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윤이상 선생님' 그리고 나의 은사님

1973년 박정희의 왕권을 수립하기 위해서 제2의 쿠데타를 일으킨 '유신'이 맹위를 떨치던 시절로 필름을 리와인드해 본다.

나는 막 군복무 3년을 제주 모슬포에서 마치고 대구로 복학하였다. 미국 유학을 꿈꾸며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당시 경북대 영문과 교수였던 김성혁 선생(20여년전 작고)은 당신의 자택에서 일반대중들을 위해서 <리더스 다이제스트, Readers' Digest>와 <타임, Time> 두 권을 가지고 각각 한 시간씩 영어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 요샛말로는 '과외'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과외비는 아주 저렴해서 주로 영어를 배우고자 하는 일반인들과 대학생들로 집안과 마당이 가득찼다.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이들은 창문을 열어놓고 선생님의 강의를 진지하게 엿듣곤하였다. 나는 항상 일찍 도착하여 맨 앞줄에서 선생님의 강의를 열심히 들었다.

그 선생님은 수강료를 받아서 당신을 위해서 쓰거나 자녀를 위해서 쓰지 않았다. 교회를 통해서 불우이웃 돕기에 썼다. 학교에서 받는 월급으로 생활은 넉넉했기 때문이었다. 수강료의 영수증이라곤 교재 맨뒷쪽에 몽당연필로 날짜만 적어 주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거기에는 사인도 인장도 없었다. 거기에 적힌 그 날짜를 보고 한달이 지났으면 수강료를 자진 납부하는 방식이었지만, 수강생들은 거의 모두 어기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 날 저녁 <타임, Time>지를 들고 수강생 앞에 나타난 선생님은 얼굴이 상당히 상기되어 있었다. '예술' 칼럼을 펼쳐 우리들에게 보여준 곳은 두 페이지가 모두 새까맣게 먹칠되어져 있었다.

소위 공안당국의 '검열'을 당하여 일반독자들이 읽어볼 수 없게 만들어져 있었다.

우리는 그 까만 색칠뒤에 무슨 스토리가 들어 있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선생님은 차분히 그 까만색 뒷글을 소개해 주었다. '여기에 있는 여러분들은 이 페이지의 글을 읽을 수가 없지만, 나는 읽을 수가 있었다고...'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작곡가 윤이상 선생이 있는데, <나비부인>을 독일의 한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했다. 공연이 끝나자 청중들이 1시간 이상 기립박수를 보냈다. 오페라 극장 오픈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고 말씀해 주었다.

나는 그 말씀을 듣고 상당히 의아해 했다. 왜, 그렇게 훌륭한 선생님에 대한 기사가 한국정부의 공안당국의 검열에 걸려서 시커멓게 먹칠을 당했을까?

선생님은 차분히 자초지종을 설명을 해 주었다. 그가 평양도 왕래한다는 것이었고, 통일운동을 한다는 것...

그때 당시는 평양을 들락거리는 것은 대역적죄인 '간첩죄'에 해당하던 시절이었다.

'여러분들이 이 기사가 궁금하면 대구 삼덕동 주재 미 문화공보원에 가면 원본이 그대로 있으니 찾아 볼 수 있다'고 소개해 주었다. 나는 뒷날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그곳을 찾아가서 모두 읽어 볼 수가 있었다. 읽고 또 읽었다. 당시에는 복사기가 귀해서 카피해 두질 못한 것이 내내 아쉬웠다.

그 후 수십년이 지나가고 정권이 몇차례 뒤바뀌었는데도, 윤이상 선생은 고향(통영?)땅을 한 번도 밟아보질 못하고 독일의 한 공원묘지에 '민족의 한'을 안으시고 영면했다.

김성혁 선생은 평양이 고향이고 평안도 사투리를 심하게 쓰는 그런 분이었다. 유신의 된 서리를 맞아서 '재임용 탈락'이란 불명예를 맞이했다.

박정희가 죽고 복직되었지만, 요절하고 말았다.

윤이상 선생도 가고 김성혁 선생도 가고 숱한 이들이 갔는데도, 아직 대한민국의 공안정국은 변함이 없는 탓인가?

오늘 이 순간에도 제2의 윤이상 선생을 만들어 내고 있다. 송두율 교수가 37년만에 조국땅을 '억지로' 밟았는데 철창에 갇히는 몸이 되어 버렸으니...

유신의 서슬퍼런 공안당국이 시커먼 먹칠을 하고 '재임용 탈락'이란 된 서리를 내려 윤이상과 김성혁 두 선생님의 이름을 지워버리려고 했지만, 나의 뇌리속에서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두 선생님...

오호 통제라!

먼저 가신 님들의 뜻을 기리며 이 불행한 시대를 마감시키기 위해서 열심으로 투쟁할 것을 다짐하며서...

이역만리 '나그네'된 한 사람, 이도영 올림

<이도영의 뉴욕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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