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의 자치이야기⑤]참여를 활성화할 수 있는 정책·제도 개발이 절실

지난번 칼럼을 통해 '동원'이 아닌 '자발적 참여'가 뉴제주 운동의 성공조건이라는 글을 썼었다. 이어서 '자발적 참여'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지금 제주특별자치도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에 대해 좀 더 글을 진전시켜 보고자 한다.

우선 특별자치를 하는데 왜 참여가 강조되는지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앞선 자치체'와 '졸고있는 자치체'

일본의 자치 이론가인 마쓰시타 게이이치(松下圭一)는 『일본의 자치·분권』이라는 책자에서 일본의 지방자치단체들을 비교하면서 '앞선 자치체(先驅自治体)'와 '졸고 있는 자치체(居眠り 自治体)'라는 표현을 썼다.

2차대전이후 50년 가까이 흘러온 일본 지방자치의 현실속에서, 여러 지방자치단체들을 비교해 보니 지방자치단체간의 격차가 그만큼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똑같은 지방자치법의 적용을 받고 있고 거의 공통된 권한·재원의 틀내에 있으면서도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계획을 세우고 정책·제도를 개발한 개척자적인 자치체('앞선 자치체')가 있는가 하면, 관치·집권 체제에 스스로 안주해서 국가에서 정해진 지침대로 행동하고 시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자치체('졸고 있는 자치체')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마쓰시타 게이이치는 지방자치단체들간의 경쟁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졸고 있는 자치체'가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는 경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경쟁은 구태의연한 경쟁이 아니라 행정혁신과 정책·제도개발의 경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구태의연한 경쟁은 국가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쟁이었다면, 지금 필요한 경쟁은 스스로 자치·분권에 기반한 자립을 추진하는 경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마쓰시타 게이이치의 이야기는 현재 제주특별자치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스스로 '앞선 자치체'가 되고 있는가? 특별자치도라는 명칭은 얻었지만, 스스로 개척자적인 지방자치단체로 나아가고 있는가?란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참여로부터 시작하는 '앞선 자치체'

마쓰시타 게이이치의 이야기를 좀더 들어보자. 마쓰시타 게이이치는 '앞선 자치체'가 되고자 할 때에 필요한 것으로 우선 시민참여·직원(공무원)참여를 꼽고 있다. '앞선 자치체'가 되기 위한 변화는 시민참여·직원참여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직원참여이다. '직원'은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을 의미한다. 공무원들이 수동적으로 기존의 지침과 관례에 따라 행정을 하는 모습에서 탈피하지 못하면 '졸고 있는 자치체'를 탈피하기 어렵다.

그래서 직원들끼리도 정책정보를 공유하고 토론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무원이 서기형(書記型)으로부터 기획가형, 연출가형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시민참여는 기본이다. 이제는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을 행정기구가 독점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시민사회와 민간의 참여와 협력이 필요하다. 시민의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정책정보의 공개, 시민참여의 토의문화 활성화, 참여제도의 정비 등이 필요하다. 

그러면 제주특별자치도는 이런 노력들을 충분히 하고 있는가?란 자기점검이 필요하다. 공무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바탕으로 해서 혁신을 추구하고 있는지, 도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일정정도 의미있는 주민참여기본조례, 아직 표류하고 있는 주민참여예산제

다행히 제주특별자치도법에는 참여에 관한 여러 조항들이 들어가 있었다. 부족하거나 미흡한 점도 많지만, 긍정적인 조항들도 상당히 들어가 있다. 이런 제도적 근거들은 제주특별자치도가 도민참여를 활성화하여 선구적인 자치를 실현하는데에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것들이다. 잘만 활용한다면 국내의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보다는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제주특별자치도가 이런 제도적 근거들을 잘 활용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특히 아쉬운 점은 특별자치도법 제78조에 명시되어 있는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아직 도입되지 않은 것이다.

특별자치도법에 의하면 주민참여예산제도의 도입은 기정사실화되어 있고, 다만 주민참여예산의 범위 등 구체적인 내용을 도조례로 정하게 위임되어 있는데, 아직 조례가 제정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작년에 주민참여기본조례가 제정되는 등 일정한 성과도 있다. 주민참여기본조례는 주민참여란 무엇인지에 대해 정의하고, 주민참여를 위한 몇가지 기본 정책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특히 주민참여기본조례에서 "주민참여"란 "제주자치도의 정책 등 의사형성 단계에서부터 집행하는 단계까지 주민의 의사를 반영하고 주민과 제주자치도가 협력하는 것"이라고 정의한 것은 의미가 있다.

그동안에는 행정에서 이미 다 결정해 놓은 후에 시민단체나 주민들보고 참여하라고 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그러나 주민의 참여란 어떤 일을 결정하기 전(前)단계부터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점을 주민참여기본조례에서 명확하게 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

그러나 주민참여기본조례의 제정도 시작에 불과하다. 주민참여기본조례는 어디까지나 기본조례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조례의 정신과 내용이 행정의 구석구석까지 스며들고 실천되기 위해서는 강력한 집행의지가 필요하다.

조례는 만들었지만, 구색맞추기에 그치거나 마지못해 하는 식으로 된다면 미래는 없다. 그렇게 해서는 참여가 활성화될 수도 없고, 앞서 나갈 수도 없다.

   
 
 
그런 점에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도민참여기본조례의 정신을 도정 전반에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행정의 기존 관행과 기득권을 과감하게 버릴 필요가 있다.

또한 주민참여예산제 등 주민의 참여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제도를 실효성있게 만들고 주민의 참여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계획도 마련해야 한다. 이미 도입된 제도도 계속 수정·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것이 제주특별자치도가 '앞선 자치체'가 되고 전체적인 특별자치도의 역량을 강화하는 길일 것이다. [하승수·제주대 법학부 부교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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