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추진 위한 제주공청회 열려

"다리에 장애가 있어 목발을 사용하는 여성이 있었다. 하루는 치료를 위해 치과를 방문했는데 병원 관계자가 세균감염 등을 이유로 치료실 내의 목발 반입을 금지했다. 목발이 없으면 거동할 수 없는 그녀로서는 신체의 일부나 마찬가지인 목발을 떼어놓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목발이 있으면 혼자서 충분히 거동할 수 있는데 목발을 두고 부축을 받으란다. 치과를 방문한 비장애인에게 치료실에 들어가기 전 옷을 모두 벗으라는 요구와 무엇이 다를까?"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정치적·사회적 차별로 인해 그 차별의 종류도 다양하고 차별을 받더라도 그에 대한 부당함을 호소할 곳조차 마땅하지 않은 게 장애인 차별의 현주소이다.

21일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 다목적실에서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등에 관한 법률' 제정 추진을 위한 제주지역 공청회가 열렸다.

인권의 사각지대로까지 불리는 장애인 인권에 대해 장애인이라는 시각보다 '사람 그 자체로 보는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2003년 4월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인연대를 출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등에 관한 법률' 제정에 본격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공청회는 ㈔제주도장애인총연합회(회장 김호성) 주관,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주최로 통합사회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장애인 차별에 대한 해소와 다양화되고 있는 장애인 패러다임을 통한 인식변환으로 장애인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꿔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공청회에 참석한 박옥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부장은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사회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모든 영역에서 소외되고 있는 장애인의 현실에 대해 지적하고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박옥순 정책부장은 "장애인이 사회활동의 모든 영역에서 소외되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직·간접적 차별로 인한 것"이라며 "차별을 차별로 인식하지 못하고 폭력을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의 불감증이 우리를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인권침해에 대해 무관심하게, 무감각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박옥순 정책부장은 ▲기존법률이 다루지 못하는 차별 영역 존재 ▲선언적 의미의 차별금지 ▲광범위한 문제로의 장애인 차별 ▲장애인 차별에 대한 정의와 사회적 인식 확대의 필요성 ▲장애인 차별이 갖는 특수성 ▲사회적 차별금지법의 한계 등을 지적, 기존의 법률만으로는 장애인 차별금지가 불가능하다며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등에 관한 법률' 제정의 필요성을 밝혔다.

오는 9월 입법 청원을 목표로 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운동은 ▲30여년에 걸친 장애인인권운동의 결실 ▲진정한 연대 모습의 운동 ▲아래로부터의 운동 ▲권리운동에서 인권운동으로의 전환 ▲사회적차별금지법제정 운동의 선구적 역할 ▲우리 사회 및 시민의식의 성숙의 표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박옥순 정책부장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1인 시위와 대규모 집회 계획을 밝히며 지역에서의 지속적 동참을 호소했다.

▲ 이문희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정책실장.
제2 발제자로 나선 이문희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정책실장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주요내용'에 대해 발제했다.

이문희 정책실장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방향은 '우리의 시각이 변하자'는 것에 있다"며 "장애인들이 더 이상 베풂을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인권을 찾아가는 방향으로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 방향을 제시했다.

이문희 정책실장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장애 당사자의 시각에서, 차별 받는 대상이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리는, 권리구제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법률로 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법제위와 법안소위는 사회적 환경의 장벽에 중점을 둔 '장애'차별금지법이 아닌 장애인에 중점을 두는 '장애인'차별금지법으로 결정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신속하고 효과적인 권리 구제와 당사자의 자기결정권 등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문희 정책실장은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정의와 차별 개념의 확장 등을 예로 들며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법안과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이어 장애인의 성별, 유형, 정도를 고려한 차별금지 장치와 장애인권운동의 핵심인 자기결정권과 선택권 규정에 대해 설명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차별금지를 차별의 영역별로 풀어나간다는 전제 하에 장애의 유형 및 정도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제정된다.

이 법안은 고용, 교육, 건축물 및 시설의 이용과 접근, 이동 및 교통수단의 이용, 의사소통 및 정보접근권, 재화와 용역의 제공 및 이용, 문화, 체육, 사법·행정·참정권, 모·부성권, 성, 가족·가정·시설, 건강권, 폭력 등 다양한 분야와 형태에서의 차별에 대한 금지를 명시하고 있다.

이번 제정 추진중인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이면서 여성이라는 점에서 이중적 차별을 받고 있는 여성장애인에 대한 독립된 장을 마련했다는 것도 특징이다.

이문희 정책실장은 장애를 이유로 차별 받는 장애인들에 대한 신속하고 효과적인 권리구제를 위한 힘있는 기구, 독립성과 객관적 중립성이 보장되는 기구,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행위에 실질적인 조사 및 제재 권한을 가진 기구로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의 설립에 대한 조항도 거론했다.

현행 장애인복지법의 제8조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단지 규정만을 할 뿐 강제성을 띠고 궁극적인 차별금지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시행 가능한 법률로의 제정을 위해 ▲입증책임의 전환 ▲징벌적 손해배상 ▲집단소송제도 등의 사법적 권리구제 방법을 제한적·변환적으로 도입한다.

남시영 평화의마을 원장은 "원칙만 잘 지켜진다면 법률제정은 불필요하다"며 "강제성을 띤 법률이 필요치 않을 정도의 장애인차별에 대한 공동 정서가 형성돼야 한다"고 토론을 시작했다.

남시영 원장은 장애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환경적 요인으로 인한 문제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애에 대한 잘못된 정보의 전달로 인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를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남시영 원장은 ▲기능성에 중심 둔 장애 편의시설 설치 ▲장애 유형별 특수성에 대한 고려 ▲통합교육에 대한 강조 등이 장애인에 대한 현실적 차별을 감소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오성진 제주DPI 교육원장은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고자 노력했다는 점에서 초안이 마련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큰 의의를 두면서도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지적했다.

오성진 교육원장은 법안 제정 과정에서 좀더 다양하고 많은 장애인의 의사를 반영하고 국민적 합의를 얻기 위한 노력의 부족을 꼬집었다.

중앙단위에서만의 논의가 아니고 지역적 단위에서의 역량 결집과 공감대 형성을 위한 조직적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어 "차별을 없애자는 취지이지 적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며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지역적·중앙적 차원의 노력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오성진 교육원장은 또 장애인차별금지법 대상에서 제외되는 장애인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차별금지 예외규정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의 위원 자격에 대한 조정 지역별 운영위원회 조직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 공청회 참관자들.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성면에서 지역 자치단체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 장애인은 피해자이고 비장애인은 가해자라는 인식으로 이해 역차별적 요소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 장애인 편의시설의 실질적 활성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 지역연대의 필요성, 장애인차별금지에 대한 예방교육이 더불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 등 이날 공청회에서는 참관자들의 다양한 의견도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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