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11. 말줄은 주어도 소줄은 안 준다

* 몰석 : (외양간에) 말 매는 줄
* 쉐석 : (외양간에) 소 매는 줄

마소(馬牛)를 기르는 집에는 의당 말줄과 소줄이 있게 마련이다. 가축을 매는 줄이라고 똑같지 않다. 소를 매는 줄이 있고 말을 매는 줄이 따로 있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집에 기르던 마소를 팔아 남에게 넘길 때다. 이 경우, 소는 팔더라도 원래 매어 있던 줄은 그대로 두고, 대신할 수 있는 다른 줄로 바꿔 끌고 가도록 했다. 그런데 말은 일단 팔고 나면 맸던 줄을 그대로 끌고 가게 했다. 소와 말이 달라, 이는 하나의 관습으로 돼 있었다.
  
이유가 있었다. 한마디로 말보다 소를 더 소중히 여긴 데서 유래한 것인데, 소줄은 외양간에 고정시켜 매어 두고 있어 그것을 풀어서 넘겨주는 것은 소 사육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뜻이 되므로 금기시(禁忌視)했던 것이다. 말이야 평소 물 가깝고 풀이 좋은 마을의 동산이나 들판을 옮아가며 매어 두던 터라 그냥 쉽게 넘겨주던 방식에서 나온 것이다.

오래 전부터 하나의 관례로 이뤄졌던 것, 말하자면 사고팔면서 그렇게 해 온 것이므로 관행으로 해 왔던 일이다.

가축, 특히 우마를 남에게 팔아넘길 때 이뤄지던 관습이었다.

관습은 깨지 않는 게 상책이란 관념이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라 오래된 일인데 굳이 바꿀 필요가 있겠느냐 하는 인식에서다. 금기로 여겨 가능한 한 지키려 했음은 물론이다.

금기란 종교적 관습에서 어떤 대상에 대한 접촉이나 언급이 금지되는 일을 망라해 하는 말이다. 행동과 말 모두 포함된다. 흔히 말하는 터부(taboo)와 같은 말이다.

민속과 관련해 여간 가탈이 아니다.

우리나라 민속 현장에서 ‘가리는 일’, ‘금하는 일’과 ‘지키는 일’, ‘삼가는 일’이 곧 금기다. 이 넷을 뭉뚱그리고 보면 두 가지 원리가 들어 있다. ‘선택의 원리’와 ‘금지의 원리’다.

'제주100년 사진집'에 실린 1950년대 어느 제주여인의 모습. 소가 끄는 마차에 가마니 가득 짐을 싣고 아낙네가 바투 소를 끌고 간다. 만농 홍정표 선생이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편집자]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100년 사진집'에 실린 1950년대 어느 제주 여인의 모습. 마차에 가마니 가득 짐을 싣고 아낙네가 바투 소를 끌고 간다. 만농 홍정표 선생이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편집자]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대개의 경우 금기가 지켜지고 있는 현장에서 보면, 금지의 원리 쪽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함을 알 수 있다. 안될 일을 선택하는 쪽에 비중을 둔다는 얘기다. 따라서 종교적으로 해선 안될 일을 가려서 그것을 하지 않도록 하거나, 하지 않게 지키는 일임을 확인할 수 있다.

"아이고, 기영 홈불로 허영 될 일이 아니여게. 맹심에 맹심을 해야헐 일이주게."
(아이고, 그렇게 함부로 해서 될 일이 아니지게.)

우리 선인들은, 정성 들여야 할 때면 할 수 있는 온갖 정성을 다 기울였다.

‘…하면(보거나 들으면) 재수 없다’고 믿는 속신(俗信)에게 비정상적인 것, 이질적인 것, 낯선 것 등은 상당히 큰 몫을 하고 있다. 고양이, 뱀이나 밤에 나타나는 거미나 까마귀‧새똥 등은 단순한 혐오감 탓으로 속신과 맺어진 금기의 대상이 된다.

가령 별신굿‧당산굿을 주관하는 제주(祭主)나 화주(化主)가 제수(祭需, 제사에 쓰는 여러 가지 물건이나 음식)를 장만하기 위해 장에 가서 사람을 가릴 것 없이 남과 얘기해선 안되고, 무슨 흥정을 해서도 안된다.

별신굿 같은 집단적 공동 제의(祭儀)에서 금기는 굿 자체의 성패를 가늠할 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금기가 지켜지지 않았을 때, 굿은 파탄을 일으킬 것이고, 신령은 인간의 말을 들어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보장할 수 없게 된다.

의례는 신에게 개인이 희망하는 소원을 이뤄 주기를 기원하는 행위다. 지극 정성을 필요로 한다. 이를테면 치성(致誠)을 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 데서 신에 대한 다양한 금기가 따르게 마련이었다.

집에 고사(告祀) 지낼 날이 정해지면, 집 안을 소쇄(掃灑, 비로 쓸고 물을 뿌림)하고, 부부간에도 서로 조심한다. 제물을 마련할 때 특히 시루떡을 썰 때의 금기는 매우 엄격하다.

고기잡이에 종사하는 어촌에서 배에 고사를 지낼 때는 여간 정성을 들이지 않았다. 지내기 전 선주 부부는 무엇보다 먼저 부부행위를 금하고 머리나 손톱을 깎지 않았다. 뱃머리에 여자가 보이면 출어(出漁)를 늦췄고, 출어 직전엔 여자와 말도 하지 않을 정도다. 배가 바다로 나갈 때는 휘파람소리를 내지 않고 손도 흔들지 않았다. 휘파람을 불면 액귀가 따라 붙고, 손을 흔드는 것은 고기 떼를 쫓는 행위로 간주한다. 게다가 이별수가 있다는 것이다.

삼신은 깨끗한 신으로 상정돼 비린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해서 제사상에 해어(바닷고기)를 올리지 않는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삼칠일 동안 기름을 사용해 음식을 만들지 않는다. 기름을 사용한 음식을 만들면 아이 얼굴에 해를 입히는 등 삼신이 표시를 낸다고 믿었다. 영등할망에게 올린 음식은 함부로 먹지 않는 것으로 돼 있다. 그도 금기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도 금기는 존재한다.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걸으면 이별한다든지, 손수건이나 신발을 선물하면 헤어지게 된다든지 하는 것 등이다.

‘몰석은 주어도 쉐석은 안 준다.’ 

옛날 가축인 마소를 집에 기르던 시절, 밭갈이와 달구지를 끄는 등 농사일에 없어선 안됐던 소는 가축 이상의 의미를 갖는 그야말로 한 재산이었다. 팔아넘길 때도 소를 매던 줄은 건네지 않는 금기가 있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그게 관습이 됐겠는가. 

좋은 게 좋을 거란 정도의 인식을 넘었다. 소는 말보다 훨씬 큰 재산이었기 때문이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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