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의 삶]정년퇴임 출판기념회 갖는 고창석 교수
최근 문화재연구소장 맡아 다시 치열한 연구자의 삶으로

▲ 고창석 교수. 現 제주문화예술재단 문화재연구소장.

"제 인생의 적은 늙음이 아니라 녹스는 삶입니다"

30년 가까이 대학강단(제주대 사학과)에서 학생들과 소통해온 제주지방사 연구의 1세대 연구자 고창석(66) 교수가 정년퇴임을 기념하는 논문집 ‘제주역사연구’를 펴내고 밝힌 소감이다.

최근 퇴임하자마자 제주문화예술재단 부설 문화재연구소장에 바로 취임, 치열한 연구자의 자리로 돌아온 고 교수는 “정년퇴임을 기념하는 이번 논문집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며 학자답게 말 한마디를 허투루 하지 않았다.

이번 논문집은 고 교수가 그동안 대학논문집과 학회지에 발표했던 ‘제주史’ 관련 글들을 가려 뽑아 모은 것으로 논문과 해제 두 편으로 엮었다.

우선 논문편에선 ‘탐라의 군현설치에 대한 고찰’을 비롯해 ‘여·원과 탐라와의 관계’, ‘원대의 제주도 목장’, ‘고려조 제주민란의 성격’ 등 고려시대 논문5편과 ‘조선조 유형제도와 제주도’, ‘조선후기 제주 공피전(供彼錢·조선후기 제주에 표도한 외국인에게 음식 등을 제공하기 위한 자금)의 설치와 폐단’, ‘조선시대 제주의 사학’ 등 조선시대 논문 7편 등 모두 12편의 논문을 수록했다.

고 교수는 “이번 논문집이 후학들에게 제주사 연구의 길잡이가 돼 수준높은 연구가 뒤따라 주었으면 한다”는 당부를 하고 “논문집 머리말에서도 밝혔듯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것 처럼 개별적으로 발표했던 글들을 한데 모아 묶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 고 교수는 평생 강단에 서온 지난 삶을 회상하며 잠시 눈을 지긋이 감았다. 아마도 많은 일들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을 것이다.
고 교수는 또 강단에서 퇴임한 소회를 묻자 “평생 해온 일이라 시원섭섭하다. 아무리 할 만큼 했어도 시원함보다 섭섭함이 크지 않겠나”고 말하고 “앞으로도 연구활동을 놓지 않고 특히 조선시대 제주사 부분을 정리하는데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역사를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어학’공부를 열심히 할 것도 강조했다. 역사연구에 있어 원전(原典) 등 자료의 정확한 해석과 수집이 무엇보다 중요하니 기본기에 충실하라는 당부였다.

문화재연구소장으로서도 포부를 밝혔다. 고 교수는 “그동안 중단됐던 발굴업무를 올해 안에 재개하겠다”면서 “발굴인력을 교섭중인데 인력이 확보되는 대로 고고학적 측면의 ‘제주의 숨은 역사찾기’ 작업을 시작할 것”이라 말했다.

한편, 고창석 교수의 정년퇴임과 논문집 출판기념회는 9일 오후7시 하니관광호텔 별관2층에서 열린다. 문의=748-9817.

<저자 고창석 교수는…>
고창석 교수는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출신이다. 경북대학교 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1982년부터 제주대 사학과 교수로 금년 2월까지 재직했다.

그동안 제주대학교 박물관장, 제주도사연구회장, 제주사정립사업추진협의회 부회장 겸 운영위원장,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장,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 등을 역임했다.

지난 2002년에는 제주도문화상 학술부문 수상을 하기도 했다. 현재 제주도문화예술재단 부설 문화재연구소 소장과 제주도문화재위원, 역사학회 평의원으로 활동중이다.

대표적인 저서에는 ‘탐라국사료집’(1995) ‘제주도고문서연구’(2001) ‘고문서연구’(2002) ‘19세기 제주사회연구’(공저·1997) ‘역주 탐라지’(공저·2002) 등 10여권에 이른다.

논문으로는 ‘명대 환관의 권력구조’(1968)을 비롯해 ‘여·원과 탐라와의 관계’(1984) 등 140여편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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