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편찬연구소, '남로당 중앙당 지령설'도 제기…도민사회 '파문' 예상

'6.25전쟁사'를 통해 제주4.3을 무장폭동으로 규정하고, 수천명의 양민을 학살한 사건에 대해서도 '전원 귀향조치 했다'고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 물의를 빚고 있는 군사편찬연구소가 이번에는 제주4.3사건이 '북한의 사주에 의해 남로당이 일으킨 사건'이라고 표기해 또 한번의 파문이 예상된다.

이는 4.3진상조사보고서의 확정 발간과 제주도민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를 완전히 왜곡하는 것은 물론, 제주4.3에 대해 여전히 '빨갱이들이 일으킨 사건'이라는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민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특히 조영길 국방부 장관이 12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 답변을 통해 6.25 전쟁사에 기술된 '무장폭동'이란 표현을 '수식어'로만 썼을 뿐 "제주4.3을 왜곡·변조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답변에도 배치되는 것으로 이에 대한 시급한 대책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군사편찬연구소(http://www.imhc.mil.kr)는 '호국전몰용사 공훈록'을 발간하고 이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발간 경위'와 함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리면서 남로당 사주설을 또 다시 제기했다.

"4.3=북한의 사주에 의해 남로당이 일으킨 사건"

군사편찬연구소는 '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발간 경위를 통해 "…(중략) 우리 軍은 광복 이후 創軍 초기부터 '북한의 사주에 의해 南勞黨이 일으킨 4.3사건과 麗·順 10·19사건 및 大邱폭동사건 등 일련의 폭동 및 반란의 진압작전과 그후 계속된 공비토벌작전, 38선경비작전, 한국전쟁 및 월남전쟁 등에서 조국을 수호하고 국위를 선양하였습니다'라면서 제주4.3을 북한의 사주를 받은 남로당이 일으킨 사건으로 적시했다.

또 군사편찬연구소는 공훈록 중 1948년 5월 제9연대장을 맡아 부하로부터 암살될 때까지 한 달 열흘 가량 제주에 머물면서 강경진압작전을 편 박진경 대령의 공훈록에서도 제주4.3을 '무장폭동'과 '무장폭도'로 기술해 놓고 있다.

군사편찬연구소가 표기한 소위 북한에 의한 남로당 사주설은 반세기 동안 제주도민을 레드콤플렉스에 빠지게 한 원인이자, 군·경토벌대에 의한 2만~3만명으로 추정되는 제주도민의 대량학살을 정당화 시켜 온 근거로 이미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9연대장 박진경 공훈록에는 '무장폭동' '무장폭도' 기술

▲ 군사편찬연구소가 발간한 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또 국방부가 위원으로 참여해 지난해 10월 확정지은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 결론에 서도 '남로당 중앙당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다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면서 남로당 지령설이 근거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4.3 진상조사보고서는 다양한 자료와 진술·증언을 통해 군사편찬연구소가 주장하는 남로당 지령설이 사실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남로당 중앙당 지령설의 근원은 남로당 지하총책을 지냈다는 박갑동이 1973년 중앙일보에 연재한 '남기고 싶은 글'에서 제주4.3을 언급하면서 비롯됐다.

박갑동 "폭동지령 내가 쓴 것 아니…4.3은 서청과 경찰횡포에 대한 반발"

박갑동은 그 글에서 '남로당 중앙당의 폭동지령에 의해 4.3사건이 발생했다'고 썼으며, 이 연재 내용은 1983년 '박헌영'이라는 제목의 책자로 나왔다.

하지만 일본 도쿄에 살고 있는 박갑동씨는 지난 2002년 4.3조사보고서팀과 인터뷰에서 "내가 쓴 것이 아니고 내 글을 신문에 연재할 때 외부에서 다 고쳐서 그렇게 된 것"이라면서 "4.3은 서청과 경찰이 횡포를 부려서 발생한 사건이다. 본격적인 무장투쟁이 아니며 경찰과 서청에 대항하기 위해 제주도 안에서 자체적으로 일어난 것"이라고 증언했다 .(4.3조사보고서 163쪽)

김점곤·백선엽 "남로당 중앙당 지령 아니…당 말단 자의적 행동"

즉 남로당 지령설은 자신이 제기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쓴 내용이라는 점이다.

남로당 지령설이 사실이 아님은 군 내부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군 장성 출신인 김점곤씨(소장 예편)는 그의 저서 '한국전쟁과 노동당전략'에서 '육해공으로 격리되어 있는 제주도로부터 적화를 확대시키어 북상을 시도한다는 것은 이 공간을 제어할 수 있는 물리적 능력과 정치적인 상황에 비추어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폭거'라는 점 등 6가지 이유를 내세워 중앙당의 지령설에 의문을 제기하고 '5.10선거 반대투쟁에서 제주도만이 특이하게 이질적인 투쟁형태를 보였고, 이는 당노선에 대하여 일정의 돌기물적 성격임이 틀림 없다"고 기술했다.

군사편찬연구소, 2만~3만명 양민학살 정당성 확보하기 위한 듯

또 1948년 지리산 진압군 사령관을 지낸 백선엽씨(대장 예편)도 그의 저서 '실록 지리산'에서 "여순반란사건은 결코 남로당 중앙의 지령에 의한 것이 아니다. 4.3과 마찬가지로 당 말단에서 빚어진 자의적인 행동이었다"고 적고 있다.

이처럼 남로당 지령설을 최초로 제기했던 박갑동씨는 물론 군장성 출신인 김점곤, 백선엽씨 마저 남로당 중앙당 지령설을 부정하는 상황에서 군사편찬연구소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이 역시 2만~3만명에 이르는 양민학살에 대한 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의도적인 왜곡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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