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우의 도체비 뉴스]길고 길었던 딸아이의 입학식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저는 아직도 잘 모르지만 초등학교 입학식 날, 딸아이가 보였던 모습을 이해하기란 정말 힘들었습니다.

딸아이의 새 출발을 위해 ‘만사를 제쳐두고’ 입학식에 참석했던 저는 애초의 설렘과 기쁨 그리고 노파심은 안중에도 없고 시종 곤혹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나중엔 슬슬 부아가 돋기도 했습니다.

   
 
 

   
 
 
   
 
 
입학식, 약간은 ‘어색’할지라도, 그래도 설렘,희망,새로운 친구들을 만난다는 기대에 부풀어 약간은 신이 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제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유독 튀었습니다.

단 한 번도,정말 단 한 번도 웃지 않았습니다. 웃음은 고사하고 입학식 내내 인상만 찌푸렸습니다.

   
 
 
   
 
 
아이의 엄마 역시 ‘다른 아이들과 다른’ 딸아이를 보며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습니다.
하기야 제 딸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점은 일찍 알았습니다. 아주 작은 일에도 상처를 받는 아주 예민한 아이입니다. 저도 모르게 개미를 밟아 죽였다는 걸 알고, ‘개미야,미안해’라며 눈물 뚝뚝 흘리기도 했던 아이입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입학식 날 보여준 모습은 한마디로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물론 딸아이는 새로운 환경을 접하며 모든 게 낯설고 두려웠을 겁니다.

   
 
 
평소엔 딸아이의 예민함에 대해 극구 옹호를 해왔던 터이지만, 그래도 너무나 소극적인 아이의 모습에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국기에 대한 경례란 것도,선생님의 말도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유독 돋보이는(?)아이,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연가’란 걸 받고 입학식에 참석했던 걸 후회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입학식이 끝나고 아이가 평소 좋아하는 스파게티를 사주기 위해 일부러 레스토랑에 들렀을 때에도 아이는 인상을 펴지 않았습니다.
스파게티는 안중에도 없고 눈물을 훔치기까지 했습니다.

   
 
 
   
 
 
‘너,왜 그러는데?’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한 제가 따져묻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당치않은 이유를 대는 아이. 30 분 전에 헤어진 엄마를 보고 싶다며 울어댈 정도로 제 아이가 어리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근원적인 이유.
어쩌면 아이는,부모의 마음과는 별개로 새로운 환경을 맞아야 한다는 이유로 크나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모든 게 낯선 환경을 맞아야 한다는 사실이 큰 중압감을 줬을 테지요.
하여간에 스파게티를 대충 먹고 인근 오름 자락을 오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포장도로가 끝난 곳에서 딸아이가 묻습니다.
‘아빠,이제 길이 없잖아’
제가 답합니다.
‘아냐,  길은 있어. 길이 없는 것 같지만, 길은 있어.길이 없는 곳은 없어. 길이 없으면 길을 찾으면 돼’
그렇게 오름 자락을 누비는 동안 딸아이의 얼굴에 시나브로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입학식의 하루는 저물어갔습니다.
잠이 든 딸아이를 보며 ‘아,오늘 내가 아빠 역할을 잘 했던 것 같아’라며 내심 흐뭇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입학식 다음날 첫 등굣길.
딸아이와 함께 등교를 했는데, 딸아이는 어제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제보다 더 심했습니다. 이럴 수가…….
‘어깨에 매는 게 편하다’는 수차례의 말에도 아랑곳없이 부러 가방을 끌며 등굣길 초장부터 염장을 지르더니 교실 안에 들어가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모질게 마음먹고 ‘너 이제 교실 안으로 안 들어갈 거면 앞으로 학교 다닐 생각 하지 마라’는 최후통첩을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엉엉 울어대며 따라왔습니다.

분을 삭이지 못해 슈퍼에서 맥주 하나 까면서 호흡을 가다듬었습니다.
뒤따라온 아이에게 집 모퉁이에서 물었습니다.

‘너,학교가 두려운 거냐?’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그리고 아이는 제 어깨에 얼굴을 묻고 펑펑 울었습니다.
아이는 학교가 두려웠던 것입니다.

제 지갑을 꺼내들었습니다. 딸아이가 ‘아빠,사랑한다’며 제게 써 준 편지와 가족들의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아빠도 회사 다니기가 무섭고 두려울 때가 있어. 엄마도 마찬가지일걸.
근데 아빠는 무섭고 두려울 때면 네가 써준 편지를 읽기도 하고,우리 가족들 사진을 보곤 해.’
아이의 주머니에 제가 품고 다니던 가족사진을 ‘부적 쥐어주듯’쥐어주고 다시 학교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제 정성에도 불구하고 교실 입구에서 딸아이가 다시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아빠, 나 무서워’
학교가 두려운 차원을 넘어 무섭다고 말하는 아이.
속절없는 절망을(저는 더 이상 뭐라 할 말이 없었습니다,차라리 제가 주저앉고 싶었습니다.) 곱씹는 사이마침 곁을 지나는 한 선생님께서 다가왔습니다.
구세주처럼 나타나신 그 선생님께서 제 딸아이 손을 잡고 교실로 향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렇게 길었던 시간에서 저는 해방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강제로 학교로 ‘이끌려간’ 딸아이를 생각하며 하루 종일 갈피를 못 잡고 허둥댔습니다.
초조하게 기다리다 아이의 하굣시간에 맞춰 집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근데 말입니다. 아,이렇게 허무할 수가.
제게 딸아이는 전화통화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히힛,학교가 안 무서웠어.재미있었어”
이런~~! 젠장!
아이고,그래도 학교를 즐거운 곳으로 만들어 주신 선생님,그리고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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