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제주4.3 한국판 쉰들러 이전에 독립운동가 활동...후손 없어 보훈처 직권 심사했지만 보류

제주지방경찰청 청사 입구에 조성된 문형순 선생의 추모 흉상. 경찰청은 문 선생의 공덕을 기려 2018년 8월 올해의 경찰 영웅으로 선정했다.
제주지방경찰청 청사 입구에 조성된 문형순 선생의 추모 흉상. 경찰청은 문 선생의 공덕을 기려 2018년 8월 올해의 경찰 영웅으로 선정했다.

제주4.3의 광풍 속에서 무고한 도민들을 구해 낸 한국판 쉰들러이자 경찰 영웅 문형순(文亨淳, 1897~1966) 전 모슬포경찰서장에 대한 독립유공자 선정이 또 다시 불발됐다.

국가보훈처가 사회주의 활동 경력에 대한 심사 기준 완화에 따라 직권으로 문 서장에 대한 독립유공 심사를 진행했지만 보류 결정이 내려진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문 선생은 1919년 3.1운동 후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단체인 국민부(國民府)에 가입했다. 가명은 문시영(文時映)이다. 

국민부는 일제강점기 한국의 독립운동단체이자 군정부였다. 1929년 4월 만주 자치지역에서 정의부 중심의 전민족유일당협의회파가 민족유일당조직동맹을 모체로 국민부를 결성했다.

이후 국민부는 자치기관을 전담하고 군사에 관한 사항은 조선혁명군이 맡았다. 1938년 9월까지 조선혁명당의 명령에 따라 독립투쟁에 임하면서 만주 유일의 민족운동단체로 활동했다.

문 선생은 그곳에서 국민부 중앙호위대장을 맡아 조선혁명군의 지원을 통해 무장투쟁 독립운동을 펼쳤다. 1929년에는 조선혁명당 중앙당부 중앙위원 23명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제주시 오등동 제주평안도 공동묘지에 자리한 독립운동가이자 '4.3의 쉰들러'인 문형순 서장의 묘.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시 오등동 제주평안도 공동묘지에 자리한 독립운동가이자 '4.3의 쉰들러'인 문형순 서장의 묘.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수석연구위원의 1998년 연구논문 <국민부 연구>에는 국민부가 일본군을 살상하고 일제의 만주국 통치를 교란한 조직으로 소개돼 있다.

‘일본군경과 만주국 관헌 등을 부분적으로나마 중국 동북지역에 묶어두면서 일제의 중국 관내 침략을 일정하게 견제, 완화하는 실질적 전과를 거두었다’는 것이 논문의 내용이다.

국가보훈처가 2005년 6월 공개한 독립운동 참여자 명단에도 문 선생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관리번호는 70229번. 일련번호는 18262번이다.
 
故 전정택 전 제주평안도민회장은 2006년 8월30일 문 선생의 역사적 자료를 직접 모아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을 했다. 문 선생이 홀로 살아 후손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가보훈처는 입증자료가 부족하다며 불허 결정을 내렸다. 전 전 회장이 별세하자 2010년 4월 제주보훈청장 직권으로 국가보훈처에 재심사를 요청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2011년 3월 이대수 전 제주보훈청장이 자료를 보강해 재차 심사를 요청했지만 입증자료 부족과 사후행적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역시나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제주지방경찰청 청사 입구에 조성된 문형순 선생의 추모 흉상. 경찰청은 문 선생의 공덕을 기려 2018년 8월 올해의 경찰 영웅으로 선정했다.
제주지방경찰청 청사 입구에 조성된 문형순 선생의 추모 흉상. 경찰청은 문 선생의 공덕을 기려 2018년 8월 올해의 경찰 영웅으로 선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동안 소외됐던 독립유공자에 대한 적극적인 발굴을 주문하면서 국가보훈처가 다시 자료를 검토했지만 끝내 보류 결정이 내려졌다. 2010년 이후 벌써 4번째 고배다.

문 선생은 광복 후 월남해 서울을 거쳐 제주에 내려왔다. 1947년 제주경찰서 기동대장을 거쳐 한림지서장과 모슬포경찰서장을 지냈다. 4.3 광풍이 불던 시기였다. 

당시 군과 서청단원이 ‘산에 올라간 사람에게 식량 등을 갖다 준 사람은 자수하면 살려준다’고 유도해 총살하려 했으나 기지를 발휘해 주민 100여명의 소중한 목숨을 구했다.

6.25 전쟁 때는 ‘적에게 동조할 가능성이 있는 자’를 검거하라는 이른바 예비검속이 시작됐지만 그는 총살 명령에 ‘부당(不當)하므로 불이행(不履行)’이라고 맞서 대량학살을 막았다.

이후 경남도경 함안경찰서장을 지내고 다시 제주로 내려와 쌀 배급소를 운영하며 가난과 싸우다 1966년 6월20일 제주도립병원에서 향년 70세로 후손없이 홀로 생을 마감했다.

경찰청은 문 선생의 공덕을 기려 2018년 8월 올해의 경찰 영웅으로 선정했다. 제주지방경찰청은 그해 11월 청사 입구에 문 선생의 추모 흉상을 설치하고 제막식을 열었다.

 

비석에는 ‘一平生 抗日 獨立鬪士 大韓民國 樹立 後 摹瑟浦 城山浦 警察署長 歷任'(일평생 항일 독립투사 대한민국 수립 후 모슬포 성산포 경찰서장 역임'이라고 쓰여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비석에는 ‘一平生 抗日 獨立鬪士 大韓民國 樹立 後 摹瑟浦 城山浦 警察署長 歷任'(일평생 항일 독립투사 대한민국 수립 후 모슬포 성산포 경찰서장 역임'이라고 쓰여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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