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4.3에 바란다] 이도영 박사

"문서기 나와!"

갑짜기 밀어닥친 토벌대 무장군인이 대정면사무소에 들이닥쳤다.

"저 말입니까?"

"이리 나와!"

대정면사무소 서기로 근무하던 문형옥씨는 토벌대에 의해 오무라(대촌) 병사로 끌려 갔다. 그 전날에는 대정면장 김상화씨와 면서기인 그의 동생 김우필씨가 함께 끌려갔다. 문형옥씨가 취조실에 들어섰을 때에는 이미 김상화 면장과 김우필씨는 초죽음 상태에 빠져 있었다. 오싹 소름이 끼쳤다. 군인들은 김 면장과 김우필 서기를 취조실 천정에 팔을 뒤로 재껴 엄지손가락을 철사줄로 묶어 메달아 놓고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소위 '헬리콥터 고문'이란 것이었다. 메어 단 철사줄이 끊어져 땅바닥에 떨어졌는데 다시 메달아 고문을 했다.

보지 말았어야 할 장면을 목도한 것이다. 문형옥씨는 무사히 풀려나왔다. 문 서기가 면사무소에 또 한 사람 더 있었는데 잘 못 불려나갔기 때문이다. 김 면장도 일시 풀려나왔는데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여 집에까지 부축을 하여 모셔다 드렸다. 그 후 김 면장은 다시 체포되고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대구형무소로 보내졌다. 1950년 7월 29일 군에 인계된 기록이 최근에 발견되었다. '군 인계'는 곧 총살을 말한다. 거의 대부분 대구 형무소 수형인들은 가창 골짜기(현재 가창댐)에서 학살되었다.

김우필씨는 영락리로 끌려가서 문옥련씨와 함께 속칭 '도꼬못'(저수지) 근처에서 총살되었다. 함께 연행되던 대정중학교 수학 선생 이태완씨는 탈출하였다. 트럭에 실려가던 도중 경비를 하는 군인이 "저기 커어브 길에서 차가 서행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들은 뛰어 내려 도망가라. 그러면 우리는 너희들 뒤에다 총을 쏘을 것이다. 어차피 너희들은 죽는다. 이태완 선생은 고문을 덜 당했는지 도망쳐서 살아 남았다. 그러나 김우필씨는 가혹한 고문으로 걸음조차 걸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탈출했던 이태완 선생은 신평리에 숨어지내다가 토벌대에 다시 붙들려 총살되었다.

대정중학교와 대정초등학교 교장을 겸하던 홍완표 선생은 토벌대에 불려나가 속칭 '진개 동산'이란 곳에서 총살되었다. 이승진 선생이 4.3의 주동자로 찍혔기 때문에 그 책임을 물어 교장을 직결처분하였다.

모두 1948년 11월과 12월 두 달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다.  소위 '초토화 작전'으로 근 3만명의 인명피해와 계산불가능한 재산 피해를 냈다.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예비검속으로 1천여명의 제주인들이 구속되어 경찰서 유치장과 주정공장 창고 및 양곡 창고 등에 수 개월을 불법감금했다. 전세가 불리하자 이들 중 소위 'D 급 및 C 급'을 집단학살하고 암매장하거나 수장하였다.

필자의 아버지(이현필)와 좌용운씨는 대정면사무소 서기로써 모슬포 절간창고에 예비검속된 사람들의 방역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예비검속된 252명이 해병대(계엄군)에 의해서 집단학살 되던 날 밤중에 불려나가 함께 처형되었다.

왜 이렇게 잔혹한 집단학살이 벌어졌을까? 이승만은 "미국의 원조를 받아내기 위해서 ..."라고 하였다. 미군들은 학살을 배후 조종하고 또 총과 실탄 트럭 경비행기 등을 제공하였으며 토벌대(군인과 경찰)를 수송하는 임무를 맡았다.

주한 미 대사는 제주도 사태가 진압된 것을 미국무성에 보고하면서 "제주도는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섬"이라고 표현하였다.

필자가 <4.3에 바라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1. 진정한 명예회복을 바란다.

필자는 <죽음의 예비검속>(월간 말, 2000년 p.82)에서 대정부 요구사항을 이렇게 내놓은 바 있다: "현직 공무원이 파면되거나 면직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군에 의해서 전쟁터도 아닌 후방에서 비밀리에 총살형이 집행된 예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그 어느 때에도 찾아보기 힘들다. 당시 현직 공무원이었던 희생자들은 복권 복직되어 정식으로 법에 따라서 퇴직 보상 등의 절차가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에 북한을 탈출하여 귀국한 국군병사의 경우, 복직 및 퇴직 등의 절차를 밟은 것이 그 전례라고 할 수 있다."

도청 또는 도 교육청 단위의 복권 복직 및 정식 퇴직 절차 등이 이뤄지길 희망한다.

공무원이 아닌 일반인들의 경우도 시 읍 면 별로 명예회복과 더불어 위령탑을 세우는 일도 생각해 볼 일이다.

결국은 모든 피해 배상은 국가차원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2. 진정한 '평화의 섬'으로 거듭 나길 바란다.

말로만의 '평화'가 아닌 '전쟁'의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제주도를 다시 '전략기지화'한다는 것은 바로 불을 짊어 지고 화약고로 뛰어드는 격이다.

모슬포를 보라 아직도 일본제국주의의 군사문화의 잔재에서 헤어날 길이 요원하다. 모슬포 주민의 사유재산이 '징발'이란 명목으로 빼앗겼으며 해방후에도 '적산물' 취급, 국유화하고 원 소유주에게 반환되지 않고 있다. 어찌 진정한 '해방'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해군기지 건설'은 한국 해군만을 위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이지스함 체제를 갖춘 구축함을 정박할 경우 이것은 한국 해군 독자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엄격한 군 보안상 일반인의 행동반경은 극도로 제약되고 위축되며 따라서 '공동체'는 와해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군기지 건설이 제주도 주민 또는 그 특정 지역 주민의 '경제발전'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거의 1세기 동안 군사기지화된 모슬포를 보면 그 답이 나온다.

4.3과 한국전쟁 동안 무자비하게 희생된 영령께 삼가 머리를 숙이며 또 그 유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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