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보른 듼 장서 엇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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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의 借古述今] 112. 급소엔 장사 없다

* 봇보른 듸 : 위험한 곳(부위), 급소(急所)
* 장서 : 장사(壯士)
* 엇나 : 없다

인체에는 급소가 있다. 그곳을 가격하면 혼절(昏絶)한다. 그러니까 순간적으로 까무러쳐 나뒹굴게 마련이다. 심한 경우는 목숨을 잃는 수도 있다. 체력이 말을 하지 않는다. 힘이 산을 들고 기가 세상을 덮었다(力拔山 氣蓋世 : 역발산 기개세)는 초 패왕 항우(項羽)라도 안된다. 

제아무리 힘이 장사라 해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러므로 그런 위험한 부위를 함부로 손찌검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경계의 말이다.
  
오랜 세월을 두고 경험 속에 얻어 낸 경험칙이란 생각이 든다.

급소란, 사람의 신체 중에서 신경이 가장 예민해서 밖으로부터 작은 자극만 받아도 신체의 생리 기능에 큰 장애를 일으키게 되는 부분을 말한다. 강타하면 즉시 졸도하거나 죽게 되는 부위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의 명은 그리 질기지 못해, 얼마든지 잘못될 수 있다.
  
급소를 한의학에서는 혈(穴) 혹은 경혈(經穴)이라고 한다. 침을 놓거나 뜸을 떠 병을 구완하는 데 이용되는 부위다. 우리 몸에 있는 혈의 총수는 750여 개소나 된다고 한다.

아잇적에 동네 침바치 하르방(침 놓는 노인)에게 침을 맞을 때, 제일 겁나는 곳이 코 바로 아래에서 윗입술 사이에 골이 파인 곳, 인중이었다. 인중에는 가는 침을 꽂거나 하지 않고 짧고 큰 침으로 여러 번 꽂고 빼고를 반복하는 식이었다. 겁이 나 더 아팠다. 침 든 침바치 하르방의 그 억센 손이 다가와 어른거리는 순간, 눈을 꼭 감고 발발 떨며 바동거리다 으앙 하고 울음을 터트렸던 일이 문득 떠오른다. 인중이 급소인 걸 안 것은 좀 더 성장한 뒤의 일이다.

인간에게 급소는 참 많다.

상체에는 주로 정수리, 단전, 관자놀이, 미간, 눈, 코, 입, 귀, 턱, 인중, 목, 목젖, 비중(쇄골과 목 사이 움푹 들어가 말랑말랑한 부분), 겨드랑이, 팔오금(헌혈하는 곳), 손등, 젖꼭지, 가슴 중앙, 늑골, 명치, 허리, 배꼽, 옆구리, 사타구니 그리고 허벅지 위 뼈, 뒤통수 등이 있으며, 하체에는 무릎 약간 위쪽, 다리오금, 정강이, 발등 그리고 항문 부위와 남녀 생식기 부위가 빠지지 않는다. 특히 남자의 경우 X알, 몸 중앙 부위 등 몸 거의가 다 급소라 보아도 될 정도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치명적인 급소로는 호흡기, 두부, 사타구니, 고환(남자)이 꼽힌다. 그 이외에 신경다발이 뭉쳐 있는 부위나 근육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내장이며 뼈대도 포함된다.

인간에게 거북이 등껍질 같은 단단한 보호막이 존재하지 못하는 이상 몸 전체를 급소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애초 인간은 호랑이 같은 맹수가 아니므로 직접 몸으로 싸우기에 적합한 조건을 전혀 갖추지 못한 동물이다.

격투기에서 급소를 가격하는 행위를 반칙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대 격투기에서 급소로 인정하는 부위는 후두부, 눈, 목, 사타구니 정도가, 즉 호흡기와 후두부만을 급소로 인정하고 나머지 부위에 대해서는 가격을 허용하고 있다.
  
급소를 가격했다가는 위험하기 때문에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행위다. 말 그대로 턱 차면 헉 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죽는 수가 있다. 정말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도망칠 수도 없어서 사력을 다해 싸워야 하는 극한상황이 아니라면, 가격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우리 국기(國技)인 태권도의 대표적 급소는 인중, 명치, 단전이다. 즉 얼굴, 몸통, 아래의 준거가 되는 곳 이렇게 셋이다. 수련할 때 공방(攻防)의 목표가 된다.

한 시대를 풍미한 재일교포 레슬링 스타 역도산. 강철 같은 체력과 힘을 뽐냈지만,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건 작은 칼로 인한 복부 상처였다. [편집자] 출처=위키백과.
한 시대를 풍미한 재일교포 프로레슬링 스타 역도산. 강철 같은 체력과 힘을 뽐냈지만, 별 것 아니라고 여긴 칼에 찔린 복부 상처가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 급소엔 장사 없다. [편집자] 출처=위키백과.

‘봇보른 듼 장서 엇나.’ 명심해야 할 말이다. 

‘곳보른 듸 꼬딱 잘못 했당 숨 넘어간다(위험한 데 까딱 했다 숨이 넘어간다)’고 했다. 심심하게 급소를 몰라서 건드렸다 잘못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건 옛말이다…. 지금은 인체구조로 급소 정도는 상식적으로 다 안다. ‘손질 범질’이라고 하지 않는가. 어쩌다 한 번의 헛손질로 낭패를 사는 일은 없어야 한다. 불의의 사고란 한순간에 나온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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