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다가온 제주의 꽃들(37)

마른 장마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뜨거운 태양과 바람이 푸른 이파리에 담음 물기를 빼앗아가니 한 낮에는 푸르던 이파리들도 시름시름합니다.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는 것이나 다육질 식물들은 견딜 만 하다며 붉은 빛까지 내어가며 양껏 여름햇살이 주는 별미를 맛나게 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바람이 부니 이슬구경하기도 힘들고, 바람에 흔들리는 꽃에 포커스를 맞추기도 힘들고, 짧은 새벽은 이래저래 꽃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의 발목을 잡습니다.

목말라하는 뜰의 화단을 바라보았습니다.

조석으로 물을 주니 그런 대로 견딜 만 한 것 같은데 가만히 보니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꽃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화단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서로 다르면서도 하나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가는 꽃들의 세계를 보면서 자기와 같지 않으면 배척해 버리는 우리네 사람들의 삶을 돌아봅니다.

▲ '오랑캐꽃'이라고도 불리는 갯패랭이.

보라색 갯패랭이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패랭이를 닮아 패랭이 꽃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해안가에서 자라니 '갯'자가 붙었습니다.

이 꽃이 필 무렵이면 오랑캐들이 쳐들어와서 '오랑캐꽃'이라고도 한답니다.

패랭이는 양반들이 쓰는 모자가 아니라 평민들이 쓰던 모자입니다.

그러니 패랭이꽃도 서민들과 친숙한 꽃이겠지요.

패랭이꽃은 석죽과의 꽃입니다.

석죽과의 꽃들은 줄기가 대나무 줄기를 닮았는데 술패랭이같은 것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다 곧게 서지 못하고 풀에 기대어 누워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갯패랭이는 꼿꼿하게 서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닷바람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바닷바람에 맞서 자랐으니 그 줄기가 꼿꼿할 수밖에요.

바람의 상징은 고난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 속에는 삶을 강인하게 하는 묘약이 들어있는 것이기도 하니 무작정 피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겠지요.

▲ 닭똥 냄새가 난다는 계뇨등.

닭똥냄새가 나는 계뇨등(계요등)이라는 재미있게 생긴 꽃입니다.

꽃에서 냄새가 나기보다는 줄기에서 냄새가 나는데 죽죽 퍼지는 줄기들을 잘라내다 보면 가히 닭장 옆에서 일하는 듯한 역겨운 냄새가 납니다.

나무나 담장, 무엇이든 의지할 것만 있으면 타고 올라가고, 땅으로도 쉼없이 퍼지며 뿌리를 내는 식물이니 그냥 보기 좋다고 방치하다 보면 온통 계뇨등 천지가 되기 싶습니다.

그래도 계뇨등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낍니다.

삶이라는 것, 때로는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되는 참 예쁜 꽃입니다.

계뇨등이 섭섭하다며 이렇게 말할런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꽃들에게서는 향내가 난다고 하면서 내게서 나는 것은 냄새라고?"

▲ '닭의장풀'이라고도 불리는 달개비.

닭똥이야기가 나왔으니 '닭의장풀'이라고도 부르는 '달개비'를 소개해야 겠습니다.

닭의장풀이라는 이름이 붙은 내력은 닭장 근처에서 많이 자라는 풀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냄새는 조금 고약하지만 닭똥이 거름으로 얼마나 귀하게 사용되었습니까?

지금이야 화학비료들의 사용으로 땅도, 몸도 망가져 가는데 다시 우리의 땅을 살리려면 닭똥같은 더러운(?) 것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달개비, 아마도 닭똥의 냄새보다도 그 속내에 들어있는 가치를 잘 아는 꽃 같습니다.

우리들도 겉으로 보이는 것말고, 그 속내를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애기범부채는 야생화라고 해야 할 지 원예종이라 해야 할 지 난감한 꽃입니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중산간 도로변 여기저기에도 피어있는 것을 보면 야생화같고, 주로 화단에 많이 가꿔진 것을 보면 원예종같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더운 여름, 과연 애기범부채는 바람을 일으키며 우리들의 몸을 시원하게 해 줄 수는 있는 것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이파리와 꽃들은 우리의 눈을 시원하게 해 줍니다.

바람 고요한 아침에 이슬방울을 달고 있는 모습은 또 얼마나 예쁜 지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준답니다.

▲ 애기범부채.

이번에 소개해 드리는 꽃 중에서 가장 향기가 진한 치자꽃입니다.

순백색의 꽃, 해뜰 무렵과 해질녘에 가장 깊은 향기를 내는 순백색의 치자꽃입니다.

나무에도 향기가 있는데 해뜰 무렵과 해질녘에 가장 향기가 진하다고 하여 삼림욕을 하시는 분들은 주로 그 시간에 한다고 합니다.

아마 꽃의 향기도 그렇겠지요.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 진한 향기에 스스로 취해서 그런지 몰라도 그 순백의 아름다움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피었는가 싶으면 오후에는 꽃잎이 누렇게 변합니다.

▲ 향기가 진한 치자꽃.

각양각색의 꽃들은 향기도 서로 다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갑니다.

이런 꽃들을 닮은 삶을 우리도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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