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09. 미친 놈 날간 들어먹듯 한다

* 두린 놈 : 미친 놈, 정신 나간 사람, 정신 이상자
* 휏간 : 횟간, 날째로 먹는 짐승의 간
* 들러먹듯 : 들어서 먹듯

참 현장감에 실감을 얹어 놓아 살아 숨 쉬는 듯하다. 예전에는 소나 돼지를 동네 한 집 마당에서 도살을 했었다. 이를테면 쇠추렴, 돗추렴, 말추렴이라 하던 것. 하지만 주로 농한기나 추석‧설 명절을 며칠 앞두고 제수용으로 하던 것이라 관에서도 용인했던지는 몰라도 상당히 성행했었다.

그게 명절 때 제상에 올리기 위한 산적용(散炙用)이든, 그냥 식용이든 추렴을 할 때면 동네 사람들이 여럿이 모여들어 작업을 하는 현장에서 그 주변을 둘러쌌다.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심심치 않았다. 갓 잡아 더운 피를 받아 마시는가 하면, 금방 꺼낸 날간을 도마에서 썰어 몇 점씩 나눠 먹고 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날것이다. 기회가 흔치 않았다. 그럴 때가 아니면 언제 맛이나 볼 것인가. 어른 대접도 하겠지만, 한 점이라도 더 먹으려 덤빌 수밖에.

그중 정신 나간 사람이 한 사람 끼어 있으면 체면치레마저 잊고 만다. 부끄러움도 거리낌도 없이 덤벼들었다. 그야말로 염치불고하고 마구 집어 먹는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제 욕심만 차리는 볼썽사납고 몰상식한 행위를 해댔다. 몰염치의 극치라 할 것이다.

‘두린 놈 휏간 들러 먹듯’은 염치불고(廉恥不顧), 그러니까 부끄러움을 모르는 몰염치한 자를 빗대어 꼬집는 말이다.

사람 사는 세상엔 염치도 모르는 낯 두꺼운 이들이 의외로 많다.

국민의 4대 의무의 하나인 세금, 그것도 엄청난 고액의 세금을 내지 않고 체납한 채 질질 끌거나, 그보다 더한 것은 탈루 탈세를 일삼는 일이다. 개인을 넘어 기업에 이르러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어떻게 하면 합법적으로 세금을 덜 내느냐 궁리나 하는 자들이 어디 한둘인가. 

기부금을 모금하는 단체들도 썩 투명하지 못하다는 평판이 나온 지 오래다. 단돈 2~3000원을 벌려 종일 폐지를 줍고 리어카를 끄는 노인네들을 보라. 돈 잘 버는 사람들이 돈을 긁어모으기에만 급급하고 쓸 자리에 쓸 줄을 몰라서야 될 것인가. 그러고도 사람 사는 사회가 지탱될 것인가.

그뿐 아니다. 요즘 국회가 돌아가는 걸 보면 실로 가관이다. 서민들 셋만 모이면 국회를 비난하는 작금이다. 소주 한잔하는 자리에선 안주가 따로 없다. 여야가 정치 싸움에 휘둘려 정기국회도 임시국회도 열질 못한다. 설령 정상적으로 열린다 해도 참여하는 의원이 몇 명이나 되는지 한심스러운 작태가 아닌가. 그러면서 한다는 건 세비 인상이다. 국회의원 세비 1억6000만원 시대가 열렸지 않은가.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국회의원의 직무활동과 품위 유지를 위해 지급하는 보수가 세비다. 국회의원으로서 제대로 직무활동을 하지도 않으면서 한 달을 넘기고도 또 그 공전의 악순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지금이 그러하지 않은가, 공전의 장기화. 그들에게는 왜 적용되지 않는지 모르겠다.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 말이다.

몰염치가 극에 달할 때, ‘모몰염치(冒沒廉恥)’라 한다. 무릅쓸 冒, 빠질 沒, 청렴 廉, 부끄러워할 恥. 염치없는 줄 알면서도 이를 무릅쓰고 함을 말한다.

누가 말했다.

“뻔뻔한 국회의원들이여. 어찌 모몰염치하는가? 염치없는 줄 알면서도 그런다면 국민을 대의(代議)할 자격이 없다.”

또 북미정상 회담을 둘러싸고 몰염치하기 그지없는, 낯 뜨겁고 놀라운 해프닝이 있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해 준 사람이 아베 일본 총리라 밝힌 바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아베 총리에게 추천해 달라고 부탁을 한 거라고 일본의 마이니찌신문이 보도했다. 그러면 노벨상 후보론은 트럼프의 셀프 추천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2017년 11월 일본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함께 골프를 쳤다. 일명 '골프 외교'에서 가장 이름을 알린 것은 트럼프를 쫓아가다 벙커에서 굴러 떨어진 아베 총리였다. [편집자] 출처=JTBC 유튜브.
2017년 11월 일본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와 함께 골프를 쳤다. 일명, '골프 외교'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트럼프를 쫓아가던 아베 총리가 골프장 벙커에서 굴러 떨어진 순간이다. [편집자] 출처=JTBC 유튜브.

“사실, 이걸 말해도 될 거라 생각하는데, 아베 일본 총리가 노벨평화상이란 것을 주는 사람들에게 보냈다는 ‘아주 아름다운 서한’ 사본을 내게 주었다”고 한 말은 명백하게도 언론을 상대로 트럼프가 행한 말이었다. 초대강국인 미국의 통치자는 이렇게 허언을 해도 되는 특권 소유자인가. 

이에 대해 CNN이 정곡을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노벨상 수상을 자신의 소명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라 비꼬면서 “아베 총리는 ‘노벨 아부상’을 받아야 한다.”는 소셜 미디어의 반응을 소개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핵 폐기며 종전 선언 등 우리에게 대단히 민감한 문제가 이런 언어적 유희로 주고받는 현실이 한없이 슬픈 오늘이다. 세계를 움직이는 위치에 있는 지도자로서 지긋한 금도(襟度)를 갖추지 못할지언정 적어도 ‘몰염치’하지는 말아야지.

이 시대를 살며 다시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양력주의(養力主義)’ 그것도 ‘대력주의(大力主義).’ 이제 우리는 힘을, 큰 힘을 길러야 한다. 그게 몰염치한 자들 앞에 당당히 서는 길이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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