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나의 열여덟 일기②] 진로선택은 큰 고민거리
故 김영갑 선생님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키워온 꿈

스티븐 호킹 박사가 새로운 책을 냈다고 한다. 그는 다른 물리학자보다 훨씬 밝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박사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그가 '루게릭'이라는 병마와 투쟁을 하고 있다는 점 역시도 스포트라이트를 한층 밝게 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기사를 읽었다. 예전엔 두 손가락을 움직여서 느리게나마 의사를 표현할 수 있었던 그가, 병이 악화됨에 따라 이젠 눈동자로 마우스 커서를 움직이는 것이 전부라고 했다. 슬픈 일이지만 아직 그에게는 눈동자가 남아있고, 그 눈동자로 새로운 저서를 발표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책을 읽으며, 그가 아직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는 데에 경탄한다.

나 역시 그런 그가 대단하다고 느끼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같은 질병으로 이미 고인이 되신 김영갑선생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호킹박사가 병의 진행을 늦추기 위해 치료를 받는 동안 김영갑 선생은 아직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중산간의 모습을 눈에 담을 뿐이었다. 그는 가난한 사진가였으니까.

사회가 다원화가 되었고 어쩌고저쩌고, 참고서에 쓰인 말은 멋지고 좋게만 느껴진다. 그렇지만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 뭘 하나. 시험을 칠 때 OMR카드에 체크할 수 있는 것은 한 문제당 다섯 칸이지만 마음에 드는 번호를 뽑아 체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체크를 하기 위해선 시험지의 문제를 풀어야 하고 그 문제에서 도출된 답을 체크해야 한다.

물론, 멋대로 체크하지 못하게 누가 지키고 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험을 잘 봐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이 곧 취업과 직결되지 않는가. 학생들은 답을 선택 할 수 있되 선택 할 수 없는 것이다.

중3때,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며 친구들과 나눴던 시니컬한 농담이 있었다. '진로희망서' 가 아니라 '진로계획서' 가 옳다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예전에 했던 농담들은 너무나 부끄러워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이 대부분인데, 이 것 만큼은 아직까지 '잘 한 말이다.' 싶다.

진로를 선택함에 있어 요즈음의 그 어떤 학생이 비전보다 꿈을 중시하겠는가. 다소 강한 표현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에겐 원래 배부르고 등 따습고 난 다음에야 꿈이 있고, 희망이 있는 것이다.

사실 난 사진을 찍고 싶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키워 온 꿈이지만, 내가 찍은 사진 한장 한장에 짧은 글을 덧붙여 멋진 사진집을 완성해 내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 진로희망조사서에 적힌 희망직종은 언제나 의사였다. 남에게 비웃음을 살 만큼 원대하지도 않고 적어도 입에 풀칠하는 단계 보다는 조금 웃돌 만큼의 기본 급여가 보장되는 직업. 진로 희망 란에 의사를 적어 넣으며 나는 수도 없이 '사진을 찍으면 안 될까요?' 라는 말을 삼켰다.

부모님께 사진을 찍겠다고 말씀드릴 수 없었다. 나조차도 사진은 취미로 두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정도이니만큼, 내게 기대하고 계시는 부모님을 설득시킬 자신이 없었다.
 
호킹박사는 아직 살아있고, 여전히 존경받으며, 그리고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이 지내고 계신 모양이다. 김영갑선생은 이미 고인이 되어버렸고,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가고 있으며, 생전에 사진을 선택한 이후로는 단 한번도 윤택하게 살아보지 못하셨다.

그리고, 그래서 나는 '사진을 찍으면 안 될까요?' 라는 말을 꼭꼭 씹어 삼키면 삼켰지 도저히 내뱉을 수가 없다. 조금, 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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