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인간] 20, 우상(Idol), 이수진, 2019.

영화 ‘우상’의 한 장면. 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우상’의 한 장면. 출처=네이버 영화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Inglourious Basterds, 2009)’ 중에서 스크린이 불타는 장면이 있다. 히틀러를 미화한 영화를 상영하는 중에 영화관에 불이 난다. 그것은 히틀러라는 우상에 대한 화형식이었다.

몇 년 전에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가 발행 취소되었다. 우리는 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을 지운다. 이 영화에서는 감히 이순신 장군 동상의 머리를 폭파한다. 영화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머리나 련화의 이복언니 머리나 똑같다. 단지 번호가 다를 뿐이다.

이제 고등학생이 된 조카는 빅뱅 탈덕을 선언했다. 한때 빅뱅 브로마이드로 방 도배를 하다시피 했으나 이제는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빅뱅 자리에 잔나비가 자리했다. 나도 잔나비의 음악을 좋아하는 터라 그 음악 좋다고 거드니까 조카는 “잘 생겼잖아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시를 쓰는 나는 백석, 김수영, 기형도 등이 우상이다. 그들의 시를 흠모하며 그들의 시를 따르려고 했다. 솔직히 흉내를 냈다. 그들처럼 시를 쓰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한때 나의 우상이었으나 이제는 등 돌린 시인들도 있다. 

어쩌면 이 영화의 감독 이수진은 전작 ‘한공주’라는 영화로 형성된 우상화를 스스로 깨기 위해 영화를 이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제 그의 세 번째 영화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현택훈
고등학생 때 비디오를 빌려보며 결석을 자주 했다.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해 처음 쓴 소설 제목이 ‘중경삼림의 밤’이었다. 조조나 심야로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 영화를 소재로 한 시를 몇 편 썼으나 영화 보는 것보다 흥미롭지 않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한때 좀비 영화에 빠져 지내다 지금은 새 삶을 살고 있다. 지금까지 낸 시집으로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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