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주작가회의 ⓒ제주의소리
110년전 안중근 의사가 형장 이슬로 사라진 다롄(大連)시 뤼순(旅順) 감옥 순국 장소. 안 의사 처형장에는 그의 초상 위로 외줄 올가미가 걸려 있어 지켜볼 수 없는 전율과 숨막힘이 흘렀다. /사진=제주작가회의 ⓒ제주의소리

[3.1 100주년-창간15주년 특집] (4)뤼순 감옥서 만난 이름들 아직도 살아 숨쉰다

지난해 4.3 70주년을 맞아 4.3의 세계화·전국화에 역량을 함께 모았던 제주작가회의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지난 1월 역사기행을 다녀왔다. 중국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안중근 의사와 김좌진 장군을 비롯한 항일독립투사들의 발자취를 따라 약 3000여 km에 이르는 7박8일의 여정이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3.1운동 100주년과 창간15주년을 맞아 12명의 제주작가들이 만주지역의 겨울날씨만큼이나 혹독했을 항일독립운동사의 궤적을 따라 새로운 결기를 다지고 돌아온 만주 항일유적지 기행 과정을 네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 편집자

<3회에 이어> 2009년 ‘하얼빈 의거’ 백주년을 맞아 일반에게 공개되기 시작한 뤼순감옥. 안중근, 신채호, 이회영 등 수많은 애국지사가 투옥되고 순국한 민족의 독립성지와 다름이 없는 역사적 공간이다.

한결같이 의연하고 당당하며 기개를 꺾지 않아 끝내 우리를 살게 한 이름들을 만나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두른 길. 막상 도착했는데 입장이 허용되지 않았다. 한 시간 간격으로 지정된 시각에 맞춰 감옥의 문이 열린다는 것이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감옥 문이 열리고 순로를 따라 걷다보면 처음 만나게 되는 작은 건물이 안중근 의사가 머물렀던 특별감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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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순 감옥 2층 복도 /사진=제주작가회의 ⓒ제주의소리
뤼순 감옥 내 안중근 의사가 사형으로 순국한 처형장 모습 ⓒ제주의소리
뤼순 감옥 내 안중근 의사가 사형으로 순국한 처형장 모습. 안의사의 초상 위로 외줄 올가미가 송곳처럼 바닥을 향해 있다. ⓒ제주의소리

 

감방치고는 많이 뚫린 창문을 통해(안 의사의 동태를 언제라도 쉽게 감시하기위한 수단이었다고 했다.) 들여다 본 실내에는 침대 하나, 동양평화론을 집필하고 유묵을 남겼던 작은 책상 하나뿐이다.

그 겨울 안 의사는 매서운 추위를 어떻게 견뎌냈을까. 쿵쿵거리는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긴 복도 양쪽 감방들과 폭이 50센티도 안되어 보이는 독방(징벌방)과 고문실 등 당시의 상황이 그대로 재현된 공간들을 지나 수십 수백 번 사진으로만 봤던 그 곳. 마침내 두 눈으로 목격하는 안중근 의사의 처형장까지.
 
하얀 조명이 비추는 그의 초상 위로 드리워진 외줄 올가미를 보는 순간, 머리끝부터 발바닥까지 벼락처럼 몸을 관통하고 지나가는 전율과 숨 막힘. 모두의 눈가는 다 젖어 일행들은 한동안 아무도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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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의사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졌던 뤼순법원의 재판정 모습 /사진=제주작가회의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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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를 압송할 당시 사용된 마차도 전시되어 있다. /사진=제주작가회의 ⓒ제주의소리

네 번째 손가락을 스스로 잘라 독립의 의지를 다졌던 안중근 의사. 왼손의 손금이 선명한 유묵들만 남아 그의 기개를 증명하고 있는 특별 전시공간은 단재 신채호 선생, 현재 가치로 환산하기 어려운 전 재산을 정리하고 형제들과 함께 독립투쟁의 길에 들어선 이회영 선생, 유상근 선생, 최홍식 선생 등 한국독립운동사의 주요인물의 굵은 발자취를 다시 되새겨 볼 수 있는 기록들이 선연한 공간과 이어져 있었다.

만주를 중심으로 이어졌던 독립투쟁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있는 기록들을 찬찬이 살펴본 뒤 우리는 감옥을 나서기 전에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3월 26일 그의 시신이 실려나간 북대문 앞에서 다시 멈췄다.

이미 잘 알려졌다시피 감옥 뒤 공동묘지 어딘가에 묻혔다는 시신은 110년이 지난 오늘까지 조국의 땅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몇 번의 유해 발굴 시도도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내년에 다시 발굴시도를 한다는 뉴스가 들려왔지만 공동묘지가 있었다는 뤼순감옥 뒤쪽은 이미 아파트들이 밀집한지 오래다. 쉽지 않은 작업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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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유묵 /사진=제주작가회의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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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순 감옥 고문실 /사진=제주작가회의 ⓒ제주의소리

뤼순감옥 기념관을 떠나 안 의사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졌던 뤼순 법원 (지금은 뤼순인민병원)의 재판정 의자에 잠시 앉아 그의 생애를 축약한 영상물을 보는 시간을 끝으로 안중근 의사 등 독립투사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은 만주 일대의 7박 8일간 여정은 끝났다.

직접 찾아가 두 눈으로 목격한 공간과 시간, 수많은 유명무명의 독립투사들의 생애는 백년이라는 과거에 머물러있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역사였다.

이들의 고난과 희생이 없었다면 과연 우리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계속 돌릴 수 있었을까. 만주에서 만난 백년 전의 이름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끝> / 이종형 시인, 제주작가회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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