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재래시장에서 여덟살짜리 아들과 경제를 논하다

▲ 제주에서 가장 큰 동문재래시장입니다. 이처럼 매일 붐비면 얼마나 좋을까요? ⓒ 강충민
일요일인 어제 늦은 아침을 먹고 각시와 저는 시장에 갈 채비를 했습니다. 설에 쓸 제수용품 중에서 미리 구입해도 되는 생선과 건어물을 구입할 요량으로요.

곤한 낮잠에 빠진 딸 지운이는 어머니에게 부탁을 하고 나오는데 원재도 따라나섭니다. 사실 온 가족이 다 외출 겸 가고 싶었지만 지운이가 감기 기운이 있어서 어머니에게는 못내 미안했습니다.

내가 대형마트 대신 재래시장을 찾는 까닭

집 근처 대형마트가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그곳을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말로만 재래시장 활성화를 얘기하고 다들 공감하지만 실천에는 인색한 것을 제 자신부터 바꾸려고 한 것이지요.

또 늘 겪는 일이지만 '1+1행사', '사은행사'다 해서 정작 필요하지 않은 것도 구입해서 애초 계획보다 과다지출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이기도 하고요.

"아빠, 우리 ×마트 가는 거 아니야?"

차 안에서 아들이 묻습니다.

저는 그 물음에 "응"하고 짧게 대답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왜 대형마트가 아니고 재래시장에 가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하려고 애를 썼을 테지만 지나치게 설명이 길면 아이가 피곤할 거라고 핀잔을 주던 각시 말이 떠올랐습니다.

차를 주차시키고 먼저 제주도 제사상에 빠지면 안 되는 옥돔을 사러 생선좌판에 들렀습니다. 몇 년째 아니 몇 십 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는 할머니와는 단골을 튼 사이라 살갑게 반깁니다.

바로 옆 자리를 지키는 할머니는 고등어를 주로 파시는데 온 김에 말린 고등어도 몇 마리 샀습니다. 고등어를 사니 아들 원재가 더 없이 좋아합니다. 원재가 제일 좋아하는 생선이 고등어지요.

▲ 옥돔파는 할머니입니다. 잘 말려져서 굽기에 좋습니다. 단골이라고 두개를 주면서 "내가 못살아"하셨지만 표정은 웃고 있었습니다. ⓒ 강충민
▲ 제주에서는 "갱"이라고 하는 탕거리용 생선을 샀습니다. 무를 같이 넣고 끓이면 시원하고 담백합니다.ⓒ 강충민
▲ 동문시장에서 유명한 순대국밥집 어머니입니다. 대학 때부터 다녀서 지금도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TV에도 출연하셨던 꽤 유명한 분입니다. ⓒ 강충민

동태포도 사고 산적용으로 돼지고기, 소고기도 샀습니다. 이럴 때 김치냉장고가 있으면 좋겠다는 아내의 말에 저도 맞장구를 쳤습니다. 아무래도 산적용으로 산 돼지고기, 소고기는 냉동실에 보관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과일이나 야채는 설 전날 사기로 하고 순대국집에 들렀습니다. 국물이 진한 정말 맛있는 곳이지요. 우리는 점심을 해결하고 이가 부실한 어머니를 위해서는 삶은 머릿고기를 사고 나올 요량으로요.

"원재야. ×마트하고 시장하고 뭐가 달라?"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가며 맛있게 먹는 원재에게 일부러 '×마트와 시장 중에서 어디가 좋아?'라고 묻지 않고 뭐가 다른지를 물었습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원재의 입장에서는 대형마트 밝은 조명 아래서 산더미같이 쌓인 물건들과 쇼핑카트가 주는 편리함이 훨씬 더 좋을 테니까요. 또 각양각색으로 원재를 유혹하는 것들은 얼마나 많고요.

"시장에서 물건 파는 사람들은 다 주인이야"

숟가락을 내려놓고 잠시 고민하더니 "힌트 줘봐. 아! 그리고 답 말하지 말아봐. 내가 맞출게"하며 다급하게 저의 입을 막습니다.

그리고는 엄마를 보며 "엄만 알아?" 합니다. 그 말에 각시는 배시시 웃기만 합니다.

대형마트에 비해 재래시장이 불편하고, 많이 걸어야 하고, 쇼핑카트가 없고, 이런 여러 가지 다른 점들은 애초부터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지 그 말은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아직 어린아이인 아들에게 과한 생각을 바라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데 아들이 드디어 외칩니다.

"아! 알았다! 시장에선 돈을 다 따로 내."

▲ 원재가 맛있게 순대국밥을 먹고 있습니다. 내장만 집중적으로 먹는 것을 보니 나중에 술 깨나 마실 것 같습니다. ⓒ 강충민

기다리던 제가 바라던 대답이 나오자 눈물이 나올 뻔했습니다. 참나…. 저도 모르게 손뼉을 쳤고 다시 설명할 수 있는 거리가 생겨 기분이 좋아졌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렇지! 그럼 돈을 다 따로 내면 그 돈은 누가 가져?"
"물건 판 사람이…."

당연하다는 듯 퀴즈도 아니라는 듯 단숨에 내뱉습니다.

"그럼 ×마트는 그 돈을 누가 가질까?"

이렇게 묻자 잠시 정적이 흐릅니다. 딴에는 무슨 생각을 하나 봅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다 주인이야. 시장에서 물건을 사면 여러 사람이 돈을 벌 수 있잖아. 여러 사람이 돈을 벌 수 있는 게 좋겠지?"

▲ 국물이 펄펄 끓고 있습니다(위). 어머니에게 드릴 머리고기도 샀습니다. 또 단골이라고 많이 주셨습니다(아래). ⓒ 강충민
대형마트가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계약직이 대부분인 고용행태, 충동구매를 유도하는 마케팅기법에 대해 수없이 해주고 싶은 말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지만 이제 여덟 살 아이에게는 무리겠지요.

"맞아!"

원재가 제 물음에 순대국밥 한 숟가락을 꿀꺽 삼키고는 맞장구를 칩니다.

삶은 머릿고기값과 순대국밥 값을 원재에게 지불하라고 시키고는 주차장까지 녀석을 업어 줬습니다. 그 덕에 시장 본 것들을 몽땅 든 각시와 발걸음을 맞추며 한마디 했습니다.

"과유불급이야."

각시도 특유의 배시시한 웃음을 웃습니다.

'그래 여기까지만….'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조금씩 세상을 알면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은 아들의 거울인 저와 그리고 각시의 두고두고 몫일 테니까요. 그리고 깨우치고 느끼는 것은 원재 자신의 몫이고요. 한편으로는 어릴 때부터 원재를 의식화시키는 것은 아닌가 우려도 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기사에는 없지만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원재가, 시장은 주인들이 할머니가 많다고 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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