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 대통령께 보내는 편지

지난 2월 24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마을주민들과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노무현대통령 취임 4주년을 기념하는 잔치가 열렸다고 합니다. 이 잔치가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 저 개인적으로는 노무현 대통령께서 그간 자신을 배출한 고향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 4주년을 축하하는 봉화마을 잔치
ⓒ 노사모
 
대통령께서는 1992년 총선, 1995년 부산시장 선거, 2000년 총선 등에서 여러 차례 고향을 향해 지지를 호소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지역고향 민심은 싸늘하기만 했었죠. 2002년 대선 당일 저녁 당선 소식이 발표되는 순간에도 노무현 후보는 고향의 선영을 방문 중이셔서 당선소감 발표가 늦어지기까지 했습니다.

모든 정치적 결단의 순간마다 손해를 무릅쓰고라도 고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고향의 민심을 조금이나마 돌려보려고 애썼던 한 정치인이 오늘날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봉하마을 전경
ⓒ 노사모
 
최근 언론 발표대로라면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고향 생가 주위의 땅을 매입해서 집을 짓고 퇴임 후 거처를 마련하신다고 합니다. 그간 고향으로부터 받은 여러 가지 섭섭한 대접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향에 대한 동경과 향수를 버리지 못하고 계심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소식이었습니다.

이제 저의 고향에 대해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 위미리 바닷가입니다
ⓒ 장태욱
 
제가 태어나서 자란 위미리 마을은 제주도 남쪽에 있으며, 70년대 귤 재배가 시작된 이래로 대부분 주민들이 감귤농사에 종사하는 농촌마을입니다. 가끔 진영의 단감이 과잉 수확되거나 당도가 높아 소비자들로부터 인기가 높을 때는 단감의 영향으로 귤값이 떨어지기도 한답니다.

 
▲ 위미리 바닷가에서 해가 지는 모습입니다.
ⓒ 장태욱
 
제주도 해안마을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위미리 마을도 아름다운 해안선과 한라산을 배후로 넓은 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름에는 바다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고, 겨울에는 마을의 북서쪽에 자리잡은 한라산이 찬 북서풍을 막아주어 온화한 기후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런 온화한 기후는 당도 높은 양질의 귤이 생산되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성품마저도 유순하게 만들었습니다. 유년시절 이후로 이 마을에서 큰 사건이 일어나 세상을 놀라게 하거나, 이웃 간에 큰 분쟁이 사회문제가 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듯 온화하고 평화로운 마을에 최근 두 가지 벼락같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한가지는 '제주도 해군기지 유치'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한 가지 소식은 '한미자유무역협정'(한미FTA)에 관한 소식입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은 위미리 마을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므로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 마을 주민들이 도청을 방문해 항의농성하는 모습입니다.
ⓒ 장태욱
 
10여 년 전부터 정부에서 건설하고자 했던 제주도 해군기지가 당초 예정지로 거론되었던 안덕면 화순 지역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쳐 건설이 어렵게 되자 해군에서는 위미리 마을의 몇 분과 유치 논의를 벌였고, 마침내 '해군기지 유치위원회'혹은 '개발협의회'등의 단체를 결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의 주민총회를 통해 마을 주민들은 해군기지 유치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정했습니다.

 
▲ 해군기지 건설계획은 유순한 제 이웃들을 투사로 만들었습니다.
ⓒ 장태욱
 
그런데 해군에서는 '충분한 수심'이나 '넓은 배후 부지' '넓은 선회장 확보 가능성'에 '지역주민들의 호감도' 등을 내세워, 위미1리를 해군기지 건설의 최적지로 지정 발표했고, 김태환 제주지사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해군기지 건설에 관한 로드맵을 발표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지역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 도지사의 로드맵 발표는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당국의 야심이 드러나자 주민들은 더욱 불안해하고 있으며, 마을 공동체가 심리적으로 크게 위협받고 있습니다.

 
▲ 고향을 지키는데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습니다.
ⓒ 장태욱
 

고향은 누구에게든 삶의 위로가 되고 영혼의 안식이 됩니다. 물적 풍요를 미끼로, 아니면 국익을 명분으로 하는 어떠한 회유나 압력이 자신의 공동체를 지키려는 의지를 짓밟을 수는 없습니다. 만약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물리적 혹은 물량공세로 공동체를 파괴하려 한다면 이는 반민주적 폭력임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70년대 작가 이청준 선생은 정부의 개발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며 다음과 같은 명문을 남겼습니다.

"명분은 믿을 것이 못되었다...문제는 명분이 아니라 그것을 갖게 되는 과정이었다. 명분은 과정을 속이지 말아야한다. 명분을 제물을 요구하지 않아야한다. 천국은 무엇인가? 천국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마음속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 구하고 즐겁게 봉사하며, 그 천국을 위한 봉사를 후회하지 말아야 진짜 천국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중에서

이 화두는 2000년대를 사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유효합니다. 더 이상 우리 마을에 '정부의 천국'을 지으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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