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多] (32) 투자자 국가 분쟁 해결(ISDS) 제기 가능성...한중FTA에 따라 거부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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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제주도지사는 2018년 12월5일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 조건부 개원 허가를 발표하면서 ISDS를 언급했습니다.

녹지국제병원의 사업자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가 매달 8억5000만원의 손해를 본다는 점을 내세워 ISDS와 한·중FTA 협약 등 외교적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중 양국은 보건의료서비스에 대한 양허를 하지 않아 영리병원이 FTA와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문제는 영리병원 여부와 상관없이 이뤄진 중국기업의 투자 분쟁입니다.

상하이에 본사를 둔 녹지그룹은 1992년 7월 설립된 중국 최대의 국영 부동산 개발업체입니다. 이 곳의 제주 현지 법인이 바로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입니다.

2015년 12월20일 한중FTA가 발효되면서 녹지그룹이 추진 중인 영리병원사업도 자유무역협정에 따른 투자분쟁사건이 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간의 자유무역협정’(이하 한중FTA) 제12.12조에는 한쪽 당사국과 다른 쪽 당사국의 투자자 간 투자 분쟁해결, 즉 ISDS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ISDS(Investor State Dispute Settlement)는 외국에 투자한 기업이 상대방 국가의 정책 등으로 이익을 침해당했을 때 해당 국가를 상대로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한중FTA 제12.12조 2항에는 모든 투자분쟁은 가능한 한 투자분쟁의 당사자인 투자자와 투자분쟁의 당사자인 당사국간 협의를 통해 원만하게 해결한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합의가 불발될 경우 투자자는 투자분쟁을 회부하기 전 투자분쟁의 사실에 관한 요약자료, 청구하는 구제조치와 손해배상 금액 등을 서면으로 작성해 당사국에 제출해야 합니다.

서면 요청서를 제출한 날로부터 4개월 이내 투자분쟁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해당 사건은 투자분쟁 중재에 회부됩니다. 국내행정검토절차도 완료된 것으로 간주됩니다.

현재 제주지방법원에서 진행 중인 행정소송 결과와 상관없이 중재신청은 가능합니다. 일단 녹지측이 중재 신청을 하면 제주도는 물론 우리 정부도 거부할 수 없습니다.

한중FTA 제12.12조 4항에 각 당사국은 분쟁 당사자인 투자자가 투자분쟁을 중재에 회부하는 것에 동의한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입니다. 양국이 이미 쌍방 동의에 서명을 한 겁니다.

중재기관은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International Centre for Settlement of Investment Disputes)와 국제연합 국제무역법위원회(UNCITRAL:United Nations Commission on International Trade Law) 등입니다.

투자자는 중재 청구를 제기하기 전에 상대국 법원에 절차를 개시하지 않겠다는 서면 포기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중재판정은 투자자의 금전적 손해와 적용 가능한 이자, 재산의 원상회복으로 한정됩니다. 중재판정이 나면 그 자체로 확정력을 가집니다. 단심제여서 이의신청 자체가 불가합니다.

과거 ISDS를 통해 우리 정부가 패소한 사례는 딱 한번 있었습니다.

이란의 가전기업 엔텍합 인더스트리얼그룹의 대주주인 다야니 가문이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과정에서 피해를 입었다며 2015년 9월 우리 정부를 상대로 935억원 상당의 ISDS 중재 신청을 했습니다.

다야니 가문은 2010년 4월 대우일렉트로닉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그 해 11월에 인수대금의 10%인 578억원을 대주주인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와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 등에 지급했습니다. 

이후 채권단은 인수자금 조달여부를 증명할 투자확약서(LOC)가 불충분하다며 다야니 가에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계약금은 국고로 귀속시켰습니다.

ISDS 중재판정부는 다야니 가문의 주장을 받아들여 청구액 중 730억원을 한국 정부가 물어줘야 한다고 판정했습니다.

영리병원 논란 속에서 녹지그룹이 실제 국제중재 회부에 나설지는 미지수입니다. 한중FTA에 따라 4개월의 협의 기간이 있는 만큼 이 과정에서 합의점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녹지국제병원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2월18일 보건복지부가 사업계획을 승인해 줬습니다. 정부가 제주에 국내 첫 영리병원이 들어설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준 것이죠.

정부는 추가적인 영리병원 승인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엎질러진 제주 상황에 대해서는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공병원 전환 등 공익적인 대책이 서둘러 마련돼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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