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구금·고문 후 세상 떠난 고(故)홍제화의 동생 홍제선

저는 국가보안법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길지 않은 생을 살다 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가 고향인 고(故) 홍제화(1953년 5월26일생, 65세 별세)의 동생 홍제선입니다.

정부 진실·화해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지난 2010년 7월6일에 소위 ‘홍제화 사건’을 중대한 인권침해 조작 의혹 사건으로 규정했습니다. 이후, 2019년 2월21일 제주지방법원에서도 국가보안법 위반 재심결정이 개시돼 남은 가족들은 그간 겪은 고통과 인고의 세월을 생각하면 눈물이 하염없이 앞을 가리지만, 비록 아직 일부이더라도 진실이 밝혀지고 있어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고 있습니다.

이 글은 돌아가신 ‘홍제화’의 국가보안법 위반 재심결정 판결을 기다리며 지난 37년간 어디에도 하소연 할 수 없었던 가족들의 억울함을 알리고 싶었고, 이를 차치하더라도 다시는 이 땅에 이런 불행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국가에 호소하고자 하는 뜻입니다.

사건은 이렇습니다. 당시는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이던 1981년 7월 27일 밤 9시경이었습니다. 당시 제주 조천리에 살고 있던 홍제화(당시 29세)가 ‘청암식당’이라는 조천리 소재 식당에서 막걸리를 먹으며 무심코 내뱉었던 ‘시국발언’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굴레가 씌워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반국가단체(북한)를 고무·찬양했다는 누명이 씌워져 영장도 없이 불법 구금까지 당하며 제주경찰서 정보분실과 제주보안부대 수사관들에게 끌려가 구타와 전기고문 등 모진 학대를 당했습니다.

결국 홍제화는 95일간의 구치소 구금을 거쳐, 전두환 정권 때인 1982년 3월9일 국가보안법 위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 위반 등으로 징역1년, 자격정지 1년의 가혹하고 억울한 형벌을 받았습니다.

2심에 걸친 재판 결과에 따라 홍제화는 광주교도소에 수감돼 간첩이라는 멸시를 받으며 실형을 살아야 했고, 1982년 8월15일 출소돼 제주항을 통해 형님(홍제화)이 가족들 품으로 돌아올 때는 이미 심한 정신분열증세를 보이는, 그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형님은 마을에서도 똑똑하고 온순한 청년이자, 독실한 교인으로서 당시 조천교회 신도들도 이 같은 홍제화의 억울함에 대해 경찰과 법원 등에 진정할 정도로 인정받는 청년이었습니다. 동생인 저도 형님을 항상 존경하고 본받을 만한 분이라 여겼습니다.

그런 형님이 하루아침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날벼락을 맞는 것을 보면서 억장이 무너지는 가슴을 안고 어디에도 하소연하지 못한 채 37년 세월을 한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형수님과 두 조카(홍제화의 아들)가 겪었던 지난 세월의 고통을 생각하면 눈물이 마를 날이 없습니다.

결국 지난 2006년 10월27일 저는 진실·화해과거사정리위원회에 형님의 억울한 사정을 알려 의혹을 풀어줄 것을 청원하였고, 4년에 걸친 관련 조사 끝에 2010년 7월6일 ‘홍제화 국가보안법 위반 조작 의혹사건 결정 통지서’를 손에 받아들게 되었습니다.

진실·화해과거사정리위원회가 홍제화 사건을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규정하고 당시 사건이 조작된 의혹이 있다는 결정 취지로서, 비록 일부분이지만 이제야 진실이 밝혀지기 시작해 남은 가족들은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젊은 시절 모진 고문을 당한 형님은 2018년 7월5일 억울함을 풀지 못한 채 한 많은 가슴을 안고 결국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2017년 9월22일 제주지방법원에 청구한 ‘국가보안법 위반 재심 청구’에 대한 선고도 받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돌아갔습니다.

홍제선 ⓒ제주의소리
홍제선 ⓒ제주의소리

 

저는 올해 2월21일 제주지방법원으로부터 재심 결정 개시를 통보받고 ‘형님 묘소’를 찾아가 반가운 소식을 전하면서도, 긴 세월을 고통을 감내해온 형수님과 조카들(두 아들)은 물론 남은 가족들의 인고의 세월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를 생각하니 쏟아지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향후 재심 재판에서 형님의 억울한 구금과 고문, 그로 인한 정신분열증 환자로 파괴 되어버린 37년의 선량한 삶이 온전히 밝혀지기를 바랍니다. 다시는 이 땅에서 이런 억울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 벌어지지 않도록 국가가 나서 주시기를 호소합니다.

편안히 눈을 감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먼저 가신 홍제화 형님의 영전에 아우인 제가 두 손 모아 시 한 수 바칩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 故홍제화의 동생 홍제선

    슬픈 광인의 노래

                       雪舟 홍제선

흰 꽃잎은 떨어져 검게 타고
정체 없이 큰 손톱을 내밀 때

역사 속으로 감싸 안고 울은
흰 백발에 가슴어린 청춘이여

풀잎에 상처는 다 녹고 다 썩어
비뚤어져 무조건 먼 산에 울림만 

노년인 광인노래가 구슬픈 가락은
비극적인 삶의 시간을 멈추게 하고

때도 없이 구슬프게 우는 소리는
허공에 울려 퍼져 구름 되어 헤매고

소중한 사람 잃은 길 없는 거리를
급하게 헤매며 나락 들락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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