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 시대 서민을 위협하는 '괴물'은 신자유주의 체제와 재벌

작년, <괴물>이라는 영화가 세우는 각종 기록이 장안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지휘력과 인기배우 송강호, 변희봉, 박해일, 배두나 등의 연기가 빛을 발한 이 영화는  영화 <왕의 남자>가 세운 1천 200만 명 관객동원 기록을 개봉 38일 만에 돌파하며 수익과 관중동원에서 이전의 모든 기록들을 갈아치웠습니다.

이 영화는 한 강 둔치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도시 서민 가족의 무료한 일상에서 시작됩니다. 이 가족은 아버지(변희봉역)가 한강변에서 매점을 운영하고, 큰 아들 강두(송강호역)가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면서 가게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작은아들 남일(박해일역)은 대학을 졸업한 운동권 출신 엘리트이지만 취업에 실패하고 아버지에게 얹혀 무기력하고 무료하게 일상을 허비하며 살아갑니다. 딸인 남주(배두나역)는 양궁선수이고, 남주가 양궁경기가 메달을 획득하는지 여부가 무료한 이 가정의 유일한 관심거리입니다. 그리고 강두에게는 혼외로 낳은 중학생인 딸 현서(고아성역)가 있습니다.

한강변에서 나온 괴물이 출현하고부터 이 가정에 고통이 시작됩니다. 강두가 여느 날과 같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손님들에게 오징어와 맥주를 배달하던 때 한강에 나타난 괴물은 강두의 딸인 현서를 매가 쥐를 사냥하듯 낚아채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괴물에게 사랑하는 딸을 빼앗겨버린 강두의 가족은 무기력한 ‘콩가루 집안’의 모습에서 새롭게 변신하여 현서를 찾기 위해 의기투합합니다. 그런데 강두 가족이 현서를 찾는 일을 최선을 다해 도와줄 것으로 믿었던 ‘국가’는 오히려 강두가족이 괴물의 숙주에 기생하던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며 이들을 격리했고, 수용소를 빠져나온 강두 가족들에게 현상금까지 겁니다. 이 가정이 잃어버린 어린 현서를 찾기 위해 괴물과는 물론, 국가권력과도 어쩔 수 없이 싸움을 벌여야했습니다.

관객들은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돌연변이 괴물이 생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황당한 스토리가 전국의 관객들은 물론이고 세계인들에게서 찬사를 받는 이유는, 우리 서민 가정을 심하게 옥죄어오는 신종 괴물이 사회적으로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며,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서민 가정은 날마다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괴물과의 힘겨운 사투를 벌이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괴물이 바로 ‘세계화’ 혹은 ‘개방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기업의 이익을 국가의 이익으로 포장하여 날마다 기업하기 좋은 사회를 만들자고 윽박지르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입니다.

이전의 자유주의는 낡은 봉건질서를 해체시키는 순기능이 있었지만 신자유주의는 이미 전 세계의 대부분의 부(富)를 독점하는 자본에게 더 많은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작동하는 야만적 시스템이란 점에서 돌연변이 ‘괴물’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또, 그 체제의 확장 범위가 이전처럼 약소국이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일말의 배려도 인정하지 않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예외 없이 동일한 체제의 옷을 입을 것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괴물’의 포식성과도 비유할 만합니다.

물론, 외환위기 이후에 IMF가 우리사회에 급속하게 강요한 신자유주의는 일정부분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단절할 수 있다는 순기능을 담당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주주의 이윤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필연적으로 ‘자유로운 해고’와 ‘시장 확대에 따른 영세업종의 몰락’을 초래합니다. 재벌에게 은총을 가져올 신자유주의가 서민가정에 ‘괴물’로 인식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현명관 회장께서는 한나라당 여성정치 아카데미 행사에서 제주도정을 심하게 비난하셨다고 합니다.

언론에 의하면 그 자리에서 현명관 회장께서는 "지난해 제주도의 1인당 생산액은 1400만원으로 전국 평균 80% 미달하고 있고, 부채도 4471만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며 "평균 농가부채 1위이고, 자치단체가 빚진 도민 지방채도 제주도가 가장 빚을 많이 지고 있다"는 말씀을 남기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해군기지 건설 문제에 대해서는 "해군기지 건설문제에 제주도정이 얼마나 시간을 끌고 있느냐"며 "주민투표를 해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안 된다"며, "주민투표는 참고사항에 불과할 뿐이며, 제주도가 잘 살 수 있다면 강력하게 추진해야 하고, 지도자는 역사의 심판에 맡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현명관 회장께서 지적하신 농가부채와 기반이 취약한 도정의 재정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동감하면서도, 서민들의 고통위에 부를 축적하는 재벌에 속하신 분께서 제주도의 서민경제를 우려한다고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고양이 쥐 생각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는“노무현 정부의 정책 중에서 한미FTA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을 바꾸겠다.”고 공언합니다. 현명관 회장께서는  박근혜 전 대표의 경제 자문역을 맡고 계신 점을 감안해 생각해보면 서민경제 특히, 제주농가의 몰락을 가져올 게 뻔한 한미FTA를 추진함에 있어서는 노무현정부나, 한나라당의 박근혜 전 대표나, 현명관 회장 상호간에 이견(異見)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현명관 회장의 인식은 후안무치의 절정을 이룹니다. 한 지역의 공동체를 완전히 파괴해 버리거나, 제주도의 미래를 완전히 뒤바꿔 버릴지도 모르는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서, ‘주민투표는 참고사항이고, 도지사가 강력하게 밀어붙이면 된다.’는 말씀 하셨다고 하니 현명관 회장께서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인 ‘주민주권’의 원칙도 모르는 분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긴 삼성의 이씨(李氏) 일가에 충성하며 살아온 삶 가운데 어디 민주주의 가치가 들어설 틈이 있었겠습니까? 

국내 서민 경제는 신자유주의 폭풍과 재벌중심의 기형적 경제 지배구조가 부패한 정치와 맞물려서 정경유착으로 이어지는 변종 ‘괴물’에 의해 몰락하고 있습니다. 현명관 회장께서는 그런 민생을 걱정하실 입장이 아니라, 민생 파탄에 책임을 벗을 수 없는 이해 당사자 중 한 분이심을도 잊지 말고 제발 자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공자(孔子)께서는 “쉰 살에는 하늘의 뜻을 알고(知天命), 예순 살에는 귀로 듣는 대로 모든 것을 순조롭게 이해하게 되며(耳順), 일흔 살에는 마음이 내키는 대로 좇아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從心所欲 不踰矩)”고 했습니다. 선거가 지난 지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지난 선거의 경쟁자를 향해 막말을 쏟아 붇는 행동이 추해 보입니다.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 생각하신다면 보수적 가치인 예의범절이라도 잘 실천하시라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연세가 곧 일흔에 이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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