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의 산물] 108. 대림리 비구포 산물

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시 한림읍 대림리는 물이 귀한 동네다. 사동(沙洞)이라는 바닷가 마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순두천 냇가에 흐르는 물이나 못에 고인 봉천수를 사용한다. 옛 이름은 선돌(궁돌)이며 울창한 숲이 이루어져 있어서 대림이라고 한다.

대림리는 주로 웅덩이 같은 못을 파서 봉천수를 식수로 사용했다. 그래서 주변 마을에서는 대림리에 딸을 시집을 보내지 않으려 했다 한다. 왜냐하면 물이 귀하여 봉천수로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물 때문에 고생할 거라는 걱정 때문이다. 

그러나 바닷가 마을인 모살(모래의 제주어)동네, 대림사동(大林沙洞)에는 해안에서 비구물(비꿋물, 삐구물)과 구명물(구맹물)이라는 좋은 식수가 용출한다. 이 산물들은 비구포라는 포구의 물로 한림항이 확장되면서 포구는 없어졌지만 물을 지켜야 한다는 주민들이 강한 의지로 매립되지 않고 한림항 도선대합실 뒤편에 보존되고 있다.

구명물은 비양도가 폭발하면서 해일로 물통이 화산재와 모래로 뒤덮였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이 지경에 모여 살면서 찾아낸 산물이다. 옛날 콜레라가 만연되던 시절에 선돌 지역인 대림본동에서 이 물을 길어다 먹고 역병을 고쳤다고 하여 ‘목숨을 구했다(求命)’는 뜻을 갖고 있는 질 좋은 산물이었다. 이 산물은 돌담이 일부 개수되었지만 사각식수통과 한 개의 빨래통, 그리고 허벅을 부리던 물팡은 예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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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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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물 내부 모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구명물 건너편 50m 지점에 큰물이란 비구물과 모살물(소나물)도 보존되어 있다. 이 산물들은 같은 곳에서 용출되는데, 위쪽은 물이 크게 솟아나서 큰물, 아래쪽은 모래가 많아서 모살물이라고 하고 있다. 모살은 모래의 제주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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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물(뒤)과 모살물(앞). ⓒ제주의소리

큰물인 비구(飛鳩)물은 비양도가 폭발할 때 비양도까지 물이 날아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물 입구에 세워진 치수기념비(1934년)에는 ‘비구물이 솟아나는 옛 근원을 지금 새롭게 하여 좋은 항구에 개방하게 되어 그 공을 잊을 수 없다.(飛鳩湧泉 古源今新 開此良港 厥功不忘, 비구용천 고원금신 개차량항 궐공불망)”라 쓰여 있다.

큰물인 비구물은 여자 전용으로 물이 크게 넘치면 월류할 수 있도록 식수통 입구를 사각웨어 형태로 만들어 놓았으며 계단식 생활용수용 빨래통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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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물.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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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물 식수통. ⓒ제주의소리

모살물인 경우 남자 전용으로 소나물이라고도 한다. 식수통을 만들지 않고 물이 흐르는 대로 자연스럽게 목욕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산물들의 특징은 미로 형태의 미음자(ㅁ형) 모양으로 담을 축조했다.

미로 형태로 산물 터를 조성한 것은 개방적이면서도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존중하고 사생활이 침범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이런 구조를 만들어 산물을 사용했다는 것은 선조들이 물을 사용하는데 있어 인간존엄을 우선 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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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살물.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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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살물 내부.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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