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삶을 즐기러 간 여정 속에서 만난 죽음

살찐 소의 엉덩이처럼 섬엔 산잔디가 부드럽게 덮혀 있다.

서양 민들레가 노랗게 흔들리는 우도봉 아래, 휴게소 앞 가판대 위엔 투명 비닐에 포장된 땅콩 무더기가 놓여 있다.

자그만 땅콩 알이 야무진 게 고소해 보인다.

간암에 걸린 어머니를 위해 다슬기를 잡곤했다는 언니와 함께 섬 위에서 바다를 본다.

모자를 벗는 그녀의 머리엔 검은 핀에 꽂힌 하얀 광목리본이 있다.

친정 어머니는 돌아가셨다며, 별로 눈물도 나지 않더라며 웃는 그녀의 얼굴 위로, 파도처럼, 흰광목리본이 넘실했다.

해는 구름에 가려 있었으나, 오르막을 오르는 우리의 호흡은 빨라지고, 얼굴엔 땀이 흘렀다.

절대 넘어서지 말라는 인조목 울타리 너머로, 흰 물살을 내며 가는 노란 유람선에서
우도 팔경의 하나인 '주간명월'을 설명하는 마이크 소리가 들린다.

내려서면 바다로 떨어질 아슬아슬한 절벽인데, 그 아래 진분홍 패랭이꽃이 낮게 엎드려 피어 있다.

아직 개화하지 않은 달개비와 골풀도 삐죽삐죽 솟아 있다.

"이런 아까운 땅을 묘지로 쓰네"

소리에 고개 돌리니,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이다.

그녀가 가리키는 곳은 내가 오르고 있는 반대편에 있는 우도봉보다 작은 오름이다.

정말 그 곳은 마을의 공동묘지인 듯, 오름 전체에 무덤들이 둥글둥글 솟아있다.

나는 우도봉에서 죽은 자의 터를 보고, 죽은 자들은 누워 산을 오르는 나를 본다.

삶과 죽음의 넘을 수 없는 경계처럼 그 사이를 가로질러 길이 나 있다.

엉뚱하게도 삶을 즐기러 온 여정 속에서 만나는 죽음….

갑자기 삶이 더 간절해지고, 경건하게 느껴진다.

우도봉 정상에는 등대가 있었다.

그러나 그 앞에 철책이 막혀 갈 수가 없었다.

등대는 그리운 사람처럼 등 뒤에 남겨지고, 오르던 길을 이제 내려 걷는다.

자꾸 체중이 발톱에 쏠려, 땅만 내려다 보며 걷게 된다.

발 아래 보랏빛 꿀풀들, 길 옆엔 키 작은 소나무들….

이 작은 섬에 사는 식물들은 모두 작다.

섬의 땅콩도, 소나무도, 우리 민들레보다 훨씬 크게 자라는 서양 민들레 조차 바람 센 이 땅에 살아남기 위해 키를 낮추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 시련을 견디어 내는 섬의 식물은, 절벽을 기어 오른 바람에 흔들리며 내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친다.

키를 낮춰 사는 덕에 작기는 하지만, 땅콩은 땅콩대로,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민들레는 민들레대로 고유의 유전자는 지켜가고 있다.

어쩌면, 우도산 땅콩은 조그만 알 속에 맛을 응축시켜 더 고소한 게 아닐까.

가끔은 나도 바깥의 바람에 흔들려 내가 나 아닌 것 같을 때가 있다.

그 바람이 나를 꺾을까 두렵진 않다.

다만, 내가 '개량종'이나 '변종'이 되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

묘지가 보이는 풀밭에 누워, 나도 풀처럼 키를 낮춰 본다.

바람이 머리 위를 지난다.

뒤에는 내가 오른 우도봉이 있고, 앞에는 무덤이 있는 섯알 오름이 있다.

뒤에는 내가 이미 살아 온 날들이 있고, 앞에는 내가 살아갈 날들과 죽음의 날이 있을 것이다.

그 사이에 누워 풀들처럼, 살아가기 연습을 한다.

작지만 고소한 땅콩처럼 내가 품은 소망들을 응축해 살아남는 연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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