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5주년 기획-특구전성시대 허와 실] ② MB 야심작 스마트그리드 용두사미..."선택과 집중 필요"

제주는 가히 특구(特區) 세상이다. 손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로 특구가 난무한다. 마치 특구로 지정만 되면 제주가 확 달라질 것이라는 착각 마저 들게한다. 물론 인프라가 빈약한 제주에서 특구는 미래를 향한 일종의 몸부림일 수 있다. 하지만 대개는 용두사미로 끝나기 일쑤였다. [제주의소리]가 창간 15주년을 맞아 각종 특구의 허와 실을 점검해 본다. [편집자주]

구좌읍 행원리에 위치한 스마트그리드 홍보관이 3년째 폐쇄돼 애물단지로 방치되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에 위치한 스마트그리드 홍보관이 3년째 폐쇄된채 방치되고 있다. ⓒ제주의소리

 

지난 25일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에 위치한 스마트그리드 홍보관. 홍보관 앞 표지석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제주는 세계 스마트그리드 선도지역'.

가슴 벅찬 말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실증사업이 마무리된 후 스마트그리드 홍보관은 폐쇄됐다. 2016년까지 운영됐지만 3년째 방치되고 있다. 말그대로 애물단지 신세. 

스마트그리드 사업은 '녹색성장'의 기치를 내건 이명박 정부 때 추진됐다. 

스마트그리드 테스트베드로 제주가 낙점됐다. 세계 최대.최첨단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를 구축한다고 했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사업비 2395억원(정부 685억원, 민간 1710억원)을 투자해 제주시 구좌읍 일대 6000가구를 대상으로 스마트그리드 기술 개발 및 전력망 연계를 실증하는 사업이었다.

스마트그리드는 기존의 전력망에 ICT 첨단기술을 접목해 공급자와 소비자가 양방향으로 실시간 전력 정보를 교환함으로써 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하는 차세대 전력망이다.

구좌읍 행원리에 위치한 스마트그리드 홍보관이 3년째 폐쇄돼 애물단지로 방치되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에 위치한 스마트그리드 홍보관이 3년째 폐쇄된채 방치되고 있다. ⓒ제주의소리

당시 정부와 제주도는 스마트그리드가 조선, 휴대폰, 반도체에 이은 우리나라 차세대 먹거리 산업이 될 녹색성장시대의 신성장동력이라고 떠들었다.

정부와 자치단체가 앞장서자  SK, KT, LG전자, 현대중공업, 한전, 포스코 등 국내 유수 대기업들도 뛰어들었다. 물론 정부의 물밑 종용도 있었다. 

스마트그리드 홍보관은 한국전력이 2010년 93억원을 들여 도유지에 조성했다. 실증사업이 마무리되자 한전은 제주도에 무상양여키로 했지만, 제주도는 가설건축물인 홍보관은 재산가치가 없고, 리모델링 비용으로 5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판단, 거절했다.

그렇다면 스마트그리드 실증사업으로 인해 구좌읍 주민들에게는 어떤 혜택 또는 이익이 돌아갔을까?

한마디로 미미했다. 태양광 발전시설을 일부 제공하거나, 실증사업을 한다며 전기계량기를 설치해줬지만, 나중에 수거해 갔다. 일부 주민에겐 가전제품을 무상 공급하기도 했으나, 그것 뿐이었다.

구좌읍 행원리 주민은 "스마트그리드 실증사업을 한다고 정부와 자치단체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지역주민들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거의 없었다"며 "오히려 마을 주민 간 분란만 일으켰다"고 말했다. 당시 무상 공급 기기를 놓고 벌어진 경쟁을 꼬집은 얘기로 들렸다.  

김녕리 주민도 "10여가구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무료로 설치해주고, 전기계량기를 설치했지만 그 외에는 없었다"며 "스마트그리드 실증사업으로 주민들이 달라졌다고 피부로 느낀 점은 거의 없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실증사업이 산업적으로 어떤 효과를 가져왔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제주지역 산업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른다. 

정부가 바뀌면서 지원이 끊어지자 대기업들도 손을 털고 나갔다. 한 때 도청 내에 스마트그리드과(課)를 만들어 측면 지원에 나섰던 제주도 역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하다.

구좌읍 행원리에 위치한 스마트그리드 홍보관이 3년째 폐쇄돼 애물단지로 방치되고 있다. ⓒ제주의소리
스마트그리드 홍보관의 폐관을 알리는 안내판. 날짜가 2016년 12월 26일로 돼 있다. ⓒ제주의소리

정부에서 시혜적으로 부여하는 특구나 특례는 말 그대로 테스트베드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전문가들도 제주도가 테스트베드로서 지리적 이점이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섬이라는 폐쇄성에다, 인구가 60만~70만명으로 적당해서 전국 실시에 앞서 제주에서 시범 실시하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2010년 이후 각종 특구는 도지사들의 단골 공약이 됐다. 우근민 도정은 '크루즈 특구' '말산업 특구'를 제시했다. 실제로 말산업 특구는 국내 1호로 지정됐다.

하지만 말산업 특구 역시 정권이 바뀌면서 지원이 줄어들었고, 이후 유명무실해졌다.

원희룡 도정에선 전기차특구, 블록체인특구, 화장품특구를 정부에 건의했다. 균형발전 차원에서 모두 지정되기는 했다.

그동안 각종 특구나 특례 추진 과정을 보면 일정한 패턴이 있다. 

정부에서 먼저 시범 실시하거나 자치단체장의 공약에 의해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하향식이라는 점이다.

막대한 국비 지원과 경제적 파급효과, 고용효과를 거론하면서 미래성장산업으로 포장하면 누구도 반대하기 쉽지 않았다. 산업적 발전전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제주 특성에 맞는 특구를 엄선해 청사진을 그려나가고, 그 동력인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제주의 특구와 특례는 성과도 있었지만 사회적 갈등과 난개발을 가져오는 부작용도 컸다"며 "무엇이 제주에 필요하고, 미래를 위한 것인지 성찰할 때"라고 말했다.

고태호 제주연구원 연구위원은 "원희룡 도정에서 전기차특구와 블록체인특구, 화장품특구등을 추진하는데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며 "또한 보조금이나 국비지원에 기댈 게 아니라, 도민사회와 거버넌스를 통해 전략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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