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숙의 '내사랑 제주']자매들과 더불어 '서귀포 걷는 길'에 서다

   
 
 
제주의소리는 오늘부터 <서명숙의 '내사랑 제주'>를 연재합니다. 서명숙 씨는 지난 2001년 국내 시사주간지 사상 첫 여성 편집장으로 화제를 모았던 인물입니다. 서귀포시 출신으로 서귀포초교와 서귀여중, 신성여고를 거쳐 고려대를 졸업한 서씨는 월간 '마당' 기자를 시작으로 시사저널 정치팀장과 취재 1부장을 거친 후 편집장을 역임한 바 있습니다. 2005년에는 국내 대표 인터넷신문인 오마이뉴스의 편집국장을 맡기도 했지요. 2006년 7월 그만 둔 그녀는 스페인 산티아고 도보순례를 떠났습니다. 순례를 다녀온 후 그녀는 "고향 제주도에도 스페인 '산티아고 길'처럼 사람이 대접받으면서 걷는 길을 만들고 싶다"고 합니다. 그 첫 시도라고나 할까요. 대한민국의 쟁쟁한 여걸 10명(일명 십자매)과 함께 지난달 말 '서귀포 걷는 길'을 걸었습니다. 사진은 그의 친구 허영선 시인(전 제민일보 편집부국장)이 찍었다네요. 이 글은, 그녀의 블러그 '명숙상회'(blog.ohmynews.com/noalchol/)에도 실려 있습니다. [편집자주]

------------------------------------------------------------------------

스페인 산티아고 도보순례는 내게 고향 제주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피레네’에서는 한라산을, ‘멜리데’에서는 중산간 마을 가시리를, 900킬로미터 여정의 종착지인 ‘피니스테레’에서는 내가 나고 자란 서귀포를 보았다.

피니스테레에서 난 결심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고향 제주의 속살을 내 두 발로 꾹꾹 확인하고 밟아보리라고. 그리고 인생 후반전의 목표를 세웠다. 내 나이 예순이 되기 전에 고향으로 내려가 서귀포 가까운 곳 어딘가에 길을 걷다가 지친 사람들이 머물러 가는 조그만 쉼터하나를 세우리라고.

마침내 지난 2월 하순 어느날, 그 첫 단추를 꿰었다. 서울에서 친하게 지내는 여자 일곱과 함께(나 포함하면 모두 8명) 제주에 내려갔다. 친정언니와 고향 친구 영선이가 현지에서 합세해 여자 열 명이 서귀포를 두어 시간 걸었다. 애초에 목표했던 열리 바닷가까지 걷지는 못했다. 웃고 수다 떨고 도중에 밥 먹고, 친구 찻집에서 차를 마시느라고,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기에.

그러나 다들 즐거워했고, 서귀포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들었다. 여러 번 와봤지만 이렇듯 아름다운 걷는 길이 있는 줄 몰랐다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여성시대> 진행자 양희은 선배는 이런 길을 애써 만들어놓고 제대로 홍보하지 않는 건 공무원들의 직무유기라고 흥분했다. 안타까움의 표현이리라.

서귀포에는 이미 봄의 전령이 와 있었다. ‘명숙상회’에 들러주시는 분들에게 서귀포의 봄을 선물해 드리니, 맘껏 즐기시기를. 그리고 마음으로 서귀포 칠십리 길을 걸으시기를.

▲ 서귀포 보목리 바닷가 근처 제주대 연수원 앞에서, 십자매 출발!
▲ '서귀포 걷는 길'의 첫 코스인 보목리 검은여 바닷가에서 찰칵!
   
 
 
서귀포 칼(KAL) 호텔 정원은 섭섬과 문섬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기막힌 조망을 갖고 있는데, 돌담을 쳐놓았다. 뱅 둘러서 가기 싫어서 과감히 월담을 시도하는 용감한 십자매들. 다행히도 돌담이 낮아서 넘을 만했다.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빨간 점퍼의 여인이 서명숙의 친정언니 서애순 여사다. 월담에 거의 성공한 빨간 목도리의 여인은 차마 이름을 밝힐 수 없다. 왜? 그건 묻지 마시라.

   
 
 
월담해서 접수한 칼 호텔 정원 안마당에서 도보 출정식을 갖다. 저 멀리 빨간 우산 사이에 삐죽 보이는 섬이 바로 서귀포 앞바다 가운데에 위치한 문섬이다.

   
 
 
칼호텔을 나와서 파라다이스 호텔을 끼고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서 내려가다 보면 '소정방' 폭포가 오롯이 숨어 있다. 서귀포 인근 사람들은 예전에 이곳에서 한여름이면 거적을 뒤집어쓰고 물맞이를 했다. 사람키보다 약간 높은 네 갈래 폭포는 최신식 자동 물 안마기라고나 할까. 바위 옆에는 솥단지 걸어놓고 닭백숙이나 매운탕을 끓여 먹으면서. 위 사진에는 소정방폭포가 보이지는 않는다.

▲ 소정방과 정방폭포 중간쯤 되는 지점에서 고은광순 선배와 양희은 선배. 두 호걸 여성들의 기념포우즈!
   
 
 
소정방-정방폭포-소낭머리-자구리(우리 어릴 적에 뛰어놀던 현무암이 돌출한 바닷가. 서귀포에는 백사장 해수욕장이 없어서 우리는 발바닥이 다 까지면서 헤엄을 쳐야만 했다)을 지나면, 드뎌 서귀포항이 나온다. 여객선과 조그만 어선들이 함께 정박하는 부두다. 이곳 '할망뚝배기집'에서 아침을 먹었다. 지난해 우연히 부둣가를 산책하다가 필이 꽂혀 들어가 봤는데, 역시 식당을 찾아내는 데만큼은 내 눈이 귀신이다. 알고 보니 현지인들에게는 꽤나 유명한 집인데, 고향을 오래 떠나 있어서 몰랐던 게다.

보목리 바다에서 출발해 한 시간쯤 걷고 난 일행들은 워낙에도 먹성이 좋은 터에 '배추와 제주 은갈치, 딱 두 가지만 넣어서 승부를 낸 명품 갈치국'과 '된장이 슴슴하고 해물이 신선해서 맛이 예술인 된장뚝배기'(요리 솜씨 좋기로 소문난 양희은 선배의 품평이니 믿어도 된다)를 '으음' '오호' '흐윽' 온갖 기묘한 신음소리를 내가면서 먹어치웠다.

팁) 주의해서 식탁을 살펴보면 색다른 반찬이 보인다. 이름하여 '동백꽃 샐러드'. 고은광순 선배가 산책길에 부지런히 떨어진 동백꽃잎을 줍더니, 식탁에 앉자마자 이런 상차림 센스를 발휘한다. 호주제 철폐운동에 앞장서는 바람에 '전사' 이미지가 강한 고은 선배는 정작 가까이에서 보면 누구보다도 보드랍고 인간적이고 감수성 풍부한 여성이다.

   
 
 
할망식당의 주인 할머니. 얼마나 자존심이 드높은지 양희은 선배와 인사를 나누면서도 "나는 연예인들 사인 받고 그런 건 안한다. 우리집 음식맛으로 손님이 오게 해야지 사인 그딴 건 안 걸어놓는다"고 큰소리 땅땅 쳤다. 본래 어디 가더라도 사진만큼은 절대 안 찍히는 양희은 선배 그 멘트가 넘 맘에 든다고 할머니와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식당 오래오래 하셔서 담에도 와서 먹을 수 있게 해달라면서.

자, 배가 불렀으니 또 떠나자. 후편에서 뵙겠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