곳 사람들에게 신당이 가지는 의미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 도들오름에 핀 꽃과 열매들이다. 왼쪽 위부터 가시엉겅퀴, 개망초, 멍석딸기(도들오름을 바다쪽으로 오르다보면 온통 멍석딸기밭이다), 단풍든 수영잎, 술패랭이(수염이 달린 패랭이), 원추리.

도두마을은 마을의 모습이 자주 바뀌는 곳이다.

공항이 들어서면서 마을이 잘려나가고, 해안도로가 이어지면서 한적한 어촌마을이 개발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리고 가장 최근 부두 옆지역이 매립되면서 그 모습은 더욱 빨리 달라져간다.

굳이 과거 도두마을의 모습을 기억하지 않는 사람들도 지금의 도두마을을 보면 개발이 남긴 것과 그 속에서 사라져간 것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도두를 아름다운 고향으로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의 깊은 한숨을 도들오름은 어디에 담아 두었나?

▲ 현재 도두마을의 모습들. 왼쪽 위부터 도두매립지 방파제와 매립 후 사용되지 않는 부지, 도들오름 입구에 방치된 시멘트 말, 가라앉는 떼배는 도두의 예전 모습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리고 해안에는 쓰레기와 사용 후 방치된 야적물들이 오름을 막고 있다.

※ 홍영철님은 제주의 새로운 관광, 자연과 생태문화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대안관광을 만들어 나가는 (주)제주생태관광(www.ecojeju.net )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제주의 벗 에코가이드칼럼’에도 실려있습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