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인간] 19. 동주(DongJu; The Portrait of A Poet), 이준익, 2015.

▲영화 ‘동주’의 한 장면. 출처=네이버영화.
▲영화 ‘동주’의 한 장면. 출처=네이버영화.

막내외삼촌은 사진 찍는 걸 좋아했다. 집에 암실을 만들어놓을 정도였다. 막내외삼촌은 초등학생이었던 나를 모델로 삼곤 했다. 나는 빨랫줄 아래 서서 여러 표정을 짓기도 하고, 집 밖으로 나가 시냇가에 앉아 막내외삼촌의 카메라를 바라보기도 했다.

“택훈아. 오늘은 달리는 모습을 찍어 보자.”

막내외삼촌이 카메라 렌즈를 조절하며 내게 말했다.

“달리기하는 모습?”

내가 운동화 끈을 묶으며 막내외삼촌에게 물었다.

“움직이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어서.”

“응. 알겠어.”

나는 막내외삼촌의 말을 듣고 운동화 끈을 더 단단히 묶었다.

막내외삼촌과 나는 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나는 달렸다. 막내외삼촌은 달리는 나를 사진 찍었다. 계속 달리니 숨이 찼다. 나는 헥헥거리며 운동장에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놓칠세라 막내외삼촌은 카메라를 내 앞에 들이댔다. 마치 스포츠 스타가 된 기분이었다. 육상 100미터를 뛰고 벅찬 숨을 쉬는 선수처럼.

그때 막내외삼촌이 찍었던 사진들은 다 흑백사진이다. 지금은 사진첩에 몇 장 남아있다. 그해 초겨울, 막내외삼촌은 오토바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흑백 사진을 보면 막내외삼촌이 떠오른다. 

흑백영화를 보면 막내외삼촌의 사진이 생각난다. 형 동생 사이로 지내는 안민승 사진가는 흑백사진만 찍는다. 영화 ‘동주’는 흑백영화이다. 암흑기였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인 윤동주의 이야기. 그의 눈동자와 시가 하얗게 빛났다. 안민승 사진가는 흑백사진을 고집하는 까닭을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세상을 컬러로 보기 때문에, 사진으로는 흑백으로 담으려고 해.”

지금 이 순간은 컬러이고, 지난 시간은 모두 흑백이다. 그리고 영화는 옛날의 마음을 흑백으로 담을 수 있다.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A Resistance, 조민호, 2019) 역시 흑백으로 그 정신을 보여준다. 

막내외삼촌은 내게 시를 읽어주지 않았다. 다만, 음악과 별자리와 탁구를 전해줬다. 나는 그 호흡을 흑백의 시로 쓴다.

‘영화적 인간’은 보통의 영화 리뷰와는 다르게 영화를 보고 그 영화를 바탕으로 영화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는 코너입니다. 
이 코너를 맡은 현택훈 시인은 지금까지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등의 시집을 냈습니다. 심야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며, 복권에 당첨되면 극장을 지을 계획입니다. 아직 복권에 당첨되지 않았기에 영화를 보기 위해 번호표를 뽑아 줄을 서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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