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섬에서 상생의 길을 걷다] 서귀포시 표선면 제주민속촌박물관

▲ '막살이 집', 봄이 머물다.ⓒ김강임
서귀포시 표선면 제주민속촌박물관. 허름한 막살이 집에 봄이 무르익었다. 세찬 겨울바람을 이겨냈던 초가지붕 위에 햇빛이 내려앉았다. 촘촘히 엮어진 이엉은 지붕위에서 줄을 탄다. 흙으로 쌓아 올린 바람벽, 햇빛과 바람을 막아 주는 풍채도 봄볕에 졸고 있다.

봄은 막살이 집 돌담 위로 피어났다. 숭숭 뚫린 돌담 틈새에서 봄바람이 새어 나온다. 지난 겨울 앞마당에 뿌려놓은 유채꽃 씨가 어느새 돌담보다 더 높이 자랐다. 심심하던 막살이네 집은 어느새 봄 냄새가 물씬했다. 유년 시절 자주 불렀던 클레멘타인 노래가 생각이 났다.

▲ '막살이집' 빈터에는 봄이 무르익었습니다.ⓒ김강임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딜 갔느냐

▲ 무뚝뚝한 돌하르방 얼굴에도 봄이 왔습니다.ⓒ김강임
막살이네 집으로 들어가 보았다. 초인종이 있을까, 대문이 있을까, 막살이네 집은 누구든지 차별 없이 방문을 할 수 있다. 다만 막살이 집을 지키는 것은 동구 밖에 서 있는 돌하르방. 돌하르방은 막살이네 집 뿐 아니라 마을 전체를 지키고 보호하는 수호신이다.

일자 눈썹에 튀어나온 눈, 무뚝뚝한 코는 표정이 없어 보이지만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그 미소는 누군가가 돌하르방 머리 위에 노란 유채꽃 한 송이를 꽂아 주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로부터 봄을 선물 받은 것이다. 봄을 선물 받은 돌하르방은 생명이 꿈틀거렸다. 봄은 구멍 뚫린 현무암의 돌하르방의 입가에 머물렀다.

▲ 딱딱한 씨알을 틔우는 것도 봄입니다.ⓒ김강임
막살이네 집 처마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옥수수도 봄 마중을 나왔다. 몸통을 꼭 채운 씨알이 노랗다. 옥수수 씨알도 머지않아 생명을 잉태할 것이다.

▲ 장독대를 익히는 것도 봄입니다.ⓒ김강임
막살이네 집 장독대로 발길을 옮겨보았다. 항아리 속에서 익어가는 간장과 된장, 봄은 막살이네 집 항아리를 익히고 있다. 막살이네 장독대라야 듬성듬성 쌓아올린 돌무더기 정도, 빈틈없이 노랗게 피어나는 유채꽃이 장독대의 봄을 알린다.

▲ 동백꽃이 뚝뚝 떨어지면 봄이지요.ⓒ김강임
빈항아리 뚜껑 위에는 겨울에 피어났던 동백꽃이 뚝뚝 떨어졌다. 겨울에 피어나는 꽃이 동백꽃이라면 봄에 지는 꽃이 동백꽃이다. 동백꽃이 지기 시작하면 봄이 시작된다. 막살이네 장독대 옆에도 동백꽃 뚝뚝 떨어졌다.

▲ 우리안에 갇혀 있던 흑돼지도 기지개를 켭니다.ⓒ김강임
막살이네 뒤뜰의 터줏대감은 우리 속에 갇혀 있는 검은 돼지 한 마리. 둥지에 갇혀 있던 돼지 한 마리가 낮잠에서 깨어났다. 봄은 검은 돼지에게도 식욕을 가져다주었다. 식욕이 왕성한 돼지는 빈 밥그릇만 핥으며 기지개를 켠다.

▲ 장독대를 익히는 것도 봄입니다.ⓒ김강임
지난 시절, 물이 부족했던 때가 있었다. 지금에야 물 걱정 없이 살고 있지만 빗물을 받아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물 한 방울은 아주 귀중한 자원이었다. 한 방울의 물도 흘러내리지 않고 받아두었던 선인들의 지혜. 선인들의 지혜가 담긴 촘항에도 봄이 익어간다.

봄은 차별이 없다. 조용한 바닷가 막살이 집에도, 허술하고 초라한 작은집에도 봄은 손을 내민다. 딱딱한 씨앗을 틔우게 하는 것도 봄이요, 무뚝뚝한 돌하르방에게 미소를 던져 준다. 봄은 설익은 장독대를 익혀주기도 하고 차별 없이 온 세상을 깨어나게 한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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