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협상에 대한 의문과 대응"졸속협상 알리고 여론의 힘 지금부터 모아 나가야"

졸속협상인가 아닌가?
한미FTA 타결 직후에 졸속협상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제주지역과 관련해서는, 협상내용을 발표한 한미FTA협상단 대표인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김석동 재경부 1차관 등이 감귤 수확시기나 노지감귤 비율 등 제주 감귤산업에 대한 기본 내용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비판받고 있다.

실제로 정부자료를 한번 찾아 보았다. 재정경제부에서 발표한 “한ㆍ미FTA 타결에 따른 영향 및 기대효과”라는 16쪽짜리 문건을 보면, 제주 감귤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단 2줄이  언급되어 있다.

(감귤) 당초 미국 오렌지 수입증가로 피해발생이 예상되었으나, 수확기에는 계절관세를 부과하면서 현행 관세 유지

위 문구를 보면, “당초에는 피해발생이 예상되었으나 --- 현행 관세유지”라고 표현되어, 마치 감귤에는 별다른 피해가 없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또한 재정경제부 등 6개부처가 공동으로 발표한 “한미FTA 타결에 따른 국내 보완대책 추진방향”이라는 12쪽 짜리 문건에서도 아래와 같이 표현하고 있다.

감귤 역시, 오렌지에 대한 계절관세 적용, 우리 감귤에 대한 국내소비자의 선호도 등을 감안할 때 피해는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피해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고 하는 것은 나름대로 협상을 잘 했다는 의미이다. 상당히 안일한 인식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안일한 인식은 ‘피해가 심각할 것이고 지역경제 붕괴 우려가 있다’는 제주지역의 여론이나 감귤산업 전문가의 판단과는 다른 것이다.

한미 FTA의 전체적인 내용은 어떠한가?

개인적으로 개방지상주의자도 아니지만, 명백하게 국수주의자도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 한미FTA가 추진되고 체결되는 과정을 보면서 내용상의 여러 논란과 함께 절차상의 문제점을 느끼고 있다.

과연 국가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협상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그것은 협상이 타결되었는데도 막연한 수치나 추상적인 이야기들만이 주로 나오고 있고, 실제로 협상을 통해 얻은 이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잘 설명이 안 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협상이 성공적이었다는 근거로 드는 내용들(예를 들면 개성공단 관련 부분)도 앞으로 미국쪽의 판단에 좌우될 수 있는 불확실한 점들이 많아 보인다. 정부자료나 한미FTA에 찬성하는 언론의 이야기를 들어 보아도, 직접적으로 받을 산업적 이익보다는 국가신인도 제고, 한미동맹 강화, 글로벌 스탠다드 등 추상적인 내용이 주로 언급되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올수록 협상의 알맹이는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일개 개인끼리의 계약에서도 구체적인 이익타산이 치열하게 이루어지지, 이런 추상적인 이야기로 협상을 하지는 않는다.

또한 협상 막바지부터는 갑자기 ‘소비자 후생 증대’가 부각되고 있다. 한미FTA덕분으로 소고기나 오렌지를 싸게 먹을 수 있다는 기사들이 중앙방송 뉴스를 도배하고 있다.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한 것이겠지만, 이런 식의 단편적인 정보로 국민들을 설득하려는 것도 뭔가 좀 이상하다. 그리고 피해를 보게 된 지역농민들의 입장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란 의문이 든다. 오히려 한미FTA반대진영에서는 조목조목 협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앞으로 협상내용이 숨김없이 공개되고 본격적인 검증이 시작되어야 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한미FTA 타결이 과연 국가적으로 긍정적인 일인지에 대해서는 ‘일응 그렇지 않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누구든 나중에 책임질 방법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결단’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책임질 수 있는 결단인지가 문제다. FTA와 같이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해, 임기가 제한되어 있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잘못 판단해서 결정하더라도 나중에 책임을 물을 방법도 없다.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FTA는 개헌보다도 더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다. 헌법은 바뀔 수도 있지만, FTA는 헌법보다도 더 바뀌기 어려운 존재이다.

이렇게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제주특별자치도는 무엇을 했느냐는 책임론이 거론되고 있지만, 사후적으로 책임을 물을 방법도 없다. 그래서 지금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 중요하다.

국회 비준의 전망은?

지금 상황을 그대로 둔다면 한미FTA는 국회 비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 시기가 2007년이냐 2008년이냐 정도의 문제만이 있을 뿐이다. 기본적으로 지금 정치권의 대세는 개방론과 시장(市場)근본주의를 따라가는 것이다. 또한 한국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는 메이저급의 중앙언론들은 모두 개방론과 시장근본주의를 맹신하고 있다. 한미FTA에 대해서도 절대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 국회의 다수는 결국 한미FTA 비준쪽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정당별로 보아도, 의석수 1당인 한나라당은 일부 농촌지역 의원들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개방론과 시장근본주의를 맹신하는 편이다. 한나라당의 대선주자들도 한미FTA를 긍정하는 입장이다. 열린우리당같은 정당에도 ‘개방’의 장점을 과신하는 국회의원들이 많은 형편이다. 그리고 이런 정치지형은 2008년 총선 이후에까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이후에 국민여론이 반대로 쏠리지 않는 이상 한미FTA는 국회 비준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 현실이다.

한미FTA가 비준되면, 제주지역경제가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것은 분명하다. 미국과 1994년 나프타(NAFTA)를 체결했던 멕시코의 경우에는 농산물 수입액이 8년만에 2배를 넘어섰다고 한다. 더구나 정부가 FTA를 홍보하면서 ‘오렌지를 싼값에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집중홍보하는 것을 보면, 소비자들의 감귤사랑을 기대하기는 더 어려워 보인다. “싼 소고기”와 “싼 오렌지”가 한미FTA홍보의 핵심이 되고 있으니 앞으로 정부가 제주감귤의 소비진작을 위해 의미있는 행보를 취할 수도 없을 것이다.

아마 정부는 곧 보상책을 제시할 것이다. 이미 소득보전 직불제나 폐업지원금 등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런 보상책은 단기적 방편에 불과할 것이고, 정부의 보상이 제주지역경제가 입을 타격을 상쇄하기에는 매우 부족할 것이다. 실제로 정부가 조달할 수 있는 재원에도 한계가 있다.

선택가능한 대응방안은?

지금에 와서 대통령에게 호소하거나 협상단에게 호소해봐야 소용없다. 이미 그들의 손을 떠난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한미FTA의 내용을 수정할 방법도 없다. 합의된 내용에 대한 수정은 미국 정부는 물론 미국 의회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 감귤을 쌀과 같이 대우해 달라는 이야기를 반복해봐야 아무 소용없고, 계절관세 부과시기를 조정할 수도 없다. 결국 비준이냐 아니냐는 두 갈래의 길만이 있을 뿐이다.
 
만약 비준을 반대하려면 지금 반대해야 한다. 시간이 흘러가면 점점 더 비준의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도 애매하게 대응할 것이 아니라, 비준반대를 하려면 확실하게 반대 의사를 확실하게 밝혀야 한다.

그동안 협상과정에서 충실하게 제주의 입장을 전달해 온 것이 사실이라면, 졸속적인 협상결과에 대해 의견을 밝힐 권리는 있다. 비준반대의 의사는 도민과 전체 국민, 그리고 정치권에 대해 밝히면 된다. 그로 인해 대통령이나 중앙정부와 일정한 갈등이 조성되더라도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비준이 되지 않게 하려면, 기댈 수 있는 것은 여론의 힘 뿐이다. 제주지역 국회의원들이 반대한다지만, 그것은 매우 제한적인 힘일 뿐이다. 결국 정치권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여러 지역과 여러 분야에서부터 올라오는 여론의 힘 뿐일 것이다. 제주지역만의 여론이 아니라 전국적인 여론의 향방이 중요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제주지역이 지금 해야 할 일차적인 일은 감귤과 관련된 협상의 졸속성을 전국적으로 알려내고 전국적인 여론을 환기시키는 길 뿐이다. 학계, 시민단체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알려야 한다. 어차피 한미FTA는 매우 종합적인 협상이다. 결국 그 협상의 비준여부는 여러 가지 힘들과 여러 가지 요인들이 종합되어 결정된다.

경제 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적인 영향, 여러 산업과 여러 지역에 미치는 영향들이 종합되어 판단되어야 한다. 제주뿐만 아니라 여러 지역과 여러 분야에서 검증과 문제제기를 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주인구가 전국 인구의 1%이고 감귤산업은 제주의 산업이라는 것이 족쇄가 될 수는 없다. 문제가 있는 부분은 확실하게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그런 1%들이 수십가지 이상 모일 때에 한미FTA의 내용이 철저하게 검증될 수 있고, 그 바탕위에서 국가전체적인 판단도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감귤산업은 단지 제주의 문제가 아니냐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두 번째는 대선, 총선이라는 정치일정을 활용하는 것이다. 평상시의 1%는 무시되기 쉽지만, 선거시기의 1%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한미FTA가 제주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대선, 총선 과정에서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한미FTA에 대한 입장표명을 요구하고 지금 타결된 협상내용에 대해 강하게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그래도 한미FTA가 비준이 된다면? 그 때는 다른 활로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최선을 다하지 않고 앞으로 최선을 다 해보자는 이야기는 허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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