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나의 열여덟일기⑤] 그대, 두려워하지 말지어다[Delhi-3]
인도의 그 어떤 문화유산보다 깊이 각인된 '바자르'는 가장 인도다운 곳

만약 내 주위의 누군가가 델리에서 가장 ‘인도냄새’ 나는 곳이 어디냐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자미마스지드 앞의 바자르를 일러주겠다. 말 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 덧붙여 거의 인간만큼이나 많은 염소와 소를 만날 수 있는 곳, 하얀 옷을 입고 있는 부잣집 소년과 다 떨어진 누더기로 몸을 싸고 있는 박씨시가 한 데 모여 있는 곳.

이런저런 음식들과 빈디, 한눈에도 저렴해 보이는데 '100루피' '200루피'를 외쳐대는 장사치가 여행객의 주머니를 호시탐탐 노리는 곳. 사람이 많기에 소란스럽고, 동물이 많기에 바닥 곳곳에 '폭탄'이라 지칭되는 변들이 널려있는 곳.

▲ 인도의 그 어떤 문화유산보다도 더 깊이 각인된 델리의 '바자르'. 누가 내게 델리에서 가장 인도다운, 인도냄새가 나는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주저없이 나는 자미마스지드 앞의  '바자르'라 대답할 것이다.

뿌리에서 하이데라바드로 이동하던 밤기차 편에서, 한 인도 여학생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었는데, 그때 난 인도에서 가장 기억이 남는 장소로 이 바자르를 꼽았었다. 그녀는 그저 평범한 시장일 뿐인 그 곳이, 그 날 갔던 자미마스지드와 그 이후에 거친 타즈마할 등의 수많은 문화유산보다 더 깊이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솔직히 이 바자르는 맨 정신으로 들어가기엔 약간 거부감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바자르에 들어서기 한참 전부터 풍기는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냄새는 온 세상의 나쁜 냄새를 모두 모아 섞어놓은 건가 싶을 정도로 끔찍했다. 그래도 적절한 무대뽀정신과, 여행으로 인한 설렘으로 신경을 잠시 마비시켜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이 곳, 바자르에서 진짜 인도를 부분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정신없이 구경을 하고, 정신없이 호객꾼에게 끌려 다니다 보니 슬슬 출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자르에 들어서기 전에는 불쾌한 냄새에 아침에 먹었던 맛있는 음식을 다시 확인할 뻔 하기까지 했는데, 얼마나 시간이 지났다고 완전히 적응해서 뭘 먹을까 고민하는 날 발견하니 다시 웃음이 나왔다.

바자르에서 군것질로 식사를 때울까 했지만, 기왕 바자르 구경을 시작한 거, 숙소가 있는 곳이라도 두려움에 떠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빠르간지의 메인바자르도 제대로 구경하고, 아침에 커리 탓에 포기해야했던 수많은 군것질거리들도 시도해보기로 하고 바자르를 빠져나왔다.

바자르 밖으로 나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낙타. 우리나라에서는 동물원에나 가야 볼 수 있는 녀석이 인도에서는 곳곳에 널려있었다. 심지어 7루피 가량의 돈을 내면 낙타가 끄는 퉁가(짐마차처럼 생긴 수레에 의자를 달아서 사람이 탈 수 있게 만든 이동수단)를 탈 수도 있었다. 가난한 나는 항상 걸어 다니거나, 꼭 타야 할 상황에서는 2루피 더 저렴한 5루피 짜리 말 퉁가를 탔지만, 곁에서 씩씩하게 걸어가는 낙타를 볼 때면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났던 기억이 있다.

▲ 거리에서 만난 낙타

그런데 이 날 봤던 낙타는 어딘가 이상했다. 무거운 퉁가를 끄는 것도 아니고, 그저 사람을 태우고 사진 한 장이나 같이 찍으면 되는 일을 하면서도 사람이 타려 할 땐 무릎을 굽히지 않고, 주인이 목에 감은 줄을 세게 잡아당겨 간신히 무릎을 꿇려 사람을 태워도 고개를 세게 흔들며 온몸으로 싫다는 표현을 했다.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짜인 것 같았다.

손님이 불쾌해하며 그냥 가버리고, 주인이 때려도 그저 덤덤. 느긋하게 눈만 꿈뻑꿈뻑 할 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자 주인이 한숨을 쉬며 먹이를 잔뜩 쌓아주었다. 채찍과 당근은 만국 공통으로 통용되는 수법인 모양이다.

저 낙타도,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셔터찬스가 언제인지 알게 될 정도로 노련해져서 주인에게 잔뜩 사랑받을 테고, 나도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릭샤왈라나 퉁가왈라의 '돈 더내놔' 똥배짱도 그저 웃음으로 느긋하게 넘길 줄 아는 여유만만 여행 고수가 되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낙타에게도, 나에게도 필요한 것은 적응 할 만큼 충분한 시간뿐이라는 생각.

▲ 릭샤를 타고 바라본 인도거리의 풍경

싸이클릭샤는 한 뼘도 채 되지 않을 얄팍하고 좁은 등받이와 비좁은 의자를 제외하면 몸을 의지할만한 데가 하나도 없어서 조금 무서운 감도 있지만 오토릭샤는 편하면서도 양 옆이 뻥 뚫려있어서 밖의 풍경을 보기가 참 좋다. 자동차의 창문 밖 풍경을 보는 것과는 또 다른 기분이다.

이때도 약 2~30분가량의 짧지 않은 이동시간을 보냈지만 릭샤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열중하다보니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를 모르겠더라. 물론 릭샤왈라의 입담도 지루하지 않게 해 준 요인 중 하나겠지만 40루피면 갈 수 있는 거리를 60루피나 받았다는데서 감점! 멋모르고 '이정도면 좋은 가격이겠지'라고 생각했던 김로마나에게도 경고 한 번!

뉴델리역에 도착했다. 메인바자르의 끝자락인 그 곳부터 시작부근이었던 호텔 아눕까지 바자르를 거꾸로 훑어 올라가기로 했다. 하지만 잊고 있었던 사실 한 가지. 그 날은 1월 1일이었다. 우리나라의 구정처럼 웬만한 가게는 다 문을 꽁꽁 걸어 잠가둬서 생각보다는 실망스러웠다.

또다시 입을 불퉁히 내밀고 뭐 '놀만한 거'없나 하는 생각으로 고개를 휙휙 돌리다 보니 헤나 판을 벌이고 있는 헤나꾼이 보였다. 줄을 선 사람은 두 사람정도. 얼마나 걸리냐니 잠깐만 기다리시란다. 심심하지 않을까 해서 MP3를 꺼내들었지만,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재미있었다.

요즘 들어서는 '찍는' 헤나가 많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다행히도 내가 본 것은 '그리는' 헤나였다. 팔꿈치부터 손끝까지 길게 그리는 게, 다 마르고 나서 문양만 남았을 땐 정말 예쁠 것 같았다. 그 사람 말고는 다른 헤나꾼을 본 적이 없으니 잘 한다 못 한다를 판단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앞서 완성된 여자의 팔에 새겨진 문양이 굉장히 예뻤기 때문에 한 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 거리에서 만난 헤나꾼이 직접 그려준 헤나.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로마나의 손.
헤나꾼의 이름은 '셰비'라고 했다. 열여덟 살이란다. 우리나라 나이로 따지자면 19~20살 정도가 되는 거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벌어 한국에서 헤나샵을 차리는 게 목표라던 셰비. 어눌한 한국어로 "마음에 드세요?" 라 묻기에 한 번 씩 하고 웃어주었다. 한국에서 제주도라는 곳에 산다고 하니 자기도 그 동네 안단다. 델리랑 다르게 공기가 참 좋은 곳이라 했다고. 나보다 앞서 델리를 밟았던 선배 배낭여행자 중에 제주사람이 있었는가보다.

셰비의 사진도 한 장 찍어두고 싶었지만, 웬일인지 사진을 찍기 싫어하던 셰비. 그래서 별 수 없이 문양이 다 완성 된 내 손만 찍었다. 왜 찍기 싫어하나 싶었는데 나중에 가이드북을 들춰보니 인도인 중엔 사진기의 플래쉬와 인간의 영혼에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단다. 억지로 찍기를 강요하지 않았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줄을 서 내 차례가 되기를 기다리고, 헤나를 그리고, 마를 때까지 기다리고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났다. 뱃속에선 천둥이 치듯이 계속 꼬르륵 꼬르륵. 결국엔 아침에 찾았던 '말호트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야채 초우면을 시켜 배를 채우고 나니 힘이 불끈 솟더라. 여행지에선 무언가를 배우고, 느끼고 하는 것도 참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잘 먹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우쳤다.

배가 차니 용기가 나고, 용기가 나니 전에는 겁이 나서 지나쳤던 작은 골목들에 들어 설 마음이 생겼다. 인도도 어차피 사람 사는 동네고, 골목에 있어봐야 도둑고양이밖에 더 있겠냐는 무대뽀정신이 다시 발휘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골목 안에 있었던 것은 살인자도 아니고, 도둑고양이도 아닌 그저 '식품시장'일 뿐이었다.

▲ 인도의 달(콩)과 스위트
▲ 인도의 소금(오른쪽 하얀 알갱이)과 '달'이라 불리는 인도 콩들.

(소금&달)
(달&스위트)
(고추)
암염을 그대로 깨다 쓰는 듯 한 굵직굵직한 소금알갱이와 '달'이라 불리는 콩들. 재미있는 것은 난이나 짜파티를 찍어먹는 콩으로 만든 소스 또한 '달'이라 불린다는 것! 그리고 우리나라의 고추보다는 약간 새콤한 맛이 더 해서 깜짝 놀랐던 고추. 고추 맛이 달라봐야 얼마나 다르겠냐고 생각했지만 정말 다르더라.

▲ 인도 고추
그리고 달 옆에는 '스위트'라고 불리는 달콤한 군것질거리가 가득. 정말 '이가 녹을'정도로 달더라. 인도의 설탕은 거의 정제되지 않은 상태라서 사탕수수정도의 단맛밖에 느낄 수 없었는데 그런 설탕으로 어떻게 이런 단 맛을 낼 수 있었는지 호기심이 일었었다. 우리나라의 백설탕을 퍼 먹는 것보다 더 달다고 느꼈을 정도였다.

바자르를 구경하고 돌아 나올 때, 이렇게 유쾌하고 재미있는 곳을 왠지 두렵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찾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조금 더 열심히, 조금 더 용감히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닐 마음가짐이 되었다. 한 달 여의 인도여행을 하면서, 느낄 수 있는 건 최대한 다 느끼자고. 한국 땅을 밟을 때, 정말 후회 없는 여행이었단 생각이 들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일 뿐이다. 모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두려워하고 움츠러들어서는 그 모르는 것이 언제까지나 모르는 것인 채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에 대한 걱정까지 앞서 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던 내게, 델리는 내일의 두려움을 잊는 법을, 그리고 오늘을 즐겁게 살고, 오늘을 배우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고작 2박 3일의 짧은 일정. 그나마도 하루는 밤늦게 도착하고, 하루는 아침 일찍 떠났으니 하루밖에 제대로 머무른 시간이 없었던 델리. 델리가 내 기억 속에 이렇게나 강하게 남아 있는 이유는 델리에서 얻었던 값진 교훈과, 태도 덕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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