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욕의 한 시대 청산하는 계기 되어야

송두율 교수가 돌아왔다. 37년을 머나먼 변방에서 떠돌다 돌아온 조국에서 희대의 ‘간첩’ 누명을 쓰고 영어의 몸이 된지 10개월 만에 이제야 비로소 한 사람의 자유인으로 우리 앞에 돌아왔다. 집행유예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과 송 교수의 석방을 충심으로 환영한다.

송 교수의 판결은 탈냉전, 남북화해의 시대적 흐름을 재판부가 인정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참으로 크다. 나는 이번 재판을 우리 시대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대한 중요한 시금석으로 보았다. 한 학자의 양심에 따른 연구 · 저술 활동을 반인권적인 구시대의 악법으로 재갈을 물린다는 것은 학문의 자유를 근본에서 뒤흔드는 불순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1심 재판부는 송두율 교수의 학문적 저술 활동에 대해 “순수한 학문활동의 일환으로 이러한 저술을 하였다고 볼 수 없고, 북한과의 의사 연락 하에 북한의 주체사상을 전파하고 김일성, 김정일 체제를 선전할 목적으로 이와 같은 저술활동을 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단정했다. 송두율 교수의 내재적 방법론을 북한 정권의 정당성을 유포하기 위해 전술적으로 채택된 선전술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왜곡 해석한 것이다.

북한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송 교수의 내재적 방법론은 그 당시까지의 남한 사회의 지배적인 반공이데올로기로 재단된 편향된 북한 이해를 극복하고, 그 사회 내 행위 주체들의 동기를 내재적으로 파악하여 ‘북한바로알기 운동’에 중요한 이론의 틀을 제시했다. 호랑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직접 호랑이 굴에 들어가 가까이서 그들의 습성과 생태를 경험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이치와 같다. 학문의 방법론은 학문 공동체의 영역 내에서 상호 토론과 비판을 통해 여과되어야지 학문 외적인 힘에 의해 농단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학문의 사망선고와 다름 아니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국가보안법은 최대한 제한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맞는 말이다. 국가보안법의 개폐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고, 정부 여당에서조차 이 법의 폐지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는 마당에 실정법의 기계적인 적용이 가져올 개인의 존엄과 인권의 피해를 막는 길은 그것 말고는 달리 없다.

다 알다시피 국가보안법은 일제가 그들의 식민지 지배에 위해가 되는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치안유지법’의 후신으로, 1948년 이승만 정권이 제정한 이후,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국가안보를 빙자하여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체제 비판자들을 탄압하기 위해 악용한 국가 폭력의 장치로서, 문명화된 탈냉전 시대에 이미 법률로서의 존재 가치를 상실한지 오래다. 법적 규범으로서의 설득력과 정당성을 갖지 못하는 법은 법이 아니라 폭력이다.

국보법에 명시된 ‘반국가 단체의 수괴’들과 한 테이블에 마주 앉아 이야기한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우스운 자기모순인가. 우리의 주적에게, 반국가단체에게 제주도의 밀감을 보내고 쌀을 보내는 것은 또 이치에 합당한 일인가. 진정 북한을 통일 시대의 파트너로 생각한다면 모순덩어리인 ‘주적’ 개념도 ‘반국가단체’의 개념도 없어져야 할 것이다.

송 교수의 석방으로 그나마 우리는 반문명의 인권후진국이란 오명을 다소나마 벗게 되었다. 냉전 시대의 유물인 국가보안법을 하루 빨리 폐지하고 이를 부끄러운 역사의 한 장으로 정부기록보관소로 돌려보내야 한다. 그것은 오욕의 한 시대를 청산하고, 영광된 통일의 시대로 나아가는 힘찬 대장정의 서막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분별한 국보법의 남용에 쐐기를 박은 송두율 교수의 석방은 크나큰 상징적 ‘사건’이다. 이번 일을 계기가 되어 법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모든 국가 폭력이, 개인의 사상과 양심, 표현의 자유를 재단하고 시험하는 모든 제도적 억압이 영원히 추방되기를 기원한다. 생뚱맞은 ‘간첩’논란도, 그 지긋지긋하고 지저분한 색깔 논쟁도 이제 다시는 부활할 수 없도록 지하 깊숙이 매장시켜야 한다.

문명사회의 세계시민으로 당당히 서기 위한 반듯한 국가를 우리는 원한다. 지난 7월 15일 ‘송두율 교수의 무죄석방과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를 요구하는 전국 철학자 일동’이 발표한 성명서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제 우리 국가의 품격을 찾을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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