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조사 없이 일선 학교 도서관 오디오북 구입 추진?...취재 시작되자 "원점 재검토"

 

제주도교육청이 학교 현장에서 전혀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교보재를 대량 늘리기로 해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수요조사를 기초로한 예산 타당성 검토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수 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편성한 도교육청은 취재가 시작되자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주도교육청은 올해 학교도서관 운영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2억원의 예산을 들여 '오디오북'을 일선 학교에 보급키로 했다. 도교육청 산하의 서귀포학생문화원은 오디오북 구입 예산으로 2000만원을, 한수풀도서관과 동녘도서관도 오디오북 콘텐츠 구입비 각 1000만원과 단말기 구입비 각 660만원을 편성했다. 제주도서관, 송악도서관, 제남도서관 등도 '도서구입비' 안에 오디오북 예산을 산정했다.

'오디오북'이란 전문 성우나 저자가 직접 책을 낭독해 눈으로 읽는 대신 귀로 들을 수 있도록 제작된 콘텐츠로, 인터넷이나 휴대폰 어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활용이 가능하다. 손에서 스마트폰을 떼놓지 않는 학생들의 습성을 역으로 이용하겠다는게 도교육청의 판단이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인쇄된 기존의 도서는 구입하고 읽는데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고, 한정된 도서관 공간에 보관하는데도 물리적 한계가 있다"며 "다양해지는 독서 환경 속에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만 있으면 들을 수 있는 오디오북은 등하굣길에도 활용이 가능하다는 판단하에 계획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미 전국적으로 10개 시도교육청이 오디오북 콘텐츠를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제주 역시 이 같은 형태의 디지털콘텐츠 활용해 교과 연계방안을 모색해야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문제는 사업 목적에만 치중한 나머지 정작 기본적인 예산 타당성 검토 작업도 거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도교육청은 이미 오디오북이 도입된 학교 현장에서의 활용도가 거의 전무하다는 점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주의소리] 취재 결과 제주시 A고등학교의 경우 이미 지난 2016년 자체 예산을 들여 오디오북을 도입했지만, 이용률은 '0%'로 확인됐다. A고등학교에 현재 재학중이거나 졸업한 복수의 취재원들은 "오디오북을 활용하기는 커녕 존재 자체도 몰랐다"고 답했다.

오디오북 도입 당시 학교 내 도서관에서 사서직 봉사활동을 했다는 B군의 경우 "사서를 하면서도 들어보지 못할 정도였다. 도서관을 찾아오는 학생들이 몇 안되다보니 잘 알고 있는데, 오디오북이 수업에 이용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개인적으로 활용하는 학생도 없었다"고 말했다.

반면, 도교육청은 A고교에 오디오북이 이미 비치돼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가 취재가 시작되자 부랴부랴 확인 작업에 나서는 모습이었다.

예산 편성 당시 제주도의회에 제출된 주요사업설명서에 오디오북 구입비에 대한 언급은 단 한 줄로, '학교도서관질개선' 사업 명목 아래 묻혀있었다. 보조비 사업의 경우 천만원대의 사업도 2~3페이지에 걸쳐 설명을 덧붙여놓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와 관련 도교육청 관계자는 "학교 현장과 소통하면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에 충분히 공감한다. 앞으로 긍정적인 활용방안이 무엇인지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아이디어 구상 단계에 있는 만큼 현장에 교육적 효과가 있는지 등을 처음 단계에서부터 다시 재검토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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