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100주년-창간15주년 특집] (3)동녕 조선족중학교 아이들과의 만남

지난해 4.3 70주년을 맞아 4.3의 세계화·전국화에 역량을 함께 모았던 제주작가회의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지난 1월 역사기행을 다녀왔다. 중국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안중근 의사와 김좌진 장군을 비롯한 항일독립투사들의 발자취를 따라 약 3000여 km에 이르는 7박8일의 여정이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3.1운동 100주년과 창간15주년을 맞아 12명의 제주작가들이 만주지역의 겨울날씨만큼이나 혹독했을 항일독립운동사의 궤적을 따라 새로운 결기를 다지고 돌아온 만주 항일유적지 기행 과정을 네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 편집자

/ 사진=제주작가회의 제공 ⓒ제주의소리
재중동포(조선족)들이 사는 마을엔 어김없이 논농사 흔적이 보인다. 중러 국경지역 인근 삼차구 뚱닝현에 북만주 최초의 조선인마을 고안촌이 있다. 마을 풍경 / 사진=제주작가회의 제공 ⓒ제주의소리

 

# 쑤이펀허, 뚱닝 그리고 조선족 마을과 사람들

<2회에 이어> 무단장시는 앞서 지나온 닝안(영안), 무링(목릉) 외에도 쑤이펀허(수분하)와 하이런(해림) 4개 시와 린커우(임구), 뚱닝(동녕) 2개의 현을 거느리고 있다. 그중 쑤이펀허는 흑룡강성 동부, 즉 러시아 국경과 인접한 지리적 특성을 살려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러시아와 목재와 농산물 등의 교역이 활발한 국경 도시다.

이동거리가 결코 만만치 않았음에도 이번 여정에 이 지역을 포함시킨 까닭은 안중근의사의 발자취를 따라 가보려는 일정 외에도 중-러 국경 인근 삼차구 뚱닝현에 있는 북만주 최초의 조선인마을 고안촌(古安村) 방문과 동녕 조선족중학교의 아이들과의 만남이 약속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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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만주 최초의 조선인마을 고안촌(古安村) 마을 입구에 고안촌임을 알 수 있는 마을상점 간판이 보인다. / 사진=제주작가회의 제공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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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만주 최초의 조선인마을 고안촌(古安村) 마을 풍경 / 사진=제주작가회의 제공 ⓒ제주의소리

 

이번 여정의 길라잡이이자 동료작가인 박영희 시인이 강력하게 추천한 일정이기도 했다. 고안촌은 700여 호가 넘는 가구에 한때 2000명이 넘게 거주했으나 지금은 젊은 세대들은 물론이고 중장년층까지 돈을 벌겠다며 한국이나 대도시로 떠나버려 상주인구가 500~600 명 정도만 남아있는 공동화 현상을 겪고 있었다. 당연히 아이들 숫자도 줄어 이 지역에 있는 재중동포(조선족) 소학교, 중·고등학교의 재학생수도 급감하고 있다.

‘아침마다 진맥하듯 등교하는 아이들의 기색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동녕 조선족중학교의 젊은 교장 박진성 선생이 살짝 귀띔해준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걸렸다. 어린 학생 대부분이 집 떠난 부모대신 조부모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성장환경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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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작가회의 회원들은 이번 만주 일대 방문에서 고안촌 동녕 조선족중학교 아이들에게 한글 도서 100여권을 전달했다. / 사진=제주작가회의 제공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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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이펀허(수분하)시 재래시장 풍경. 좌판 위에 진열된 구워진 돼지 족발이 먹음직스럽다. / 사진=제주작가회의 제공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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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장시는 닝안, 쑤이펀허, 하이런(해림) 등 4개의 도시와 린커우, 뚱닝(동녕) 2개의 현을 포함한다. 하이런(해림)에서 반가운 제주관 식당을 만났다. / 사진=제주작가회의 제공 ⓒ제주의소리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들이었다. 수업이 끝난 교실에 모여 있는 서른 명의 아이들 표정은 생각보다 밝아보였고, 한류스타 ‘아이돌’들의 근황을 줄줄이 꿰고 있어 한국의 아이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BTS나 엑소, 티아라 같은 아이돌 얼굴이 담긴 포스터도 같이 챙겨올 걸 그랬다.

한글로 된 읽을거리가 절대 부족하다는 얘기를 듣고 제주에서 미리 챙겨간 동화, 청소년 소설 등 100여 권의 책을 전달하고 짧은 만남은 마무리됐지만 아이들의 얼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철도박물관으로 개조하기 위해 공사 중인 역 구내는 일반인 출입이 차단되어 있는 옛 쑤이펀허 역을 중심으로 우리는 다시 안중근의 발자취를 따라 걸었다.
안중근, 우덕순, 류동하 등 하얼빈이 이토 히로부미 처단의 구체적 계획을 점검하고 실행방법을 결정하는 한편 부족한 활동자금을 모으려고 백방으로 발품을 팔았던 도시가 바로 쑤이펀허였기 때문이다.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러시아가 맞닿아 있는 국경초소와 구 러시아 영사관, 러시아 예술관 등 백여 년 전에 건축된 건물들을 둘러보며 이 도시가 겪었을 역사의 격동기를 잠시체감해보는 것을 끝으로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위해 다시 무단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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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이펀허는 흑룡강성 동부의 러시아와 국경과 인접해 있다. 중-러 국경지역 모습 / 사진=제주작가회의 제공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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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쑤이펀허 역사(驛舍) 전경 / 사진=제주작가회의 제공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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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쑤이펀허 역사(驛舍)로 사용되던 건물 전경/ 사진=제주작가회의 제공 ⓒ제주의소리

 

무단장에서 다롄(대련)까지 1127km의 거리. 14시간 반을 기차로 이동하는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4인실 침대칸에 누워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차창 너머 스쳐지나가는 만주의 마을과 도시들의 낯선 지명을 한 번씩 호명하며 오래전 이 대지를 누비며 독립투쟁의 열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발자취를 다시 생각해본다.

다롄은 요동반도 남단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청일전쟁 이후에는 러시아, 러일전쟁 후에는 50년간 일본에 조차(租借;영토를 일정기간 빌려 사용함)되었으며 일본의 만주공략에 거점이 되었던 도시다. 그 때문에 이곳 역시 러시아와 일본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건축물들이 여전히 많이 남았고 만주군벌 장작림, 장학량 부자의 관저도 이곳에 있다.

일주일 만에 성해광장에서 다시 바다를 봤다. 우리의 서해와 한 몸인 저물녘의 해변에서 짭조름한 바람을 맞으니 섬사람의 호흡으로 되돌아오는 듯 했다. <4회에 계속> / 이종형 시인, 제주작가회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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