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인간] 19. 사바하(SVAHA:THE SIXTH FINGER), 장재현, 2019.

영화 ‘사바하’의 한 장면. 출처=네이버 영화.
▲ 영화 ‘사바하’의 한 장면. 출처=네이버 영화.

어렸을 때 내가 살던 마을에 말모래기가 있었다. 아이들은 그 아이에게 말을 못한다고 놀리지는 않았지만 함께 놀기를 꺼려했다. 그 아이의 엄마는 무당이었다. 심방 정도는 아니었고, 넋들이를 하거나 동네에서 부적을 만드는 정도였다. 

그 아이의 엄마는 직업이 하나 더 있었다. 학교 옆에서 쥐포를 팔았다. 그냥 파는 것이 아니라 뽑기를 통해 팔았다. 500원을 내고 산통 비슷한 상자에서 가로로 길게 접힌 종이를 하나 뽑는다. 그러면 그 종이에 꽝, 하나, 둘, 셋 등이 표시되어 있었다. 원래 쥐포 한 장에 500원이니 운이 좋으면 세 개도 걸릴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곳에 많이 몰렸다. 한 명이 500원을 걸면 여럿이 구경했다. 나도 친구들과 함께 쥐포 뽑기를 구경했다. 쥐포 아주머니 옆에 그 아이가 앉아있을 때도 있었다. 그 아이에게 어느 종이가 ‘셋’이 표시된 것인지 물어보고 싶었으나 그러지는 못했다. 아이는 말이 없었지만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눈빛이었다.

“내가 너의 운명을 알려줄까.”

환상 속에서 아이는 내게 또박또박 말했다. 

어쩌면 아주머니는 뽑기를 통해 아이들에게 운명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동네 심방 못 알아준다’라는 제주 속담처럼 나는 그 아주머니의 신통력을 못 알아본 것인지도…….

이제 그 모녀는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그 아이는 사슴동산에 있을 것만 같다. 사슴동산에 가고 싶다. 그곳에서 눈을 감고 기도를 드리고 싶다. 이 모든 번뇌를 씻을 수 있다면야.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사슴동산’ 이름이 들어간 상호가 전국적으로 꽤 있다. 식당, 건강원, 농장, 테니스장 등이다. 다 찾아가보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현택훈
고등학생 때 비디오를 빌려보며 결석을 자주 했다.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해 처음 쓴 소설 제목이 ‘중경삼림의 밤’이었다. 조조나 심야로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 영화를 소재로 한 시를 몇 편 썼으나 영화 보는 것보다 흥미롭지 않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한때 좀비 영화에 빠져 지내다 지금은 새 삶을 살고 있다. 지금까지 낸 시집으로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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