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 17일 와흘굴에서 크랭크 인

'제주4.3은 북한의 사주에 의해 남로당이 일으킨 사건이다'.
'제2연대는 산에서 내려온 주민들에게 구호 물자를 배급하고 포로가 된 인민유격대를 처형하지 않고 전원 귀향 조치하였다:
'제2연대는 주민들의 협조로 1949년 1월 31일 남원면 의귀에서 인민유격대 30명을 사살했다'

제주4.3을 북한의 사주에 의한 무장폭동으로 규정하고, 수천명의 양민을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은 군사재판을 통해 학살했으면서도 '전원 귀향조치했다'고 왜곡하고, 의귀리 주민 80여명을 학살해 놓고도 오히려 주민들의 협조로 인민유격대 30명을 사살했다는 역사적 왜곡이 지금도 국방부에 의해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4.3특별법에 의해 4.3진상조사보고서가 정부의 이름으로 확정되고,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도민에게 사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4.3은 아직 끝나지 않은, 아니 이제야 비로소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제주4.3은 아직 끝나지 않은 세월이다.

▲ 첫 촬영이 들어가기에 앞서 김경률 대표, 감독이 고사를 지내며 축문을 읽고 있다.
이 같은 역사적 왜곡을 미리 예견이나 한 듯이 제주4.3의 '아픔과 진실'을 1시간 30분의 영화로 담아내는 작업이 마침내 시작됐다.

설문대영상(대표 김경률)이 제작하고 김 대표가 직접 메가폰을 잡은 4.3 극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이 17일 조천읍 와흘리 '와흘굴'에서 토벌대에 쫓겨 굴로 피신해 온 주민들의 생활상을 촬영하는 것을 시작으로 크랭크인 됐다.

헐리우드는 물론 한국영화도 제2의 중흥기라며 수십억원에서 백억원대가 넘는 엄청난 규모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만들어지는 상황에서 '끝나지 않은 세월'은 독립영화 답게 그 시작은 단촐 했으나 출연진과 스탭들의 열기만큼은 이날의 폭염을 무색케 했다.

이날 촬영에 들어간 첫 신은 4.3을 직접 체험한 당사자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했을 소위 '동굴생활'. 1948년 4월 3일을 기해 4.3봉기가 일어나고 군이 무장대와 주민들을 토벌하기 위해 조천 일대로 들어오자 총탄을 피해 굴로 숨어 들어온 '형길이네'를 비롯한 주민들이 동굴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찍었다.

김경률 감독의 '레디 고' 사인이 떨어지자 스탭은 물론 첫 촬영을 보기 위해 찾았던 4.3유족과 이 동네 주민들 모두 숨을 죽였고 배우들은 행여나 토벌대에 의해 은신처가 발각이나 되지 않을까 하는 근심걱정으로 소리죽인 대사를 이어나갔다.  김 감독의 '컷'소리가 들리자 주변에 있던 모든 이들은 환호의 박수를 보냈다.

▲ 첫 신을 촬영하게 될 와흘굴.주민들이 박창욱 회장과 함께 와흘굴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 하고 있다. 우측에 부채를 들고 있는 할아버지가 임완송씨.
영화 시작 전부터 지켜보던 이 마을의 원로인 임완송 할아버지(73)는 "오래살고 볼 노릇이고"를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임완송 할아버지 역시 이 곳 와흘리 주민들과 함께 두분의 형과 사촌형 2명 등 모두 4명을 토벌대에 의해 목숨을 잃은 4.3희생자 유족이었다.

"1948년 동짓날 스무하루였주. 자수하면 살려준다고 해서 우리 동네 사람들을 몽땅 밖으로 나오 랜 허영 전부 함덕군부대로 끌어 간 우리 마을을 몽땅 불태워 버린거주. 그런 불은 그 때 처음 봤으니까. 그 때만 우리 와흘리 본동에 120여호 새가름 열 가구 정도 있었는데 70여명이 그때 끌려 강 죽었주"

"지금까지 뭐라고 말이나 해져서. 그저 4.3유족이라고 하면 아무 말도 못하고 숨만 볼락볼락 해 났주. 정말 세상 많이 바뀌어져서. 대통령도 미안허덴 사과하고 또 오늘은 영화도 촬영헌덴 허난…정말 꿈도 못 꿀 일이라났주. 첨 오래 살고 볼 일이라" 임만송 할아버지를 비롯해 이 마을 주민들이 바라보는 '끝나지 않은 세월'을 자신들의 이야기나 마찬가지 였다.

두번째 신은 신천초등학교 인근 삼거리에서 이어졌다.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되고 1947년 3월1일 사건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에 그래도 평화스런 모습을 담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형민이와 종철이, 영수가 학교수업이 끝나고 즐거운 마음으로 교실에서 빠져 나오는 모습을 담았다.

'끝나지 않은 세월'은 1947년 3.1절 사건부터 1949년 6월까지 4.3발발 원인에서부터 군의 초토화작전이 한창이던 시기에 벌어졌던 제주의 아픔을 이제는 할아버지가 돼 버린 형민이의 기억을 통해 재현시켜낸다. 과거와 현실이 교차하게 된다.

▲ 촬영에 앞서 뙤약볕을 피해 그늘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출연진들.
영화의 주인공은 1947년 4.3당시 아역으로 형민이는 주용준군(10·외도교3), 종철이는 김승호(12), 영수역에는 김경훈군(11·대안학교 들살이 4)이 맡았다 또 현실의 세계에서 60대 초반의 촌로로 변한 형민이는 4.3유족인 양영호씨, 종철이는 4.3 중앙위원으로 활동중인 박창욱 전 4.3유족회장, 그리고 영수 역은 김두연 4.3유족회 부회장이 담당한다.

아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형민은 4.3당시 아버지와 형을 잃었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와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현재는 따로 살고 있다. 세월이 흘러 4.3특별법이 제정되고 유족들이 희생자를 신고하는데 형민이는 신고를 하지 않는다. 그런 아버지를 아들은 못 마땅해 한다. 그런 아들에게 형민이는 "모르면 좀좀허라"고 화풀이를 한다. 그리고 어릴 때 같이 지내던 종철이와 영수를 만나면서 과거를 회상하게 된다.

영화는 형민이와 종철이, 영수의 회상을 통해 4.3으로 어쩔 수 없이 만들어져 버린 형민이와 어머니, 그리고 다른 동네 사람들과의 개인적인 연은 화해를 하는 장면을 담는다.

희생자 신고를 계속 거부했던 형민이는 그러나 끝내 4.3위령제 사흘을 앞둬 아들의 간곡한 요구에 못 이겨 신고를 하게 된다. 그리고 4월3일 위령제에 참석해 아버지의 위패를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형민이네가 겪었던 4.3의 아픔이 개인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 구조적 문제로 진정한 4.3은 상처는 해결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끝을 맺게 된다. 산자가 남아 이제 풀리지 않은 역사의 골을 메워야 한다는 주문을 하게 된다.

이날 크랭크인에 들어간 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은 앞으로 10개월간의 촬영을 하게 된다. 시사회는 내년 4.3 주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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