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충민의 사람사는 세상] 제주식 고사리육개장끓이기
찬장을 정리하다 각시가 말린 고사리를 발견했습니다. 이번 명절 때 차례를 준비하면서 양이 많은 것 같아 덜어 놓은 것을 저도 잊고 있었습니다. 장인어른이 직접 들에서 꺾고 삶아서 잘 말려둔 것이지요.
우리 부부 워낙에 둘 다 게을러터진 성격인지라 날을 잡아 찬장과 냉장고를 정리한다 해도 깔끔한 사람의 대충하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열심히 했습니다.
"어이, 고사리육개장이나 만들지."
각시와 저는 정리를 다 해놓고 거실에 대자로 뻗어 뒹굴 거리고 있었는데 아내가 장난스럽게 발로 저를 톡톡 차며 말합니다.
"네, 마님."
그 말에 저는 벌떡 일어나 고사리 육개장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냉장고에 닭죽을 끓이려고 두었던 생닭도 있었고요. 지금 끓이기 시작하면 저녁에는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참 많이 걸리거든요.
주재료: 말린 고사리, 생닭 한 마리, 대파, 양파, 통마늘, 다진 마늘, 메밀가루 반 컵, 당면
양념: 고춧가루, 참깨, 후추
▲ 두번째 삶은 고사리입니다. 두번 정도 더 삶습니다. |
ⓒ 강충민 |
고사리육개장이니까 고사리가 당근 중요하겠지요. 말린 고사리는 물에 한 시간 정도 불렸다가 삶습니다. 고사리를 처음 삶으면 말린 고사리 특유의 탁한 물이 나옵니다. 이 물을 버리고 고사리는 찬물에 깨끗이 씻고 다시 삶기를 네 번 정도 반복합니다.
고사리를 오래오래 삶아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실처럼 가늘어지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렇게 삶은 놓은 것은 채에 받혀 물기를 빼놓습니다(보통의 육개장과 무침 일 때의 고사리와는 다릅니다).
▲ 큰 생닭입니다. 이번에는 닭으로 육수를 냈습니다. |
ⓒ 강충민 |
고사리육개장의 육수는 돼지등뼈나 생닭으로 냅니다. 우리 집은 있는 재료에 따라 그때그때 바뀝니다. 두 가지의 차이가 있다면 돼지등뼈 육수는 더 구수하고 닭은 살점의 씹히는 촉감이 좋고….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닭은 삶다가 날개를 각시와 둘이서 하나씩 애들 몰래 소금장에 찍어 먹는 맛이 좋고….)
아무튼 육수내기는 진한 국물이 우러나오는 것이니까 과정은 똑같습니다. 나중에 살을 발라서 국물에 넣은 것도 같고요.
▲ 닭을 삶습니다. 양파도 하나 풍덩,마늘도 풍덩... |
ⓒ 강충민 |
처음 후루룩 끓일 때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그냥 물만 넣고 끓입니다. 이렇게 후루룩 한 번 끓인 물은 버리고 찬물을 다시 받아 본격적으로 육수를 냅니다. 후루룩 끓여서 버리는 이유는 고기의 잡내를 없애기 위함입니다.
이때 양파, 통마늘을 같이 넣고 끓입니다. 먹다 남은 김빠진 소주를 넣어도 좋습니다. 처음 삼십 분 동안은 센 불에 펄펄 끓이다가 그 다음부터는 중 불로 줄여서 은근하게 육수를 기다립니다. 닭은 세 시간, 돼지등뼈는 네 시간 정도 걸립니다.
부재료 준비하기
집안에 무언가 끓고 있다는 야릇한 쾌감이 들 때 다른 재료를 준비합니다. 맛을 돋워주는 부재료이지요. 요리의 거의 맨 마지막에 넣을 것들이지요.
▲ 대파 세뿌리 어슷썰기를 하지 않고 직각으로(왼쪽 사진), 당면도 미리 삶아서 준비합니다(오른쪽 사진). |
ⓒ 강충민 |
대파를 썰어서 준비합니다. 육수를 낼 때 넣었던 통마늘과 양파는 나중에 건져서 버리는 것이기에 어쩌면 채소라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넉넉히 준비합니다. 어슷썰기를 하지 않고 직각으로 썹니다. 형체가 그대로 살아 있게요. 그래야 모양도 살아나고, 씹는 감촉도 좋더군요. 저는 큰 걸로 세 뿌리를 준비했습니다.
▲ 닭은 삶아서 뼈를 깨끗이 발라냅니다. |
ⓒ 강충민 |
완성하기
푹 육수를 내고 난 뒤 닭은 건져냅니다. 뼈를 발라내기 위함이지요. 이때 같이 넣었던 통마늘, 양파는 건져내서 미련 없이 버립니다. 특히 닭 뼈는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꼼꼼하게 발라내야 합니다. 닭 뼈가 혹시 목에 걸리면 위험하니까요.
푹 고아진 육수에 준비해 두었던 고사리를 넣어서 삼십 분쯤 다시 끓입니다. 어느 정도 고사리가 육수와 만나 적응하고 있을 즈음 살코기와 삶은 당면을 넣습니다.
당면은 칼로 세 등분으로 썰어 넣습니다. 다시 썰어 놓은 대파를 넣습니다. 다진 마늘도 한 술 같이 넣습니다. 그 다음 비로소 간을 맞추는데 국간장을 한 술 먼저 넣고 왕소금(천일염)으로 합니다.
찬물에 미리 개어 놓은 메밀가루로 마지막 마무리를 합니다. 불을 아주 약하게 해 놓고 메밀가루를 넣는데 눌지 않도록 국자로 저어 주면서 3분 정도 더 끓입니다.
▲ 메밀가루를 찬물에 갭니다. 제주음식에는 메밀이 많이 들어갑니다. |
ⓒ 강충민 |
완성을 하고 밥상 앞에 마주앉아 각시의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마님. 맛있습니까?"
각시가 한술 떠서 맛을 보고는 한마디 했습니다.
"응 먹을 만해."
각시의 이 대답은 맛있다는 겁니다. 우리 각시는 평가에 인색합니다.
▲ 완성된 제주식고사리육개장입니다. 우리 음식에는 잘익은 김치가 최고 궁합입니다. |
ⓒ 강충민 |
그러고 보면 모든 우리 음식은 특별한 노하우가 아니라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진득한 맛이 아닐까요?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