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제주 문화원, 명월초등교에 ‘백난아 찔레꽃 노래비’세우기로
한림읍 유적지 표석문 설치 총10개소서…이달 하순 내에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고향 /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동무야
달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세 동무 / 천리객창 북두성이 서럽습니다
삼년 전에 모여앉아 백인 사진 /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거운 시절아
연분홍 봄바람이 돌아드는 북간도 / 아름다운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꾀꼬리는 중천에서 슬피 울고 / 호랑나비 춤을 춘다. 그리운 고향아

▲ 백난아의 앨범 표지
장년층 사람들은 여전히 가수 백난아의 ‘찔레꽃’(김영일 작사, 김교성 작곡)을 흥얼거린다. 고인이 된 그녀를 기리는 ‘백난아의 찔레꽃 노래비’가 고향 한림읍 명월리에 세워진다.

제주시와 북제주문화원에 따르면 제주출신인 백난아를 기리기 위해 노래비를 현재 제작 중에 있고 이달 하순께 명월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질 예정이라고 2일 밝혔다.

고 백난아 씨(본명 오금숙)는 1927년 오남보의 3남3녀 중 셋째로 한림읍 명월리에서 태어났고 가수 백연실씨의 양녀로 가수활동을 시작했다.

찔레꽃이 수록된 음반은 1941년 5월에 나왔는데 당시 백연실씨가 활동하던 태평양레코드사에서 고향을 함경북도 청진이라고 쓰게 한 이후 제주에서는 잊힌 가수가 됐다.

이 때문에 백난아씨가 제주출신이라는 사실은 제주사람들에게 조차 생소한 사실이다.

찔레꽃 음반은 일제말기인 1942년에 발표되어서 반응이 미미했으나 1945년 해방이후 특히 6.25 한국전쟁 후에는 민중의 노래로,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퍼지면서 애창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노래는 작곡가 김교성 씨와 작사가 김영일 씨, 가수 백난아씨가 만주 공연에 갔다가 독립군들을 비밀리에 만나고 돌아와, 세 사람이 다시 명월대로 찾아와 독립군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주기 위해 만든 노래로 전해지고 있다.

찔레꽃, 세 동무, 달뜨는 저녁 등 아련한 고향의 정서가 담긴 가사 때문에 당시 독립군들이 틈만 나면 고향이 있는 남쪽하늘을 바라보며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불렀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고 백난아 씨는 1992년 12월 21일 66세의 일기로 서울에서 별세했다.

반세기가 훨씬 지난 오늘날에도 KBS TV '가요무대' 에서 가장 많이 불린 노래가 백난아의 ‘찔레꽃’이다. 지난해 말 갤럽조사결과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가요 100'에서 53위를 차지했던 곡도 ‘찔레꽃’이다. 한 마디로 ‘국민가요’라 할 수 있는 노래다.

제주시에 따르면 ‘백난아 노래비’를 포함해 북제주문화원 주관으로 세워지는 한림읍 관내 유적지 표석문 설치는 7개 마을 총10개소라고 밝혔다.

유적지를 알리고 보존하기 위해 이달 하순에 세워질 표석문 설치장소는 명월리 ‘백난아 노래비’외에도 ▶동명리 ‘우학당과 한림초등교 발상지’ ▶옹포리 ‘일본 군수용 통조림공장의 옛터’ ▶협재리 ‘일본해군 병사의 진혼처’ ▶옹포리 ‘한림공업고 발상지’ ▶한림1리 ‘한림동국민학교와 한림중학교 발상지’ ▶협재리 ‘재암천의 유래’ ▶귀덕1리 ‘귀덕연대와 망해대의 옛터’ ▶한수리 ‘죽도연대의 옛터’ ▶명월리 ‘명월포 수전소와 최영장군의 격전지’ 등이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