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직 칼럼] 무궁무진한 관광자원을 보유한 나라

잠깐 짬을 내어 멀고도 가까운 나라 몽골을 다녀왔습니다.

인구 250만명에 면적은 남한의 8배라니까 인구 밀도는 160분의 1인 셈입니다.

수도 울란바타르(Ulaanbaatar)에 100만명 이상이 밀집현상을 보이고 있어 나머지 지역만 생각한다면 차로 달려도 드문드문 유목민 게르가 있어 사람 만나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수도 울란바타르는 인구의 밀집현상으로 자동차를 비롯한 여러 요인으로 오염이 심한 편이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시내에서 나무를 잘 볼 수 없어 도시가 상당히 삭막해 보였는데 나무를 키우려고 무척 노력을 해도 어린 나무들이 매서운 겨울 추위와 건조한 여름 가뭄을 견디기 어려워 그렇다고들 합니다.

▲ 울란바타르 수도 외곽 모습.
서울에서 비행기로 세시간 반이고 몽골항공과 대한항공의 직항로가 개설돼 있었습니다.

시즌에는 매일 두 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의 왕래가 잦은 것 같아 보였습니다.

바쁘지 않은 철에는 1주일에 두 편정도로 한국인은 물론 관광객이 대다수지만 몽골인의 왕래도 많은 것으로 보였고 한국 내 취업 몽골인들로 보였습니다.

제주 내에도 취업중인 몽골사람들이 50~60명에 이르고 있는 모양입니다.

1920년부터 1990년까지 소련연방으로 사회주의 국가 소련의 영향 하에서 정치 ·경제·군사·외교 등 모든 통제를 받았기 때문에 독립 후에도 여전히 자율적인 행정이나 자체적인 기술 축적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로 인해 건축이나 도로 등 하드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잘 되어 있지 않아 보였습니다.

▲ 난로가 타는 게르.
다만 핸드폰은 보편화 되어 있어 아주 산골짜기에서도 잘 터지는 것으로 보아 통신에 대한 투자는 어느 정도 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으며 전기나 가솔린은 풍부한 편으로 가격도 한국의 절반 정도였습니다.

몽골 초기에는 몽골말만 있다가 위그루 문자를 차용해서 사용해 왔으나 그 복잡성으로 인해 표기에는 현재 러시아 문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최근 몽골말의 다양한 발음을 표현하는데 러시아 문자가 한계를 드러내고 있어 새로운 문자로 한글을 검토한다는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 나라 국립대학에서 가장 인기있는 학과 중의 하나가 한국어과이고 이 나라 국민들이 한국과 한국인을 선호하고 있는 상태에서 만약 자신들의 문자를 한글로 바꾼다면 결과적으로 한국의 첩경이 엄청나게 넓어지는 효과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현지사정에 밝은 어느 분은 한국어와 영어로 수업을 하는 외국어 초등학교를 만들면 몽골 중 상류층 자제들이 몰려 올 것으로 보여 이를 계획 중에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 몽골의 어느 풍경.
몽골에는 현재 일본이 여러 면에서 가장 많이 진출해있고 어마어마한 금광과 가스, 석유 등 지하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열강들의 각축전이 보이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본이나 중국에는 상당히 적대감을 가지고 있어 한국이 진출하는 데 여러 이점들을 갖고 있는데 외국인들이 들어와 많은 돈을 벌어가는 것은 별로 원치 않는 모양이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제동을 가하고 있어 쉬운 일은 아닌 모양입니다.

울란바타르 시내 한국의 30대 젊은이가 운영하는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 'I love New York'은 양고기 불고기집으로 유명했습니다.

이곳은 여러 퓨전음식들로 몽골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한 마리에 2만~3만원정도하는 양을 한 마리 잡으면 20~30명분의 불고기 요리가 가능할 테니 썩 괜찮은 장사처럼 보였습니다.

가격은 보통 몽골 식당의 3배 정도로 비싸긴 해도 말입니다.

몽골인들이 타는 자동차의 절반 이상은 한국산이었습니다.

한국인은 1200명 정도 거주하고 울란바타르 중심가에는 한국식당이며 한국인이 경영하는 호텔·머리방·화장품 가게 등 각종 가게가 즐비했습니다.

제일 큰 백화점에서는 한국어가 통했습니다.

이곳에도 한류 열풍이 불어 한국드라마를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었고 한국의 영화 ‘바람난 가족’이 현지 상영 중이었습니다.

▲ 몽골의 한류 열풍을 나타내는 포스터.
그리고 시내 곳곳에서 한국연예인 사진 포스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울란바타르 시내는 새로운 건물도 있었으나 퇴락한 구소련 시대의 건물이 우중충하게 자리 잡고 있어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시카고 갱단들이 총격전을 벌이는 뒷골목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포장도로가 다 낡아 거의 비포장 수준에 가까웠고 운전사는 파진 구덩이를 피해 지그재그 운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부 재정은 부족하고 외자 유치가 안 되고 있어 하드 인프라 형성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국가가 전체적으로 퇴락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현 정부의 대통령를 몽골 마피아가 옹립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고 야당은 제대로 정치 활동을 할 수 없어 많은 사람들이 해외 망명중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지방정부들도 옛 사회주의 시절 인민당 당원들이 그대로 포진하고 있어 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유목인다운 자유로움과 밝은 표정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나 여자들이 멋을 부리는 데는 어느 나라 여자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였고 노출도 심한 편이었습니다.

몽골에서는 남성보다 여자들의 학력이 훨씬 높았고 사회진출도 많이 하고 있어 수도의 위성도시 종모드 시의 경우도 시장을 제외한 시의 모든 중요 직책들을 여자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 천진난만한 몽골의 아이들.
특히 시골로 갈수록 아이들의 밝고 맑은 모습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주로 이들이 가지고 있는 질환은 육류중심의 생활로 인한 고혈압, 심장병, 두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았고 석회성분이 많은 물로 인해 담석, 결석 등으로 인한 수술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위장 질환자들도 적잖아 보였습니다.

무료 진료 중에는 그 지역 의사들도 한국의 약을 타기 위해 줄을 서는 정도였는데 약품의 가격이 비싸기도 하거니와 약을 구하기조차 어려워 보였습니다.

▲ 어느 아이의 부러진 손목 기브스.
복합골절 환자의 경우 병원에서 조차 적절한 치료를 하지 못하고 절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으로 보아 의료 수준이 아직은 낮아 보였습니다.

치아에 대한 관리도 잘 되고 있질 않아 한 나절 치과 진료로 그릇 가득 이를 뽑았다고 했습니다.

시골의 전경과 오름, 산, 강은 제주의 자연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스케일이 크고 광활한 멋이 있어 보였습니다.

특히 광야에는 온통 허브와 야생화들의 향기로 여기저기 말똥이며 양의 배설물이 보여도 전혀 냄새가 나질 않았습니다.

물론 건조한 날씨 탓도 있긴 하겠지만 말입니다.

시내에서 제일 볼만한 곳은 역사박물관이었습니다.

비교적 자료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개중에는 13세기 일본정벌에 나서기 위해 1500척 가량의 군함이 건조 되었고 15만명 정도의 군사가 가미가재를 만나 전사하였다는 이야기는 있었으나 당시의 많은 군함들이 제주 원시림에서 베어진 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빠져 있었습니다.

도시의 외곽, 자연이 아름다운 곳에는 주로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캠프촌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는데 체험 관광으로 고유전통 가옥 게르에서 몽골인처럼 숙박하는 곳들이 여기저기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비교적 수준이 높았고 유럽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숙소의 가격도 저렴하면서 깨끗했고 식사도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캠프촌 가는 길에 양을 두어 마리 사가지고 가면 20~30명이 실컷 먹을 수 있었습니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양을 잡는 법은 큰 구경거리였습니다.

양을 전혀 잠재우지 않고 양의 배를 가른 다음 손을 뱃속으로 집어넣어 심장으로 가는 동맥을 움켜잡으면 가장 잔인해 보여도 가장 빨리, 양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잡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 어느 몽골 가족의 야외 나들이.
말을 3시간 타는데 1000원 정도인데 마부까지 포함한 가격이라면 제주보다 10배 이상 저렴한 가격일 것입니다.

여기다가 고비사막, 호수, 가까운 이웃나라에 있는 바이칼 호수 등 관광자원이 무궁무진해 보였습니다.

아마 몽골이 정신을 차리면 제주의 관광산업은 지금보다 더 힘들어지지 않겠나 걱정을 하면서 몽골을 둘러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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