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표 칼럼] "평화의 섬 제주가 공허하게 만 들린다"

제주는 지금 찜통이다.
열흘을 넘기는 뙤약볕과 싸우는 중이다.
밖에 나돌아다니기가 싫다.
그런데도 가뭄을 이겨내기 위한 제주 농민들의 구슬땀은 차라리 눈물이다.
가슴이 타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에는 멋들어진 호텔이 많다.
시원한 에어컨과 맛난 음식들이 그들만의 풍요를 더해준다.
그 속에서 푸른 제주바다를 바라보는 정취는 끝내준다.
동북아 평화와 북핵 문제를 논의한다고 한일 정상이 ‘호텔’에서 만났다.

이 날, 송두율 교수가 드디어 석방됐다.
통일을 꿈꾸는 한 지식인이 ‘차가운’ 독방에서 해방되었다.
분단을 타파하고 민족의 화해와 통일로 가는 여정에서,
본인이 심었던 밀알이 이제야 싹을 드러냈다.

39년만의 귀국과 조국 대한민국의 냉대.
국보법과 공안검찰의 여력은 아직도 대한민국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그 속에서 그는 가슴을 쓸어 내려야만 했다.
또 그로 인해 결코 짧지 않은 기간,
우리들 마음 속에는 무언가에 짓눌려 영 개운치가 않는 심장병(?)을 앓아야만 했다.

작년 9월 귀국 이후 오늘까지 약 10개월간 그는 우리에게 많은 화두(話頭)를 던져줬다.
분단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냉철하게 다시금 고민하게 했다.
통일이라는 미래를 진지하게 계획하게도 했다.
대한민국의 국보법, 공안검찰, 사법부의 과거와 미래까지 얘기가 오갔다.
우리는 그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했다.

이제 송 교수는 석방되었다.
지난 9개월간 그를 가두었던 현실적 공간에서,
그가 펼쳤던 자유로운 미래의 세계를 듣고 싶다.

정상들이 즐겼던 푸른 제주바다를 배경으로
제주민과 송 교수가 도두리 해안가 조그만 횟집에서
자리물회 시켜놓고 선풍기바람 맞으며
소주 한 잔 곁들여서 통일 노래 부르고 싶다.

재임기간 과거사는 묻지 않겠다는 비굴한 소리...
동북아 평화와 북핵 해결을 위해 미래를 함께 열어가자는 속없는 소리...
남북 정상회담은 아직 때가 아니라는 정략적 소리...
굳건한 한미동맹을 위해 이라크 파병은 불가피하다는 철없는 소리...
한라산에 케이블카 설치를 다시 검토하겠다는 허튼 소리...

이런 소리들은 씹어 내뱉는 안주로 삼고,
얼음 둥둥 띄운 시원한 자리물회 안주는 달게 삼키며,
제주와 대한민국의 진정한 미래는
과거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반성을 바탕으로 가능하다고 맘껏 얘기하고 싶다. 송 교수와...

정상들이 몇 번 모여 회담하고 세계적 매스컴을 탔다고,
외국 정상들이 제주의 자연 풍광이 아름답다 언급했다고,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가꾸어 나가자는 구호는 왠지 매스껍다.
그러기에 행정적인 구호는 우리 제주민에게 공허하게 들린다.

단선(單選), 단정(單政) 반대와 통일조국 건설을 내세워 최초로 봉기했던 이 곳.
세계적 냉전 체제를 우리 민족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겼던 이 곳.
그래서 억울한 원혼들이 아직도 떠다니는 이 곳.
참 소중하게도 도법 스님이 원혼을 달래주고 생명 평화 운동을 시작한 이 곳.

그래서 이 땅에 살고 있는 제주민이 진정으로 합의하고,
제주민이 주체적으로 추동하는 평화의 섬으로 이 곳 여기저기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서울의 ‘차가운’ 독방에서 고생했던 송 교수를 이 곳에 모셔와
‘따뜻한’ 제주의 과거와 미래를 맘껏 얘기하고 싶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